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연애 리얼리티가 보여 주는 오답은 크기만 다를 뿐 모두 우리 안에 있다. 누구나 좋지 않은 말버릇이 있고, 자신의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으며, 외면하고 싶은 과거의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 출연진이 특별히 이상해서가 아니라, 시기와 질투,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어색해지고 서툴러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내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본문 중)

 

유지윤(아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미디어학과 교수)

 

<나는 SOLO>,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환승연애>, <돌싱글즈>…. 이름만 들어도 장면이 떠오르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이제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기도 힘들다. 한 해에만 20편 이상의 프로그램이 쏟아지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라 최근 <환승연애>는 누적 2억 뷰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연애 리얼리티의 전성시대다.

 

사람들의 관심이 큰 만큼 출연진이 구설에 오르는 일도 잦다. 출연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댓글로 평가되고, 신상정보는 온라인에 낱낱이 공개된다.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유명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고, 우리는 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시청을 멈추지 못할까.

 

<환승연애4> 포스터 ⓒTVING

 

대본 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바로 ‘진정성’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늘 출연자들의 동기부터 의심한다. 누군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돈이나 인기를 노리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면 순식간에 검증의 대상이 된다. 반면 연출되지 않은 돌발 상황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 그리고 여과 없는 표현은 해당 프로그램이 ‘리얼’하다는 증거로 소비된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같은 순간이 쌓일수록 화면 밖의 시청자들은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재미와 감동을 얻기 위함만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다른 사람의 연애와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댓글로 살피면서 연애의 룰을 하나씩 익힌다. 한마디로 말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연애 규범을 가르치는 ‘살아 있는 교과서’에 가깝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서사를 잠시 살펴보자. 출연자들은 서로의 첫인상만으로 호감을 드러내고, 곧이어 본격적인 탐색전을 펼친다. 애초에 연애 상대를 찾으러 온 자리이니 여러 명을 동시에 마음에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두 명 이상에게 호감을 표현하거나, 너무 오래 상대방의 마음을 저울질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소위 ‘썸’에도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오해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오지랖을 과하게 부리거나 말을 잘못 전달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욕을 먹는다. 이는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다양한 규범을 드러내는 요소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썸은 몇 명까지 괜찮은지, 질투는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등 세세한 연애의 룰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하트시그널4> 포스터 ⓒ채널A

 

인간관계의 규범은 절대적 법칙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관습이라서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특히 연인처럼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일수록 규범은 강하고 더욱 은밀하게 작동한다. 실수 한 번에 마음이 멀어지기도 하니 연습하기도 참 어려운 영역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시행착오를 대신해 주는 일종의 관계 연습장이다. 다른 사람의 연애를 관찰하며 위험 부담 없이 규범을 학습할 수 있는 장소. 시청자들이 출연진과 제작진을 욕하면서도 계속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교과서가 그렇듯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관계 맺기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동시에 보여 준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나쁜 예를 마주하는 자세다. 프로그램이 다양한 연애 규범을 보여 주는 ‘안내서’를 넘어 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재판정’이 될 때, 모범 답안을 제시하지 못한 출연자는 시청자들에 의해 과도하게 처벌받는다.

 

가장 최근 방송되었던 <나는 SOLO> 28기 영수만 봐도 그렇다. 처음부터 다수의 여성 출연자들에게 선택받은 영수는 다대일 데이트 때마다 모두에게 호감을 표현했고, 곧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물론 영수의 우유부단한 태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 지나친 자기 과시는 분명 ‘나쁜 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자산이나 학력을 근거 없이 폄하하고, 과거 행적을 파헤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깎아내리는 일이 과연 정당할까. 방송에서 보인 모습만으로 그를 ‘허언증 환자’라 단정하는 건 또 얼마나 위험한가.

 

그에 대한 신상 털기와 조롱, 밈(meme)화는 규범을 어겼을 때 가해질 수 있는 사회적 압력이 얼마나 거칠고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는 도덕적 우월감과 함께 불안정한 현실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SOLO> 포스터 ⓒSBS Plus, ENA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연애 리얼리티가 보여 주는 오답은 크기만 다를 뿐 모두 우리 안에 있다. 누구나 좋지 않은 말버릇이 있고, 자신의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으며, 외면하고 싶은 과거의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 출연진이 특별히 이상해서가 아니라, 시기와 질투,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어색해지고 서툴러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내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성숙함이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 또 언제 부재하는지를 비추는 작은 실험실에 가깝다. 그러니 남을 욕하고 상처 내는 도구로 쓰기보다는, 한 번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는 편이 우리에게 훨씬 이롭지 않을까. 정답과 오답을 함께 보여 주는 이 ‘관계 연습장’은 어쩌면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관련 글들

2025.12.05

우리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이정일)

자세히 보기
2025.11.17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이정일)

자세히 보기
2025.11.12

『저궤도 인간』: 동아줄과 눈빛(홍종락)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