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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공공 기관은 예산 증액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 산업 지원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단발성 제작 지원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개발-제작-배급-마케팅-유통까지 이어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으로 약해진 영화 제작 인프라를 견인하고 중‧저예산 영화들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그 해법이 금전적 지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극장 생태계와 관객의 소비 방식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보다 넓은 시각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고려하고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영화관은 텅 비고

 

다이소와 내 월급 빼고 모든 게 다 오르고 비싸진 요즘,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깊은 침체를 겪은 극장가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코로나19는 여느 독감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한 번 발길을 돌린 관객들은 이전처럼 다시 영화관에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2024년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억 2,300만여 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의 2억 2,600만여 명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1)

 

반면 객단가2)는 9,710원으로, 2022년에 10,285원을 찍은 이후로 점점 줄고 있다. 티켓 가격은 계속 올라서 관객들의 체감 부담은 늘었지만, 모객을 위한 각종 할인으로 실제 영화관과 배급사의 수익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또한 티켓 가격이 오르면서 관객들은 비싼 금액을 내는 만큼 영화를 고르는 데 더욱 신중해졌고 그만큼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장기적인 침체로 투자가 마르면서, 보다 완성도 높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 어려워졌고, 이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결국 관객들이 그 돈으로 극장에서 그저 그런 영화를 보느니 집에서 OTT로 더 싸고 편하게 보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면서 더더욱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침체 속에 3대 멀티플렉스 중 하나인 롯데시네마는 메가박스와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고, 근속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제에는 몰리고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아님에도 매진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제이다.3) 우리나라 3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나 서울에서 열리는 가장 큰 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와 같이 큰 영화제들은 티켓팅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고 인기작은 암표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부산, 전주, 부천의 3대 영화제들은 올해 좌석 점유율이 모두 80%를 넘었으며 이는 전년보다도 더 성장한 수치이다.

 

이러한 현상은 큰 영화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는 4K 리마스터링 버전이 수년 전에 완성되었음에도 국내외 개봉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서울아트하우스영화제에서 유일하게 상영되어 예매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후 여러 차례 추가 상영에서도 매진되어 고가의 암표까지 등장했다.

 

무주산골영화제에는 올해 약 3만 명의 관객이 몰렸으며, 돗자리를 깔거나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자유롭게 공연·부스·토크·야외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등나무운동장’의 입장권은 오픈 즉시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삭감되어 영화제에서 확보할 수 있는 상영관이 예년보다 적어지고 일반 극장가에도 ‘볼만한 영화’가 줄어들면서 영화제 티켓팅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등나무운동장 무대, photo by 최주리

 

앞으로 영화 산업은…

 

2026년은 영화 산업에게는 기근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한 영화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다음 작품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지자체 등의 지원 역시 줄어들면서 영화 제작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코로나19 시기부터 누적되어 있던 이른바 ‘창고영화’(완성되었지만 개봉하지 못하고 묵혀둔 영화를 말하며, 보통 1년 이상 개봉이 미뤄진 영화를 말한다)도 거의 소진된 상태다. 새로 만들어질 영화도, 이미 만들어진 영화도 많지 않아 2026년에 새롭게 선보일 한국 영화가 매우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은 중간층이 사라지고 양극단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관객뿐만 아니라, 제작되는 영화들도 큰 자본을 업은 대작이거나 저예산 독립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 산업은 이대로 망하는 것일까?

 

ⓒrawpixel

 

나는 마냥 긍정적인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영화 산업이 망하고 있다기보다는 달라진 유통 구조와 관객의 니즈에 맞는 시스템을 아직 따라가지 못한 것에 가깝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뉴노멀 시대가 되었고 영화 산업도 새로운 생태계로의 전환과 적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제 현상을 보면 영화 자체가 안 팔린다기보다는 잘 팔리는 곳과 안 팔리는 곳의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특별히 예술성이나 희소성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영화제의 주된 수입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과 기업이나 단체들의 후원금이기 때문에 티켓 성적이 상업 영화계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준 높은 취향을 가진 관객들과 높은 자국 콘텐츠 소비율을 가진 한국에서 영화제의 흥행 요소를 분석하면 앞으로 한국 영화 산업이 집중해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제는 개봉 전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새로운 창작자들에게 영화계에 입문하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고, 제작 지원이나 투자 및 수입 논의가 오가는 비즈니스의 장으로서 상업 영화계와 연결되어 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정부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일을 겪었다. 수많은 영화인과 관객들의 탄원과 반발 끝에 결국 추가 경정 예산에서 예산이 다시 복원되었고 무사히 영화제를 치렀다. 정부는 올해 영화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80% 증액된 1,498억 원으로 책정했다. 2026년에는 각종 투자 및 지원의 선정과 집행 준비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영화 제작과 완성은 2027년부터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26년은 내실을 다지며 방향을 재설정해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GV, 전주국제영화제 전경, photo by 최주리

 

 

내실을 다지고 방향을 재설정하다

 

불교박람회, 서울국제도서전, 김천김밥축제는 올해 큰 이슈가 되었던 행사들이다. 이 행사들은 새로운 콘셉트와 알찬 콘텐츠에 더해, 수동적인 관람을 넘어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인증할 수 있는 요소들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결국 관건은 ‘이곳에서만 직접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유례없는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무주산골영화제의 등나무운동장에서는 낮에는 음악 공연과 야외 토크를, 밤이 되면 무성 영화와 라이브 연주를 볼 수 있다. 씨네필들만 즐길 수 있는 영화제가 아니라, 영화 외에도 다른 즐길 거리가 있고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축제이기 때문에, 영화를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뮤직 페스티벌에 가듯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더해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던 작품들이 이후에 극장 개봉뿐만 아니라, OTT, 해외 배급, 부가 판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과 배급 및 투자사와 연계를 지원하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영화제의 두터운 관객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영화제 개최 기간 외에도 GV, 순회 상영,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관객과 창작자를 꾸준히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화관은 이미 아이맥스, 돌비 시네마, 4DX, 스크린엑스와 같이 OTT로 구현할 수 없는 프리미엄 포맷을 핵심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일반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콘서트 라이브 뷰잉, 연극이나 뮤지컬, e스포츠 중계 등을 상영하며 굿즈 판매나 전시 같은 이벤트를 결합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다양한 콘텐츠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로 관객층을 다양화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들이 많지 않은 만큼 올해도 과거 흥행작이나 고전 명작을 재개봉하는 경우도 늘었는데, 리마스터링 버전이나 프리미엄 포맷 상영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공공 기관은 예산 증액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 산업 지원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단발성 제작 지원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개발-제작-배급-마케팅-유통까지 이어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으로 약해진 영화 제작 인프라를 견인하고 중‧저예산 영화들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그 해법이 금전적 지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극장 생태계와 관객의 소비 방식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보다 넓은 시각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고려하고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영화는 죽지 않는다. 변화할 뿐이다.” <택시 드라이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셔터 아일랜드> 등을 감독하고 작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이다. 한국 영화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극복해 냈다. 스크린 앞에서 함께 울고 웃는 관객들이 있는 한, 영화는 단순한 오락 거리나 산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주는 한 축이었다.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간으로, 다시금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를 바란다. 여전히 한국 영화를 사랑하고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국 영화계는 다시 한번 자신만의 방법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1) 박정민, “2024 극장가 관객 수, 전년보다 줄어… ‘한국 영화’는 선전”, 「아이뉴스24」, 2024. 01. 16.

2) 할인 및 통신사 혜택 등을 제외하고 관객이 실제로 지불하는 평균 티켓 가격으로, 영화관과 배급사의 수익은 객단가를 기준으로 나눈다. 객단가를 영화관과 배급사가 비율에 따라 나누어 갖는데 각종 할인이 적용된 객단가의 정산이 분명치 않아 이는 영화계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3) 영화제와 시상식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시상식은 따로 영화 상영 없이 특정 기간과 매체에서 상영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 수상이 주가 되며,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 청룡영화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영화제는 영화 상영이 주된 행사이며, 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하기도 하지만 비경쟁 상영, GV(관객과의 대화), 포럼, 굿즈 판매, 이벤트 등, 여러 다양한 행사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제로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칸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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