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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지리적으로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지도라기보다는 서양에 조선의 도성 모습을 대략 알리기 위한 약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통적인 도성 지도가 한문 밖에 기입되어 있지 않았던 반면, 이 지도는 한글로 병기가 되어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지도를 볼 수 있게 했다는 드높은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 인근에 례배당(현 정동제일교회),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 북감리회 서울 선교 스테이션 자리가 표시되어 있고, 숭례문 안쪽으로도 례배당(현 상동교회)이 표시되어 있어 기독교 선교와 근대화가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제임스 게일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 2. 19. – 1937. 1. 31.)은 한국학자로도 유명한 선교사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웰링턴의 앨마에서 태어난 게일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1885년부터 다양한 선교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캐나다에 돌아와서는 토론토 빈민가에서 도시 선교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는 유니버시티칼리지 YMCA의 부회장이기도 했습니다. 1888년 4월 12일, 이 기관에서 조선 선교사로 결정되어 그해 12월 평신도 독립 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송수경이라는 조선인에게 한국어를 배웠고, 이름 모를 한학자가 기일(奇一)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기’를 소릿값으로 갖는 한자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서도 ‘기특할 기’를 쓴 것을 보면 이름을 지어 준 한학자가 보기에 게일이 꽤 기특했나 봅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도 게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게일이 북장로회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고, 그 결과 독립 선교사였던 게일은 1891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92년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헤리엇 헤론과 결혼했습니다. 헤리엇은 의료 선교사 존 헤론의 부인이었는데, 존 헤론이 과로 끝에 전염성 이질로 사망한 후에도 조선에 남아 선교를 이어가다 게일과 재혼하였습니다. 소속도 생기고 아내도 생기고 겹경사였다고 해야겠습니다.
게일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역했습니다. 서울, 해주, 소래, 부산, 원산, 일본 요코하마, 원산 등에서 활동하던 그는 1899년 서울에 정착했고, 이후에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신학을 한국에서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1897년 5월 13일 미국 인디애나주 뉴 알버니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해서 미국 장로교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보면 이 사람의 머리가 엄청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게일은 실제로 학술적인 선교사였습니다. 조선의 언어‧역사‧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게일은 문서 사역자로서 탁월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40권이 넘는 번역서와 단행본, 400여 편의 다양한 기고문들이 남아 있는데, 이것들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서양의 문화를 한국에 알렸는지를 보여 줍니다. 게일은 한국의 문화를 매우 존중하고 아꼈습니다. 1894년 그가 번역한 『천로역정』은 한국 근대의 첫 번역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의 삽화는 풍속 화가인 기산 김준근이 그렸는데요. 등장인물들이 다들 조선인으로 표현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예수님, 선녀처럼 보이는 천사 같은 그림들은 한국 기독교 미술 토착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문에도 능통했던 게일은 성서 번역 위원으로 30년가량 활동하면서 신(God)의 번역어를 ‘하나님’으로 주장했습니다. 언더우드가 주장한 ‘천주’와 게일과 마펫이 주장한 ‘하나님’ 사이에서 꽤 오래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언더우드도 ‘하나님’에 동의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아직도 신(God)의 번역을 그냥 ‘카미사마’(かみさま, ‘신님’)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신 이름은 현지의 문화에 맞게 정말 잘 번역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일은 여러모로 한국 기독교에 큰 영향을 미친 선교사입니다.

게일의 ‘서울 지도’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게일의 ‘서울 지도’
오늘 소개해 드리는 ‘서울 지도’는 게일이 1902년에 영국 왕실이 지원하는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의 기관지인 「트랜잭션즈」(Transactions)에 처음 소개한 서울 지도입니다. 지난 글에서 한번 기증자로 소개해 드렸던 홍승표‧홍이표 목사 형제가 기증해 주셨습니다. 두 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지도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 서울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에 등장하는 통신원, 철도원, 헌병부 등이 모두 1900년에 설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측량과 같은 부분이 조금 아쉬운 지도입니다. 측량 부분은 1830년대에 김정호가 그렸던 수선전도와 유사합니다. 서울이 좌우 대칭으로 아주 반듯해 보이는데, 실제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대문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다든가 하는 왜곡이 있습니다. 1899년부터 1900년에 걸쳐 조선 왕실이 서울의 측량 사업을 했는데, 그 측량 결과가 더 잘 반영된 지도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 지도는 지리적으로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지도라기보다는 서양에 조선의 도성 모습을 대략 알리기 위한 약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통적인 도성 지도가 한문 밖에 기입되어 있지 않았던 반면, 이 지도는 한글로 병기가 되어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지도를 볼 수 있게 했다는 드높은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 인근에 례배당(현 정동제일교회),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 북감리회 서울 선교 스테이션 자리가 표시되어 있고, 숭례문 안쪽으로도 례배당(현 상동교회)이 표시되어 있어 기독교 선교와 근대화가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다른 박물관의 학예사들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지도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머, 어머, 저기 명례방 찾았어!” 1900년대 초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장로회 신자인 저로서는 게일이 북장로회 선교사였는데 어째서 북감리회의 교회와 학교만 표시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동에 있던 북장로회 선교 스테이션이 1895년에 연지동으로 옮겼고 거기에도 학교와 교회 등이 있었는데 말이죠. 북장로회가 게일을 자기네 선교사로 받아들여 주고 결혼도 시켜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긴가(?) 싶습니다. 천국에서 만나면 한번 물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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