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돌고래 방류 과정은 모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성공의 결과는 중요했지만,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었기에 시민과 전문가들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는가’를 반복해서 점검했다. 야생성 회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돌고래들에게 살아 있는 고등어와 넙치를 주자, 처음엔 돌고래들이 놀라서 물고기를 피해 다녔다. 며칠째 고등어 떼를 피해 다니는 돌고래들을 보며 사육사들은 “우리 수조가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질 관리가 되는 줄은 몰랐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돌고래들이 고등어 떼를 모두 먹어 치우는 등 예측 불가의 과정이 이어졌다. (본문 중)
김영환1)
AI의 발전이 무섭다. 자고 나면 세상이 바뀌어 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고래의 소리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고래의 언어를 번역하려는 프로젝트도 등장했다. 지금 그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왜 하필 고래인지는 알 것 같았다.
고래는 신비로운 동물이자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다. 우주 개발에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 NASA는 외계인과 조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간과 돌고래의 소통 방식을 진지하게 연구했다. 고릴라나 침팬지처럼 인간을 닮은 지능은 비교적 설명하기 쉽지만, 고래는 그렇지 않다. 지능이 높고 자아를 인식하는 고래는 우리와 전혀 닮지 않았기에 낯설고 동시에 더 매혹적이다.
2013년이었다. 서울대공원에 생태학자, 해양학자, 동물행동학자, 변호사, 수의사, 사육사, 동물보호 활동가, 환경 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한 ‘제돌이 방류를 위한 시민 위원회’였다.
시작은 우연한 계기로부터였다. 당시 돌고래 쇼를 관람하던 한 국내 고래 전문가가 익숙한 등지느러미 모양을 알아보고, 자신이 연구하던 야생 돌고래 사진 자료와 대조했다. 그 결과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 등 수족관에서 쇼를 하던 돌고래들이 원래 제주 바다에서 살아가던 야생 개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경찰 수사를 통해 제주도 업자들의 불법 포획 사실이 드러났고, 바다사자와 맞바꿔 돌고래를 사들였던 서울시는 압류된 돌고래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방류를 위해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회의실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잘 모르겠다”였다. 돌고래를 잡아 수족관에 적응시키고 쇼를 시키는 방법은 수십 년간 많은 돌고래들의 희생을 통해 업계에 익히 알려져 있었다. 돌고래를 그물로 잡아 가두리에 넣고, 보름 정도 굶기고, 야생에서 먹지 않는 냉동 물고기를 먹게 하고, 이후엔 훈련을 통해 사람이 시키는 행동을 할 때만 먹이를 주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순치를 거부하거나 스트레스로 죽는 돌고래도 많지만, 살아남으면 돌고래는 억 단위가 넘는 고가의 상품이 된다.
반대로, 쇼를 하던 돌고래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방법은 국내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해외에서 몇 번의 방류 시도가 있긴 했지만, 한국처럼 오랫동안 수족관에 머물던 돌고래를 풀어준 사례는 아니었고, 기록도 충분하지 않았다. 2년 가까운 방류 위원회 기간에 “이 부분 혹시 누가 아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면, “그 부분은 연구된 자료가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돌고래 방류 과정은 모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성공의 결과는 중요했지만,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었기에 시민과 전문가들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는가’를 반복해서 점검했다. 야생성 회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돌고래들에게 살아 있는 고등어와 넙치를 주자, 처음엔 돌고래들이 놀라서 물고기를 피해 다녔다. 며칠째 고등어 떼를 피해 다니는 돌고래들을 보며 사육사들은 “우리 수조가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질 관리가 되는 줄은 몰랐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돌고래들이 고등어 떼를 모두 먹어 치우는 등 예측 불가의 과정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돌고래들을 옮길 때는 비행기를 전세 내었고, 공수부대처럼 화물칸에 탄 사육사들은 계속해서 돌고래들에게 물을 뿌려주었다. 제주 바다의 임시 가두리에서는 매일 활어를 공급하면서 수족관 돌고래들이 야생 돌고래들과 그물을 사이에 두고 교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류 직전 태풍으로 그물이 찢어지며 돌고래 한 마리가 빠져나가 모두를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이후 다행히 야생 무리와 어울리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돌고래 방류를 위한 제주도 해상 가두리 ⓒ김영환

잠수부들이 그물을 열기 위해 내려가는 모습 ⓒ김영환
이 모든 과정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아시아 최초의 시도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돌고래들은 열린 그물을 통해 바다로 나갔고, 다시 야생 돌고래가 되었다. 지금도 제주 바다에서는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했던 돌고래들이 새끼를 낳고 연안을 돌며 살아가는 모습이 관찰된다.

2013.7.18.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춘삼이 ⓒ김영환

2013.7.18.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춘삼이 방류 후 인사하는 시민들 ⓒ김영환
이 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한 가지 질문에 이르게 했다. 우리는 모르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이용해 왔느냐는 질문이다. 인간은 많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 왔지만, 여전히 동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돌고래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돌고래를 잡아 가두고, 굶기고, 훈련하고, 쇼를 시켜 왔다. 잘 모른다는 사실이 오락과 상업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른다는 것이 이용을 정당화하거나, 돌고래의 고통을 외면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류가 특별했던 이유는 인간이 돌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과 전문가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존재의 삶을 계속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름 그 자체가 아니라, 모르는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가다. 남방큰돌고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남방큰돌고래를 보내며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제주도 김녕항에 세워 진 돌고래 방류 기념비 ⓒ김영환
1)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