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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에 나타난 한국 교회의 성적표는 충격적입니다.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0%에 불과했으며,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5명 중 4명은 교회를 더 이상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셈입니다. 더욱 심각한 지점은 이 수치가 일시적인 하락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락했던 신뢰도는 이후 반등의 기미 없이 ‘구조적 저점’에 고착되는 듯합니다. (본문 중)
김상덕(한신대 평화교양대학)
오늘날 한국 사회는 종교가 삶의 필수적 가치에서 개인의 선택지로 변모하는 ‘탈종교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 있습니다. 제도 종교의 권위는 해체되고 있으며, 대중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발표된 “2026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혹자는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선교에 걸림돌이 된다고 우려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한 병명을 고지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라고 조언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으며 병을 키우게 내버려두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사는 한국 교회가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정확한 진단’이자, 근본적인 ‘치료’를 위한 성찰의 시작점입니다.

‘구조적 저점’에 갇힌 신뢰도: 국민 5명 중 4명은 믿지 않는다
조사 결과에 나타난 한국 교회의 성적표는 충격적입니다.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0%에 불과했으며,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5명 중 4명은 교회를 더 이상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셈입니다. 더욱 심각한 지점은 이 수치가 일시적인 하락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락했던 신뢰도는 이후 반등의 기미 없이 ‘구조적 저점’에 고착되는 듯합니다. 이는 특정 사건에 대한 일시적 반감을 넘어, 대중의 마음속에 한국 교회에 대한 불신이 깊게 뿌리 내렸음을 시사합니다.
반면, 불교와 천주교의 경우, 팬데믹 이후 신뢰도를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세 종교 중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물은 질문을 살펴보면, 불교는 2023년 조사에서 15.7%까지 하락했던 신뢰도가 2026년에는 24.4%로 크게 반등하며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천주교(가톨릭)는 2023년 21.3%였던 신뢰도가 2026년에는 25.3%로 상승하여 주요 종교 중 가장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기독교(개신교)는 2023년 16.5%에서 2026년 13.6%로 상대적인 신뢰도가 오히려 하락하며 타 종교의 회복세와는 상반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2009년 첫 조사 당시 기독교의 상대적 신뢰도가 26.1%였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입니다.
무종교인들이 느끼는 신뢰도 격차는 더욱 뚜렷합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가 무엇인지 묻는 물음에 무종교인 23.5%가 천주교, 23.0%가 불교라고 답했는데, 기독교라고 답한 사람은 2.2%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팬데믹 이후 타 종교들이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기독교의 신뢰 위기는 일시적인 충격을 넘어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극우’라는 뼈아픈 꼬리표: 광장 정치가 독이 된 이유
이번 조사에서 대중이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는 ‘정치적 편향성’이었습니다. 국민의 47.1%가 한국 교회를 ‘극우’ 성향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도(30.1%)나 진보(3.1%) 인식을 압도하는 수치입니다. 이러한 ‘극우’ 프레임이 형성된 결정적인 경로는 무엇이었을까요? 대중은 교회의 교리가 아닌, 광장에서 벌어진 ‘공개적인 집회와 시위(66.5%)’를 보고 교회를 극우로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12.3 비상계엄 옹호’(64.5%)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공익보다 편향된 정치권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이번 신뢰도 하락의 결정타로 작용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배타적 혐오 태도’(58.0%) 때문입니다. 광장의 기독교가 가진 타 집단에 대한 공격적 언어와 배타성이 극우적 이미지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목회자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국민의 88.5%가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종교가 광장에서 ‘설득의 언어’가 아닌 ‘투쟁과 강요의 언어’를 선택할 때, 대중은 그 종교를 신뢰의 대상이 아닌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정치나 사회적 아젠다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조사 결과는 그동안 한국 교회가 공론장에서 보여준 메시지와 전달 방식 모두에 대해서 반성하게 합니다. 한국 교회는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열린 자세와 존중의 태도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경청과 존중입니다.
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모습: ‘자화자찬’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
교회 내부와 외부의 인식 격차는 마치 평행선처럼 벌어져 있습니다. 기독교인 응답자의 67.8%는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답했으나, 무종교인의 경우 신뢰한다는 대답은 고작 6.8%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괴리’는 언론 보도에 대한 태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기독교인은 언론이 실제보다 교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고 불평(56.7%)하지만, 무종교인과 타종교인은 오히려 “언론 보도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기독교가 더 부정적이다”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대중이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는 기독교인의 삶이 언론에 비친 모습보다 더 실망스럽다는 이 사실은, 한국 교회의 자기 성찰 부재를 보여주는 가장 뼈아픈 대목입니다.
‘친근함’에서도 밀려나다: 제도 종교의 몰락과 영성의 재배치
정서적 거리감을 나타내는 ‘친근감’ 지표에서도 기독교(16.7%)는 불교(34.0%)와 가톨릭(21.5%)에 밀려 3위에 머물렀습니다. 특히 잠재적 전도 대상인 무종교인이 기독교에 느끼는 친근감은 단 4.2%에 불과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단순히 종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제도화된 종교의 권위와 통제에는 냉소적이지만, 명상이나 치유 같은 ‘개인적 영성’과 ‘종교적인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즉, 대중은 ‘영성’을 원하지만 ‘교회’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제도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대중의 실존적 욕구를 외면하는 사이, 기독교는 사회 공론장에서 가장 매력 없는 브랜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익보다 ‘교회의 이익’이 먼저인가? 공공성 상실에 대한 경고
이러한 정서적 소외는 가치의 충돌로 이어집니다. 대중은 한국 교회가 갈등 상황에서 ‘사회 공동의 이익’(20.9%)보다 ‘종교적 신념’(62.3%)을 우선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보편적 공익과 충돌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뢰 회복을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 1위로 ‘공공의 이익보다 교회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24.0%)가 꼽혔습니다. 교회가 자신의 성벽을 높이 쌓고 이익을 챙기는 사익 집단처럼 비칠 때, 공공성은 사라지고 불신은 깊어집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핵심 가치는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 신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을 살피는 ‘공적 책임성’에 있습니다.
공감과 환대의 정신으로
‘전거지감’(前車之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 수레가 경계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수년간 한국 교회가 보여 준 정치적 편향성과 공공성 상실은 ‘신뢰도 추락’이라는 뒤집힌 수레의 모습과 같습니다. 탈종교화 시대에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나 내부 결속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교회 대 세속’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사회와 호흡하는 ‘공공신학적 전환’입니다. 확신에 찬 ‘강요의 언어’를 내려놓고, 타자를 환대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포용과 화해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광장에서 보여 준 독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웃과 함께하며 약자에 공감하고 이방인을 환대하는 교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한국 교회 신뢰도 19.0%의 경고가 드러내는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이 위기 상황을 직면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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