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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는 AI 기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일종의 ‘윤리적 진공상태’에 빠져 있다. 인공지능을 신성시하고 그것을 일종의 신의 경지에까지 올려놓으려는 움직임, 인간이 AI 기술의 힘을 빌려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망상은, 성경이 일관되게 경계해 온 우상숭배와 바벨탑의 현대적 재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 중)
오석현(미국 Caroline University 경영학과 교수)
이상민, 박동열 │ 『AI 시대, 인류에게 기회인가 위기인가』 │ 고북이
2026. 5. 14 │ 411쪽 │ 22,000원
열광의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가 일상의 언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이제 그것은 교회 강단에서도, 기업 회의실에서도, 학교 교실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화두가 되었다. 정부는 ‘AI 일상화’를 국정 목표로 내세우고, 기업은 AI 도입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개인들은 AI를 모르면 도태된다는 불안에 휩쓸린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는 검색엔진을 대체하는 일상의 도구가 되었고, 곧 다가올 ‘에이전틱 AI’ 시대에는 인간이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AI가 우리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AI를 향한 장밋빛 기대와 조바심으로 달아올라 있는 지금, 이 책은 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윤리적 성찰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들은 책의 여는 말 제목을 “장밋빛 기대와 엇갈린 재앙과 위험”이라 붙였다. 이 한 문장 안에 책 전체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AI는 분명 인류에게 전례 없는 생산성과 편의를 가져다주고 있지만, 그 빛 뒤에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짙은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 인류에게 기회인가 위기인가』표지 ⓒ고북이
AI 시대의 도래와 비판적 고찰
책의 제1부에서 저자들은 일상생활과 교육, 보건 의료와 제약, 금융과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활발히 활용되는 AI 기술을 폭넓게 조망한다. 의료 영상 판독, AI 신약 개발, 로보어드바이저, 리걸 테크 등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 일반 지능’(AGI)이 몇 년 내에 실현되어 질병과 빈곤, 기후 변화 문제까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하며, 빅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기대 위에서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에서부터 이미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AI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빅테크 기업들이 “AI가 인간의 역할과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라는 주장에 좀처럼 반박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주장이 자신들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저자들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국 사회가 ‘초거대 AI 보유국 3위권’이라는 수치에 자족하는 것 역시, 실제 기술력의 우위라기보다 정책 목표와 개발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착시일 수 있다는 진단도 신선하다.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 트랜스휴머니즘, AI 예술, 가상 인플루언서 등의 쟁점을 다루면서 저자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차분히 묻는다.
책의 제2부에서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생성형 AI의 ‘환각’ 현상과 자율 주행 자동차에 대한 적대적 공격 가능성에서 출발하여,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청년층의 ‘사다리 단절’, AI 기술이 초래하는 막대한 환경 부담, 자율 살상 무기 시스템,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 알고리즘 편향으로 인한 차별에 이르기까지 AI의 부정적 영향을 조목조목 짚어 낸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저자가 단순한 기술 비판에 머물지 않고 자크 엘륄(Jacques Ellul)과 한스 요나스(Hans Jonas) 같은 고전적 기술철학자들의 사상을 소환하는 방식이다. 엘륄은 ‘기술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기술의 자율성과 양면성을 경고했고, 요나스는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윤리’를 역설했다. 이들이 한때 ‘기술 공포증 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AI 시대에 그들의 통찰이 오히려 더욱 적실하게 다가온다는 저자의 지적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어 저자들은 현대의 AI 전문가와 사상가들의 경고를 차례로 소개한다. 스튜어트 러셀(Stuart Russell)은 초인적 지능의 위험을,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은 AI 기술의 억제와 규제의 필요성을,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초지능 AI의 통제 문제를,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진화된 AI 앞에서 인간이 ‘쓸모없는 계급’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이들의 경고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최근(2026년 2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의 실험에서, 챗GPT·제미나이·클로드가 벌인 21차례의 가상 핵 위기 시뮬레이션 중 무려 20번에서 핵무기 사용이나 핵 위협이 등장했고, 핵무기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경우는 단 한 차례뿐이었다는 보고는 AI를 군사 시스템에 통합하려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 시민에게 이 책이 갖는 의미
이 책이 그리스도인 시민에게 특별히 중요하게 읽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지금 인류는 AI 기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일종의 ‘윤리적 진공상태’에 빠져 있다. 인공지능을 신성시하고 그것을 일종의 신의 경지에까지 올려놓으려는 움직임, 인간이 AI 기술의 힘을 빌려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망상은, 성경이 일관되게 경계해 온 우상숭배와 바벨탑의 현대적 재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돌보는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다스림은 정복과 착취가 아니라 사랑과 책임에 기반한 청지기직이다. AI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 인간 노동의 가치를 효율과 생산성으로만 환원하는 사고방식, 소수가 기술을 독점하여 다수를 소외시키는 ‘인공지능 만능주의 사회’는 모두 이 청지기직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스튜어트 러셀 등이 2014년 영국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지에 기고한 글에서 “AI 개발의 성공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지만, 위기를 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라고 경고한 것은, 단순한 과학자의 우려가 아니라 책임 있는 청지기로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에 대한 준엄한 촉구로 들린다. 또한 저자들이 지적하는 노동 시장의 ‘K자형 불평등’, 청년층의 사다리 단절, AI 격차로 인한 새로운 소외 계층의 등장 같은 문제들은 모두 약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강조해 온 성경의 가르침과 직결된다. 이사야가 외쳤던 정의, 예수께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보이신 긍휼이 AI 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이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을 위한 AI를 향하여
저자는 비관론만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책의 제3부는 건설적인 대안을 향해 나아간다. ‘생명미래연구소’의 ‘아실로마 인공지능 23원칙’, ‘국제전기전자공학자협회’의 ‘윤리적 조율 설계’와 같은 국제적 윤리 규범 정립과 유럽 연합의 ‘인공지능법’, 미국의 ‘알고리즘 책임법’ 등 각국의 법 제도 및 ‘히로시마 인공지능 프로세스’와 같은 국제 협약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AI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가능성과 한계를 균형 있게 짚는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인간과 AI의 공존, 협력적 파트너십, 신뢰할 수 있는 AI, 그리고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다. 저자가 꿈꾸는 미래는 소수가 AI 기술을 독점하는 ‘인공지능 만능주의 사회’가 아니라, AI 인프라를 공공재처럼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혁신의 가치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누는 ‘인공지능 협력 번영 사회’다. 인간의 창의성과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AI 격차로 인한 불평등과 소외를 극복하며, 때로는 ‘AI 디톡스’를 통해 기술로부터 거리를 두는 지혜까지, 이러한 비전은 모든 사람의 존엄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기독교적 사회 윤리와 깊이 공명한다.
물론, 저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이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 실제로 갖추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익 추구에 몰두하는 기업인,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정치인, 기술 개발에만 몰입하는 AI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이 비전을 실현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저자들의 냉정한 진단은 솔직하고 신뢰할 만하다.
교회와 그리스도인 시민의 자리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 시민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된다. 교회는 AI가 제기하는 윤리적 질문들, 곧 인간의 존엄, 노동의 의미, 불평등과 소외, 책임과 청지기직, 생명의 신비 등을 진지하게 다루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신학적·윤리적 분별력을 갖추도록 도와야 하며, 성도들은 자신의 삶과 직업 현장에서 AI를 ‘도구’로 사용하되 그것에 종속되거나 우상화하지 않는 주체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AI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사용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하고, 사회에서는 약자가 AI 시대에 더 깊은 소외에 빠지지 않도록 연대와 돌봄의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이 책은 AI 기술서는 아니다. AI라는 거대한 현상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인문적·철학적·윤리적 성찰의 책이다. AI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무비판적 열광 사이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귀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AI 시대가 인류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저자들의 간절한 바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창조 세계를 잘 돌보는 청지기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확신과 다르지 않다. 호킹과 러셀의 경고가 인류의 마지막 경고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깨어 있음을 위한 깊고 진실한 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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