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힘들여 노동하고 변화와 열매를 맛보는 삶은, 감정 노동으로 많이 일그러졌던 내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 자책하고 상처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던 모습이 많이 누그러졌다. 여전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 동네 어르신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속이 시끄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 분량과 한계를 인지하기에, 겸손히 주님 앞에서 내 할 바를 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본문 중)

최용철

 

나는 어떻게 농사에 뛰어들게 되었나

 

24년간의 대학생 선교 단체 사역을 마치고 나는 이후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청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과 사역자들에 대한 반감을 체감하고 있었기에, 쉽사리 전임 사역의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개혁적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선배에 대한 실망과 당위를 이야기하지만 삶에서는 그 말과 괴리를 보이는 사역자들의 모습 때문에 신앙마저 흔들리는 청년들의 표정이, 내내 마음 한 켠에 걸렸다. 게다가 나 역시 사역을 하면서 스스로도 못 지키는 당위와 정답을 너무 많이 말했던 괴로운 경험 때문에, 사역보다는 일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현실적으로는, 오랜 기간 선교 단체 사역을 해 왔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먼저 농사를 짓고 있던 후배들의 농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간다고 했을 때, 양가 부모님을 비롯하여 농사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이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하며 극구 만류하였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고, 몸을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기에, 힘들기는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5년, 8년 먼저 이 길을 걷고 있는 두 후배가 있었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Unsplash

 

농사의 어려움

 

우리 농장의 이름은 살림농장이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농사” 이 문장이 우리의 캐치프레이즈이다. 3명이 약 만 평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배와 복숭아, 단호박과 고구마를 노지에서 친환경으로 생산한다(복숭아는 친환경이 어려워 저농약 방식을 취한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서의 농업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일구는 농업을 하고 싶었기에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일 년 일 년이 만만치가 않다.

 

경제성

 

화학농약을 쓰면 병충해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친환경 작물 보호제를 사용하여 방제를 하다 보면 비용도 많이 올라가고 시간도 많이 든다. 그렇게 해도 100% 방제가 어렵다. 그렇기에 보조적인 수단들을 강구하고, 여러 보완책을 추가로 시행한다.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우리의 생산 비용이 상승했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비싸게 받을 수가 없다. 관행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의 시중 가격이 있기에 내 가치를 구매해 달라고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조금 더 비싸게 받는 정도이다.

 

게다가 과수의 경우에는 예쁘고 보기 좋은 과일보다는 흠이 조금씩 있는 과일이 많이 나온다. 맛이나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아무런 흠이 없는 깨끗한 과일만 상품으로 팔리기에 결국 이런 생산물들은 대부분 파지 처리된다. 즙을 내는 데 사용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싼(대략 상품의 30-40퍼센트) 가격으로 판매한다.

 

우리 농장의 농산물은 복숭아만 직접 지인들을 통해 판매하고, 배, 단호박, 고구마는 학교 급식에 납품한다. 어느 정도 판로가 안정되었지만, 학교 영양사 선생님들이나 조리사 선생님들도 일반 소비자들과 똑같이 컴플레인을 한다. 껍질에만 뭐가 묻은 것이니, 깎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교환을 요구한다. 결국 선별을 엄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품의 비율이 떨어지면 수익이 크게 감소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 5년의 매해 평균 소득이 아주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배우자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버티고, 다른 멤버들은 겨울철에 과수원들을 돌며 전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경력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아마도 나도 올겨울부터는 전지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농외소득을 통해서 어느 정도 부족분을 채운다.

 

나는 늘 가치 중심의 삶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한 해 농사를 실농하여 수익이 적을 때면 고민이 든다. “계속 이렇게 가는 것이 맞나? 나는 언제까지 이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된다.

 

전문성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전문성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농업은 1년 단위로 돌아가기에 시행착오의 기회를 많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단히 전문적인 지식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 농업이다. 땅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식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하기에, 매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가물면 물을 대야 하고, 비가 오면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곧바로 과수 방제를 해야 한다. 병충해가 퍼지기 시작하면 초기에 대처를 잘해야 한다. 어떤 미량 원소가 부족한지, 유기물은 어떤지 알기 위해 토양 측정을 해야 하고, 거기에 맞게 퇴비의 양을 정해야 한다. 한번 실수하면 생각보다 후폭풍이 세다. 일 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수확까지 잘하고 나서도 보관을 잘못하여 수확물의 반 가까이를 폐기한 때도 있었다.

 

예전에 주위에서 “할 거 없으면 고향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걸 많이 들었는데, 농사를 지어 보니 생각보다 공부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전문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유튜브를 보며 작물에 대해 공부한다. 한 해, 한 해 많은 것들을 배워간다.

 

육체적 어려움

 

젊었을 때 나는 운동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농구, 축구, 족구, 씨름, 배드민턴, 달리기 등 거의 모든 운동을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귀농한 첫해에 양쪽 무릎에 관절 내시경 시술을 했다. 연골 파열 때문이다. 한 열흘 배 전지를 하면서 고소 작업차에 올라 앉았다 일어나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전에 운동을 과격하게 하면서 얻었던 상처가 악화해 양쪽 무릎에 다 시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쪼그려 앉는 밭 작업이 어렵게 되었다. 무릎이 아파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드니 허리를 굽히는데, 허리도 많이 아프고, 무릎에 하중이 많이 실리다 보니 4년이 지난 지금도 다리가 여전히 불편하다. 그 좋아하던 운동을 못 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귀농 2년 차에는 단호박을 전동 가위로 따다가 왼손 집게손가락이 절단되기도 했다. 접합수술을 통해 붙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과수 일을 하다 보면 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데, 사다리가 조금만 잘못 놓여도, 위로 올라갈수록 떨어지기 쉽다. 물론 몇 차례 떨어지기도 하였고, 그렇기에 사다리에 오를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부상의 위험에 더해, 장시간의 격한 노동 강도는 또 다른 육체적 어려움을 야기한다. 늘 출근 시간은 일출 시각 부근이다. 봄, 여름에는 특히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을 시작하여 저녁 7-8시에 일을 마친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쉴 때도 있지만, 복숭아 시즌에는 낮에도 선별 포장 작업을 한다. 추운 겨울에는 전지 작업을 하거나, 단호박을 속을 파내고 껍질을 깎아서 납품하는 가공 일을 주로 한다. 학교 급식 현장에서 조리하기 좋게 가공해 가져오길 원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여름에는 풀과의 싸움이 너무도 힘들다. 관행 농업에서는 제초제를 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일일이 예초기를 돌리고, 작물 사이사이는 손으로 풀을 뽑는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일이지만, 인건비 문제가 있으므로 직접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주 오랜 시간 제초에 정성을 들인다. 농사가 왠지 한가할 것 같지만,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쉼 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결국 비가 와서 강제로 쉴 때를 제외하곤,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

 

농사를 통한 깨달음과 고민

 

겸손과 현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

 

그렇게 수많은 어려움을 통과하며 결국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력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늘 생각하게 된다. 꽃이 피는 시기에 온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열매가 수정이 잘 안되고, 고온의 가뭄이 지속되면 간절히 비를 내려달라고 간구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농사를 몇 년 짓다 보니 바람 속 습도를 통해 ‘비가 오겠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일을 하면서 함께 “비 준비하시네”라는 찬양을 부르고,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고, 기후 위기로 인해 여러 어려움이 많기에 더욱더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리고 일 년이라는 주기로 새싹이 돋고, 잎사귀가 푸르러지며, 열매를 맺는 자연 변화의 순간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그분의 창조 세계가 어떻게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아름다워지는지를 실감할 때가 많다. 사역을 그만둔 후 잠깐 회사에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기 어려웠던 그때에 비하면,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 느끼는 감사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복숭아꽃 배꽃이 활짝 필 때의 그 아름다움, 복숭아를 나무에서 바로 따서 껍질을 쭉쭉 벗겨 한입 베어 물 때 절로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줄기마다 매달려 나오는 큼지막한 고구마 덩어리들을 보는 희열이 힘든 노동 중간중간에 있기에 또 하루 힘을 내게 된다.

 

노동을 통한 힐링

 

그렇게 힘들여 노동하고 변화와 열매를 맛보는 삶은, 감정 노동으로 많이 일그러졌던 내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노동하는 삶을 통해, 자책하고 상처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던 모습이 많이 누그러졌다. 여전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 동네 어르신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속이 시끄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 분량과 한계를 인지하기에, 겸손히 주님 앞에서 내 할 바를 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힐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성도들 삶의 분투

 

오랫동안 감당했던 전임 사역을 그만두고 일상적인 직업을 가지게 된 후, 난 내가 사역자로서 너무 쉽게 정답으로 달려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존의 무게와 과중한 업무 속에서 성도들은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정답에 이르기 위해 많은 눈물과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 수고에 대해 공감받고, 격려받고, 함께 해보자고 지지해 주는 공동체가 있고, 하나님의 기다리시는 사랑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요즘 내게는, 극심한 육체적 피로를 안고 그래도 예배와 공동체 모임에 참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와서 꾸벅꾸벅 졸다 돌아가야 했던 예전 어르신들의 모습이 완전히 새롭게 해석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확신과 열정이 커지기보다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과 사랑을 가진 따뜻한 환대의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글을 마치며

 

누군가 내게 “농사를 지어보니 청년들에게 농업을 권할 수 있겠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 내 대답은 회의적이다. 일단 농업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이 너무 높다. 땅이 필요하고 여러 농기계가 필요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나의 경우는 먼저 농사를 경험하고 농장과 여러 농기계를 가진 지체들이 있었기에 조금은 쉽게 농사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더해서 생존과 ‘일과 삶의 균형’, 기후 위기에 따른 전망 등을 생각하면 ‘정말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점점 농업인이 줄고, 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서, 농사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요청에 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국가 정책과 소비자의 인식 변화와 농업인 스스로의 의식 변화, 공동체적 지원 등 많은 부분이 변화되지 않고는 농업이 계속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 부합하는 농업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가치보다는 경제성, 효율성만 생각하며 생산하고 소비하고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낭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소명 의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연대하고, 그런 가치를 확산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발걸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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