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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물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하겠다”라는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성경 연구의 답변을 검토하고, 함께 나눌 자료를 고르며, 설교의 초안을 다듬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제안한 내용을 본문과 회중 앞에서 살피고 선택하는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다. (본문 중)

 

한근흥(영등포 두레교회 은퇴 선교사)

 

한국 사회와 교회 공동체는 안녕한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이다. 어린 여학생이 중간에 탔다. 내 마음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데, 말이 입안에 머문다. 여학생은 긴장감과 불안을 느끼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어색하고 불편하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예전에는 이웃 어른을 보면 인사하고 받아 주는 게 당연했는데….

 

교회의 풍경은 어떤가? 대형 교회는 익명성 보장이란 큰 장점(?) 때문에 사람이 몰리고, 소형 교회는 그 반대다. 그나마 교회 안에 다양한 소그룹이 있어서 서로 교제하고 알아가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질문을 갖게 된다. “우린 서로를 얼마나 깊이 알까?”

 

하나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개신교의 핵심 원리인 ‘만인 제사장직’은 교회 내의 계급 구조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든 계급장을 다 내려놓고, 성도 대 성도로 만나 깊이 있는 교제와 나눔을 하며, 모두가 평등한 수평적인 관계를 이뤄갈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 공동체가 회복되고, 그 힘으로 한국 사회를 더 평등하고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서클’을 생각해 보았다. 서클은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따라, 둥글게 둘러앉아 한 사람씩 이야기하고, 침묵으로 경청하며 서로 연결되고,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자리’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여기서 둥글게 둘러앉는 것은 평등을 상징한다. 서클 참가자들은 누구나 원의 중심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앉아 있다. 그래서 서클에 참석한 사람은 다 평등하게 발언할 기회를 갖는다. 물론 아직 말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말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1) 그리고 누군가 말할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대화를 한다면서 얼마나 자주 중간에 상대의 말을 끊고, 끼어들고, 내가 궁금한 질문을 하고 있는가? 물론 주고받는 대화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서클은 침묵으로 경청하며 존중하고 연결되는 자리인 것이다.

 

ⓒUnsplash

 

책 읽기 모임과 서클을 시작하다

 

이제 우리 교회에 서클이 시작된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내가 출석하는 두레교회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200여 명이 출석하는 40년 된 장로교회다. 교회 재정을 전 교인에게 낱낱이 공개하고 세 번의 분립 개척을 하는 등, 비교적 수평적이고 열린 교회라 할 수 있겠다.

 

2025년 1월, 우선 서클을 소개하는 『회복적 정의』라는 책을 읽는 모임을 시작했다.2) 목사님 부부와 장로, 집사 몇 사람을 포함해 총 15명이 함께했으며, 격주로 토요일 아침 기도 후 2시간 정도 모임을 가졌다. 책 내용 발제는 돌아가면서 했고, 모임의 시작과 마무리는 서클 형식으로 진행했다. 기본 규칙도 정했다. ‘토킹 피스3)를 가진 사람만 이야기하기, 침묵으로 경청하기, 비밀 보장하기, 끝까지 함께하기’다.

 

5개월 후 모임을 마칠 즈음 참여자들은 서클에 더 관심을 갖고 배우기를 원했다. 서클 관련 책을 선정하고4) 두 번째 책 읽기 모임과 서클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서클을 진행해 보도록 했다. 그리고 4개월 후, 14명의 서클 진행자가 탄생했다.

 

드디어, 주일 오후 서클이 시작되다

 

두레교회는 2026년부터 어린이와 청년을 제외한 전 교인이 주일 오후에 월 1회(총 10회) 서클 모임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일 년간의 책 읽기 모임과 서클에 함께 했던 목사님의 결심과 참여자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였다. 놀라운 결정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몇 번 광고한 후에 70여 명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서클에 참여하기로 했고, 열 개 모둠으로 나누었다. ‘서클’이란 이름은 공모를 거쳐 ‘동그라미 모임’으로 바꿨다.

 

기도로 서클을 준비했다. 대화 주제를 정하고 성구와 질문들이 들어간 서클 기획안을 마련했다. 그 기획안으로 진행자들과 함께 사전 서클 모임을 가졌고, 10명의 진행자들은 서클 기획안에 따라 주일 오후에 모둠별로 서클을 진행했다. 10회 동안 다룬 주제들은 ‘나의 이름, 나는 누구인가, 감정 욕구 상처, 회복, 삶의 의미와 목적, 공동체와 나, 이웃과 세상으로, 청지기의 삶, 감사와 축복, 그리고 일상으로’ 등이었다. 모든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8개월간 10회의 서클을 마치고 성도들은 이런 소감들을 남겼다. “나를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서로를 알게 되어 좋다”,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비밀이 보장되어 좋다”, “잘 들어줘서 편안하고 좋았다”, “청년들도 같이하면 좋겠다”,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을 더 알게 된 것 같다”, “모든 이가 인생의 스승이라 느껴진다”, “다른 곳에서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내 이야기를 경청해 줘서 이해받고 위로받았다”, “사람들과 가까워져 좋았다”, “교회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다른 교회에선 불가능한 모임이었다.”

 

돌아보며

 

나는 2019년 말 선교사 사역에서 은퇴한 후, 『회복적 정의』를 만났고 서클을 체험했다. 이후 지금까지 7년 동안 조정 위원으로 경찰서와 학교에서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의 당사자들인 부부, 학생, 학부모들을 만나며 갈등 전환과 관계 회복을 위한 ‘회복적 대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쉽지 않은 모임을 마칠 때, 그들은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어요”, “속이 후련해졌어요”, “사과받아서(또는, 해서) 좋았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동이 밀려온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이런 감동과 생각을 평소 교회 사람들과 나눠 왔고, 때로는 주보에 글을 싣기도 했다. 그런 나눔이 모여 책 읽기 모임과 서클로 이어진 것에 감사를 드린다.

 

서클의 적용과 실천

 

서클은 단지 하나의 유익한 방법론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삶과 철학과 정신을 구현한다. 만인 제사장적 평등한 삶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클은 하나의 세속적인 수단이 아닌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서클을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은 그 감동과 정신을 자신과 가정의 삶에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성경적인 부부 관계’를 주제로 한 서클을 체험했다면, 평등과 존중이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내가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클의 실천 질문5)을 통해 부부 관계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과 실천의 과정이 반복되면, 부부 관계는 하나님이 태초에 의도하신 모습으로 회복되어 갈 것이다.

 

이처럼 먼저 개인적으로 서클을 통해 깨달은 것을 그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면서, 그다음 단계로는 교회 내 각종 소그룹에 서클 방식을 적용하며 더 깊이 있는 모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다른 교회에선 불가능한 모임이었다”라고 서클 모임 소감을 밝힌 분도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 글이 제시하는 것처럼 책 읽기 모임부터 서클 방식으로 시작해 보길 권한다. 함께 기본 규칙을 정하고,6) 진행은 돌아가면서 맡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누구나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해보길 바란다. 그러면 서클을 이해하게 되고, 직접 경험해 보며, 감동과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서클 모임은 누구든 어느 교회든 시작할 수 있다.


1) 말할 준비가 아직 안 됐을 때는 ‘통과’ 또는 ‘패스’ 라고 하면 되고, 다음 사람이 말할 기회를 갖는다. 통과 또는 패스했던 사람은 말할 준비가 되면 손을 들어 의사를 표시하고 진행자가 다시 말할 기회를 주면 된다.

2) 이재영,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피스빌딩, 2020).

3) 서클에서 사용되는 소품으로 작은 인형 등 서클 주제와 관련성 있는 것을 사용한다. 토킹 피스를 들고 있는 사람은 이야기가 끝나면 이어서 말할 사람에게 토킹 피스를 건네주면 된다.

4) 케이 프라니스. 배리 스튜어트, 『평화 형성 서클』(대장간, 2016).

5) 서클의 질문은 보통 여는 질문(1-2개), 주제 질문(2-3개), 실천 질문(1-2개)으로 구성된다.

6) 일반적으로 ‘토킹 피스를 가진 사람만 이야기하기, 침묵으로 경청하기, 비밀 보장하기, 끝까지 함께하기’ 등을 기본 규칙으로 하지만 모임에 따라 참가자들과 논의하며 규칙을 추가 또는 변경할 수 있다. 규칙은 ‘…하지 않기’ 등의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하기’ 식의 긍정 표현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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