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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왜 그것도 못 하느냐”라는 재촉이나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지지의 말이 아니라, 천천히 해도 사라지지 않고 안전한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경험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누군가의 그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이다. 떨림이 하려는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있을 때, 그 떨림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더 나아가, 당신의 애착 트라우마 이야기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된 당신 안에 생존을 이루어 온 지혜의 힘이 있음을 알려 주는 신호임을 기억하자! (본문 중)
곽은진(아신대 상담학 교수)
발표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갈라져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순간 멍해지고 … 어떻게든 발표가 끝나면 안도감보다 수치심과 뭔지 모를 불안이 더 밀려와 그 자리를 빨리 뜨고 싶어져요. 그러면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데 저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이런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을 앞둔 상황에 있는 청년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뒤에 남는 수치심과 불안은 상황이 끝나도 내면에 지속되어 더 힘든 감정을 겪게 만든다. 이런 경험을 남보다 더 자주 하는 청년들은 대개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너무 두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준비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 정도는 떨어”, “자신감을 가져”, “나도 그랬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봐” 등의 조언과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안다. 이것이 마음먹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청년기는 평가가 쏟아지는 시기다. 입시와 취업, 면접과 발표가 이어지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끝없는 비교가 일어난다. 이 비교와 경쟁의 결과는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로 드러나고, 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이어진다. ‘사회불안’이란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만나는 상황에서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그 상황을 피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진입할 때, 주변의 압박이 이를 강화하고 확장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도 유독 몸이 얼어붙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현재의 상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Unsplash
나는 얼마 전 뇌 생물학에 기반한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인 브레인스포팅의 창시자 데이비드 그랜드 박사의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랜드 박사는 불안과 공황을 ‘연기’에 비유한다. 연기가 이유 없이 생기지 않듯, 연기가 있는 곳 어딘가에는 불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황 발작을 과거의 경험이 몸에서 다시 켜지는 플래시백으로 보고, 그런 경험이 또 올까 두려워하는 것 자체도 외상 후 스트레스의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시각으로 사회 불안을 보면 ‘또 창피를 당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은 현재의 평가 상황이 오래된 몸의 기억을 건드린 결과일 수 있다. 그랜드 박사는 지적이고 유능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 아래에 어리고 두렵고 외로운 아이가 있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유능한 청년이 면접이나 발표대 앞에서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얼어붙는 것은, 지금의 그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그 청년 내면의 한 부분이 반응하는 것이다. 긴장 속에서 경험하는 떨림과 불안이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담학에서는 흔히 불안과 공황 증상의 뿌리를 애착에서 찾기도 한다. 아이는 배고픔과 두려움을 신호로 보내고, 양육자가 응답할 때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다. 그런데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번번이 외면되거나 무시되고, 양육자가 화를 낼 것 같은 환경이라면 아이는 다른 것을 배운다. 즉 소리를 줄이고, 눈에 띄지 않고, 숨죽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경험한 상대의 시선이나 자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어른이 되어도 몸은 이 학습을 간직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순간 사라지고 싶은 반응이 자동으로 켜진다. 말이 엉키고 눈을 피하고 수치심이 몰려오는 것은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오래된 생존 전략이 성실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랜드 박사는 이른 시기의 트라우마가 언어가 생기기 전의 신체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청년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이유를 이 말이 설명해 준다. 내가 경험하는 떨림과 플래시백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암묵적인 반응이다. 물론 모든 사회불안이 애착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기질, 또래 사이에서 겪은 따돌림과 수치의 경험, 학습된 회피도 함께 작용한다. 다만 여러 방법을 써도 풀리지 않는 불안의 밑바닥에 이른 시기의 관계 경험이 놓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기를 내라”, “자꾸 부딪혀 보라”라는 조언은 얼어붙은 부분을 또 한 번 자극하기 쉽다. 애착에서 시작된 불안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몸의 속도를 허락하는 것이다. 늘 서두르고 숨죽이며 살아온 사람에게 가장 낯선 말은 “천천히 해도 돼”, “괜찮아”일 것이다.
둘째, 얼어붙거나 굳어 버리는 어린 부분을 설득하거나 억지로 떼어 내지 않고, 지금의 어른인 내가 그 곁에 머무는 것이다. 상담 장면에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어린 시절 장면 속의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나오게 하는 대신, 어른이 된 내담자가 그 아이 곁에 있도록 안내한다. 떠나지 않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경험이 쌓일 때, ‘사람들 앞’이라는 장면의 의미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셋째, 혼자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랜드 박사는 애착의 상처를 혼자 다루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애착은 양육자와의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에 반드시 누군가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 대상은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애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 밖에 있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의 인물이나 상담자, 그리고 안정된 관계가 그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불안 때문에 일상과 학업, 일이 계속 어려워진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전문가를 찾기를 권한다.
청년의 떨림을 결함이나 실패 혹은 무능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의 생존 기록으로 읽어 보자. 그것은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몸이 배운 방식이 지금도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곁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왜 그것도 못 하느냐”라는 재촉이나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지지의 말이 아니라, 천천히 해도 사라지지 않고 안전한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경험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누군가의 그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이다. 떨림이 하려는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있을 때, 그 떨림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더 나아가, 당신의 애착 트라우마 이야기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된 당신 안에 생존을 이루어 온 지혜의 힘이 있음을 알려 주는 신호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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