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원고는 5월 18일 “한국교회 신뢰회복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발표될 주제발제문입니다. 전체자료집을 보고자 하시는 분은 첨부파일을 참고해 주십시오

한국교회의 신뢰, 현황과 전망
                                                                                임성빈 교수 / 장신대 기독교윤리학

1. 우리가 신뢰를 말하는 이유
        대한민국만큼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발전을 이룬 나라도 세계에서 드물다. 36년간의 일제식민지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1945년에야 맞이하였고, 곧 이은 민족분단과 6.25라는 큰 비극적 사건을 경험한 국가가 50여년 만에 오늘날의 경제규모와 정치적 민주화와 다양한 사회문화의 공존과 사회 안정을 이룩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위기를 말하고, 오늘의 정치 경제 현실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말하고 있지만 적어도 신앙인들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 정도의 사회적 부와 안정을 누리게 되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불모지에서 오늘날 교회와 신앙인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풍성한 신앙의 자유를 누리도록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감사가 있어야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문제들은 불평의 대상이 아니라 청지기로서의 신앙인들과 교회가 함께 감당하여야 할 신앙인들의 책무(accountability)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청난 압축적 성장에는 값비싼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요사이 절감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화로 상징되는 새로운 21세기적 시장가치의 편만화, 세계적 경쟁체제의 가속화는 농·어촌과 생태계의 피폐화, 전통문화 및 윤리가치의 붕괴,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의 범람 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사회의 통합은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기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실존적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으며, 무한경쟁체제의 강화로 인하여 동료와 이웃이 실종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어 ‘신뢰’의 상실이라는 사회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사회구성원 서로간의 불신감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또한 정부의 국민들에 대한 불신감의 고조는 결국 건전한 시민사회를 가꾸면서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통합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통일한국을 향한 전환기적 시점에서 사회발전 및 통합을 위하여 가장 강조되어야 할 분야 중 하나는 사회구성원 서로간의 신뢰의 증진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 받은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와 사회가 위기 상황에 있다는 심각한 현실인식을 갖게 된다. 특별히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차원, 즉 기독교윤리의 차원에서 교회는 그 위기의 근본요인 중 하나로서, 또한 그 위기 극복의 대안 중 하나로서 신뢰를 주목하게 된다.

2. 왜 신뢰인가?
2-1. 신앙적 측면에서
        신뢰는 우리의 신앙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리처드 니버는 신앙이란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자아의 태도”이며 또한 그 태도는 “근본적으로 존재 자체를 신뢰하는가 아니면 불신하는가”로 나뉘어진다고 정의하였다. 신앙은 신뢰(Trust)와 충성(Loyalty)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하나님과 나와 너 사이의 신뢰와 충성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구성되고 표현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구체적 실현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충성, 이웃을 향한 신뢰와 충성의 정도로 가늠되어 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선행적인 사랑, 즉 창조와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심판,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회복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신뢰와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다. 즉 언약(covenant)안에서의 은혜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중심적 죄성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게 한다.

2-2.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선행적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아래 ‘예민한 양심’을 회복하게 된다. ‘이제는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고백과 함께 세상적 가치와 문화적 조류에 따라 살아가던 자기중심적 삶을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이것이 곧 회개(metanoea)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가치관, 즉 물질에 대한 탐닉과 향락적 소비와 자기 과시가 중심이 되는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앞세우는 가치관과 삶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과 삶의 전환, 즉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신뢰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사건이자 과정이다.  이때 신앙인들은 ‘보혜사’와 ‘위로자’로서의 성령님의 동행을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선민이자 의인으로서의 자기 과시’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의 신뢰를 감사하고 앙망하며 실천하는 겸손한 섬김’이 되어야 할 것이다.

2-3.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우리에게 회개가 결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며 또한 개인적인 차원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예컨대 구약성서의 레위기는 죄에는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가 있다는 경우를 들어 구조적 죄에 대한 통찰을 준다.  물론 신구약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죄의 영적 배경에 대하여서도 가르침을 받는다. 일찍이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유명한 저서를 통하여 이러한 죄의 구조적 측면에 대하여 확인하여 준 바 있다.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의 공공성(publicness)과 사회 구조 안에 자리하는 죄성에 대한 통찰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죄성의 극복에는 개인적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죄로 가득 차 보이는 현실을 극복케 하여 주는 신앙과 그 신앙을 가능케 하는 은혜의 요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과 은혜를 세상과 나눌 때에 우리는 ‘신뢰’를 중요한 징표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 사회윤리는 초월적 개념이 강하게 담지된 신학 용어와 교회 안에서만 쓰이는 신학 용어를 통하여서는 담보되기 어려운 시민사회와의 사회윤리적 합의와 연대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중간 공리(middle axiom)를 제시하여 왔다. 중간 공리는 기독교 전통에 근거한 초월적 가치, 즉 하나님 나라와 같은 가치를 당시의 사회맥락(context)을 고려하여 그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사랑, 정의, 인간 존엄성 등의 가치들로 제시함을 뜻한다. 이러한 전통을 고려할 때 21세기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공유할 수 있는 중간 공리로서 ‘신뢰’는 매우 적절한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 교회와 신뢰, 그 현황
3-1.        신뢰와 신앙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분석에서 확인하였듯이 한국 교회의 신뢰는 곧 한국 교회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만약 한국 교회가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선적으로 신앙적인 문제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3-2.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신뢰회복, 대사회적 공신력의 회복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인의 신앙인다운 삶을, 교회적으로는 교회다움으로서의 회복을 전제로 한다.
3-3.        이 때 한국 교회의 신뢰회복은 구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인 차원도 가지게 된다.
3-4.        한국 교회의 신뢰회복은 신앙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의 응답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윤리적 탁월성과 전문성,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신뢰회복의 주요 기준이자 요소들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적 탁월성은 기존의 문화조류와 도덕적 상황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반성하고 비판하고 극복하는 삶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전문성이란 청지기직과 만인제사장직을 바탕으로 기독시민으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삶과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어가는 삶의 태도(attitude)와 행위(behaviour)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은 이 땅에서의 당파적 이익을 초월하는 공동선(common good)을 가능케 하는 소망의 근원을 뜻한다.  
3-5.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신뢰는 곧 윤리적 탁월성과 전문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기준으로 점검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신앙인들 사이의 관계위기, 즉 신앙의 위기이며 영적 위기를 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3-5-1.        이러한 신앙의 위기, 영적 위기는 곧 한국 교회(신앙인들)가 윤리적으로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뜻한다. 이것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담보에 있어 매우 주요한 요소이다. 교회의 윤리적 탁월성은 신앙인들 개개인의 삶으로부터 조직으로서의 교회의 행정과 재정을 포함한 경영의 전 분야에 걸쳐 요구된다. 전문성과 비전을 갖추었다고 하더라고 윤리적 탁월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그 개인과 집단에 대한 신뢰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예컨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하여 확보되었던 윤리적 탁월성은 적은 교인의 숫자를 가진 한국 교회와 교인들로 하여금 1919년 3.1운동 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도를 가질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3-5-2.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하늘나라의 시민이자, 이 땅의 시민사회에 속한 기독시민으로서의 전문성을 충분히 강조하고, 또한 그 고양을 위한 교육과 양육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에 대하여 점검하여야 한다. 이것 역시 초대교회의 노력에 비하면 아쉬운 바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일찍이 근대 교육에 앞장섬으로써 근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역사에 비하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시민사회의 급속한 성숙을 선도할 수 있는 지도력 양성을 충실히 해 오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여야 할 것이다.
3-5-3.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우선적으로는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욕망과 사상과 종교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으로부터 해방시켜줌으로써 결국 공동선을 향하여 서로를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가능케 하여 준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사상과 정치체제와 문화도 절대화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의 토대인 ‘하나님의 주권’ 개념은 이 세상을 상대화하면서도 이 세상의 귀중한 가치를 존중케 하는 것으로서 사회윤리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늘의 한국교회의 사회참여는 때로 갈등하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 특정한 이들과의 정파적 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으로써 교회로서의 거룩성과 초월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공동선보다는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비춰짐이 오늘날 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의 추락으로 직결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4. 한국 교회의 신뢰, 그 전망
4-1. 신뢰 증진의 도전요소
Ⅰ: 주목하여야 할 상황변화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 민족, 즉 이웃들로부터 신뢰받는 조직과 집단이자 개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뢰는 교회로 하여금 사회 선교와 섬김을 가능케 하는 매우 귀중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 본 바 전통적인 교회의 신뢰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의 토대를 이루는 신앙적 토대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충성으로서의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으로서의 신뢰와 신실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불변하는 성경적 진리를 변화하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증거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증가시켜야 하는 교회의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시대적 상황(context) 변화는 매우 주목하여야 할 요소이다.

4-1-1. 교육 : 전체적으로 피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참여를 열망한다. 교육의 정도가 놓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역자(collaborators)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와 통찰을 모으고 다듬는 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4-1-2. 정보 : 지식정보화 시대의 성숙과 함께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교회는 자칫 소외되거나 혹은 세상적인 이야기들 속에 그 정체성을 잃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더욱 다양한 관계망과 소통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성경적 관점에서 적절하게 취사선택하고 또한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4-1-3. 여성 :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전문직 여성의 놀랄만한 증가는 더욱 부드럽고 온유한 형태의 리더십을 요청한다. 남성적인 리더십이 결과 중심적인 경향성을 보이는 데에 비하여 여성적인 리더십은 과정 중심적이다. 이러한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전통적인 리더십에 비하여 오늘날의 교회 리더십이 지향하여야 할 리더십이 더욱 통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말해 준다.

4-1-4. 민주화 :  우리 시대 문화의 특징은 모두가 집단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의 강화와 정보의 홍수와 함께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위계적 질서에 익숙하여 있는 교회는 사회로부터 게토(ghetto)화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과제를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복음의 정체성과 진리의 불변성을 타협하는 선동정치(demagogue)의 풍조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4-1-5. 조직의 복합화 : 많은 조직들이 더욱 대형화, 복잡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작은 조직들과 기업들도 심화되는 경쟁상황에 놓여 있다. 정태적이고 단순하던 시대보다는 더욱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 개인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지식을 모두 갖추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할 과제를 가진다. 동시에 교회리더십은 조직 구성원들의 은사, 즉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주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위임(delegation)과 임파워링(impowering)을 더욱 강화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4-1-6. 파편화되는 충성심 :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례 없이 많은 기회와 함께 도전과 스트레스도 크게 받고 있다. 그들은 모바일(mobile)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서로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성원 각자들에게 구체적인 삶과 존재의 의미와 유익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주고,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신뢰와 섬김의 리더십을 요청받게 된다.  

4-2. 신뢰 증진의 도전요소
II :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 도전
4-2-1. 민족주의적 도전
        어떤 이들은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공산주의와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이 나라에 갈등을 유발하였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써 기독교가 우리 민족문화발전에 해를 끼친다는 비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특별히 세계화시대를 맞아 역설적으로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복고적 경향을 타고 이러한 비판들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감정적인 변론이나 논쟁보다는 복음전파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편만함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밝히고 실천하는 것은 빛으로서의 교회가 마땅히 감당하여야 할 과제이다. 예컨대 교회는 적극적으로 근대화와 자주독립운동과 여성이나 어린이 등의 사회소외계층들을 향한 인권개념 확립의 역사, 정치적 민주화 과정과 기독교의 상관관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강화하고, 21세기적 상황에서 기독교와 민족문화의 조화로운 만남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4-2-2. 반지성주의적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교회가 창조론 등의 비과학적 사실들을 유포시키고, 배아복제기술 등의 새로운 과학발전에 무조건 반대함으로써 과학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은 근대이래로 교회가 직면하였던 전형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때때로 교회가 실수를 범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모든 진리를 교회가 소유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이들은 교회의 결정을, 나아가 성직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오류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한 지체의식을 가지고 과학자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지속하여야 한다. 또한 일반계시의 차원에서 과학적 발견들을 존중하여야 한다. 교회는 결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더욱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위해 진지한 대안을 모색하는 기관으로서 사회인들에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와 과학자들과의 건설적 대화는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전하시며, 온전히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으로부터 가능하여진다.  

4-2-3. 반문화적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오늘날 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하여 너무나 폐쇄적일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기까지 하다며 비판한다. 그들은 청교도적인 잣대로 오늘의 대중문화에 대하여 교회가 못마땅해 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이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대중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교회가 이원론적인 문화관에 근거하여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범람하는 소비문화와 퇴폐적인 성문화의 범람을 좌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썩어져 갈 풍조가 주도하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분석하고 비판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분석과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찬양받으시는 대안적인 문화를 창출함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4-3.  신뢰회복을 위한 교회의 몸짓
4-3-1. 통합적인 윤리가치관의 제공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 증진의 요건 중 하나는 한국 교회가 사회에 통합적인 윤리적 가치관을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사회통합을 위한 윤리가치관의 제공문제는 한국사회 안의 교회라는 관점만으로는 적절하게 응답되어 질 수 없는 문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통합을 할 수 있는 ‘가치관의 제공’이란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한국사회를 초월하고 있는 가치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포스트 모더니즘적 상대주의, 소비문화에서 파생하는 물질주의와 함께 무교, 불교, 유교, 도교,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가치관들이 서로 경쟁하는 다원적인 사회 안에서 사회통합을 가능케 하는 가치관의 근원이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온전히 찾아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4-3-1-1.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한 가치관은 기존의 가치관들을 모두 상대화하면서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초월적인 근원을 요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탁월하게 강조하는 기독교가 다원주의적인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음을 우리의 실천으로 현실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사회통합적인 윤리가치관의 제공이라는 관점에서도 더욱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기독교적인 정체성이 삶 속에서 실현된다고 하는 것은 곧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한국사회의 삶 한가운데에 내재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3-1-2.        그렇다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윤리가치관, 즉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무엇인가?  또한 그러한 가치관이 과연 한국사회의 통합에 유용한 것이냐는 실용적이며 공리적인 관점에서의 질문도 함께 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윤리적 가치관을 명확히 할 필요를 가진다. 성서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가치관에 대하여 많은 증언을 하고 있지만, 그중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과 ‘작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이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인 윤리가치관은 한국 사회를 위하여서도 매우 유용한 것들이라는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는 것이 결코 배타적인 명제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4-3-2. 전통문화 및 대중문화와의 관계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와 한국문화의 관계성에 대하여 논하여야 할 것이다. 윤리가치관의 제공과 사회의 통합성을 높이는 작업에 있어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한국교회의 한국사회에 대한 공감대형성의 문제이다. 한국사회라고 하는 한정된 시·공간을 함께 하는 교회와 사회는 문화라는 매개를 통하여 서로 만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곧 문화를 통하여 한국사회로 매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4-3-2-1.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의 한국교회는 한국문화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교회를 한국의 종교로서 보다는 서양종교로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으로 뒷받침된다. 이러한 양상은 80년대 이후에 더욱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민족주의적 정서와 문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추세에서 기독교를 주변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4-3-2-2.        전통문화와의 관계설정이 그러하였듯이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통문화와 한국교회의 관계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의 모판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대중문화는 매우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문화가 어제의 우리 선조들이 신앙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면, 대중문화는 오늘의 사람들이 신앙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데에 점차로 큰 변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의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인의 틀은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와의 만남을 통하여서 그 기본적인 성격이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21세기 대중문화의 모판을 형성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문화 등에 대하여서도 매우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4-3-3.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회통합의 전제이자 목표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이다. 자유로운 사회란 정의로운 사회를 전제로 한다는 입장에서 여기에서는 정의로운 사회에 더욱 초점을 모으고자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평등과 공평의 기준으로 나누며 사는 사회를 뜻한다. 평등이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이라는 자격으로서 담보 받은 권리이자 책임이다. 공평이란 사회구성원간의 역학관계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과정에 있어서의 정의이다. 인종이나 성별 등의 선·후천적 기득권에 의하여 어떤 사회구성원이라도 차별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평으로서의 정의사회론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는 소외된 자를 품는 사회이다.
        4-3-3-1.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는 항상 사랑과 함께 논하여져야 한다.  또한 사랑과 함께 하는 정의는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전자에만 관심함이 보수적인 자본주의의 약점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정의 그 자체만을 위하여 헌신한 이들의 결국을 우리는 동구공산주의 몰락에서 여실히 목격한 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논하는 정의로운 사회란 개인과 사회적인 차원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정의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4-3-3-2.        우리는 복음이 담지하고 있는 선교의 우선성을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필요 하느니라”는 말씀을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복음적 관점이 나날이 중산층화 되어 가는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느냐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또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가 더욱 심화되어지고 있는 가속화되는 세계화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연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하여, 한국사회의 병든 자들을 위하여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4-3-3-3.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는 각 개인과 사회집단들의 타자성(Otherness)을 인식하면서 그들이 나름대로의 개별성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각 개인과 집단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고유한 부름을 받은 존재들임을 자각케 함으로써 ‘우상적이지 않은 자기 존중 (non-idolatrous self-esteem)’을 가질 수 있는 근본적 토대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기존중은 물질적 소유의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파생하는 파괴적인 사회적 갈등을 방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지구화의 과정 속에서 늘어만 가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제사장적 돌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 죄악들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5. 신뢰사회형성을 위한 교회의 신학적 토대와 실천
5-1. 윤리적 탁월성의 확보를 위하여: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학의 정립과 실천
        신앙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부르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응답은 전인적인 응답이며 그 응답의 장은 하나님이 관계하시는 모든 영역,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전우주적인 차원에 걸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삶이라는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은 곧 우리의 삶이다. 사실 성서는 어디에서도 신앙과 삶의 태도(behavior)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문제는 삶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는 곧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윤리적인 질문을 낳게 한다는 점에서 신앙의 문제는 곧 윤리적 문제인 것이다.
        이제부터 강조되어야 할 것은 신앙인의 보다 책임윤리적인 삶이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삶은 곧 윤리적으로 책임적인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곧 우리의 책임으로 구체화되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성령의 교제와 성화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매 순간 순간의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좀 더 온전한 이해에로 인도한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나의 생각보다 크신 분임을 깨달으며 종전에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에서 비롯되는 온갖 우상들을 부수게 된다.   또한 성령과의 교제로 인하여 가능하여 지는 우리의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에게로의 돌아섬, 즉 회개는 우리에게 이웃의 범위를 넓혀준다. 예컨대 회개하기 전에는 원수였던 사람이 혹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사람이, 이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또 다른 자손이라는 점, 즉 나의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나의 이웃은 더욱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하는 모든 세상이, 물론 자연까지도 포함하여, 우리의 이웃임을 깨닫게 하여주는 것이 곧 신앙적인 회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숙해 지는 신앙은 곧 우리의 삶의 책임의 영역, 즉 이웃 사랑의 영역을 전우주적인 그것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신학이란 바로 이러한 신앙의 우주적 책임을 각성케 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신앙적인 삶의 사사화(privatization)로 상징되는 세속화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신앙적인 삶의 핵심, 즉 복음을 끊임없이 깨우치고 도전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회개와 구원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로 묻어두지 아니하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나아가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함의 작업에 세속화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부르심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명에 바탕한 책임적 삶은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을 신뢰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5-2. 전문성 강화를 위하여: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신학정립과 실천
        비록 기독교인들이 그 행함이 아닌 신앙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안에서 기독인이 일한다고 하는 것은 신앙적인 삶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부적절하고 죄악된 행위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우리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의 삶으로써 응답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를 부르심은 곧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소명을 뜻한다. 그것은 가정과 개인적인 인간관계, 나아가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역할과 우리의 직장에서의 일을 포괄하는 삶의 전 영역에서, 이웃과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전력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배제되어야 할 것은 성과 속, 또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엄격히 가르는 도식적인 이분법적 사고이다. 성직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다른 모든 기독인들도 그들의 직업의 종류를 막론하고 그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가지는 직업은 거룩한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의 부르심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직장은 종교적인 영역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강조되어야 할 이러한 만인제사장직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많은 반성을 촉구한다. 첫 번째로는 목회자와 장로들이 당회라고 하는 지도집단으로서 교회의 의사결정과 정책을 주도하여 갈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결정적인 기준과 목표는 항상 이웃과 공동체의 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교회는 세상을 섬기기 위한 그리스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의 신앙과 일함의 영역을 하나님 나라와 상관시킴으로써 자신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함이 곧 소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교회의 현실이 교회만을 성스러운 현장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제사장직에 소홀이 하는 기독인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그리스도의 많은 지체들로 이루어진 몸 된 교회로서의 본질과는 어긋나게 소수의 소리 큰 지체들이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각성이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 지체들의 활동의 정상화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건물로서의 교회 밖에서 활동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시민사회와의 협력이다.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이 제사장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기업, 정부, 미디어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제사장이라는 사실에 힘입어 교회는 시민사회나 기업과 정부, 미디어의 영역과의 대화와 상호학습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쌍방향적 학습과 대화는 교회의 신뢰도 향상에 매우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5-3. 하나님 나라 비전의 강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의 정립과 실천
        삶과 신앙의 일치, 신앙과 신학의 건설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 정치와 그 상징 및 표현들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이란 신학적 용어가 다소 거부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몇몇 신학자들은 보다 덜 권위적인 은유들(예컨대 친구, 부모, 동료로서의 하나님)이 현대인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더욱 적합한 묘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그저 창조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것 자체의 방법으로 운행되도록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은 주관하시는 분과 주관을 받는 사람들 사이의 지속적인(ongoing) 관계성을 함의하고 있다.
        동시에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그의 주권적 질서밖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성과 속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과 경제, 정치, 문화적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치·경제·문화생활 전반을 포함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경과 기독교적 전통만이 아닌 정치·경제·문화적 기구들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하여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하여 주는 우선되는 자료로는 성경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는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가운데 하나인 이성, 인간이 발달시켜 놓은 과학들과 경험들도 그 자료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요소들 중 하나인 이원론적 사고와 편견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새로운 강조로써 극복되어야 한다.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지는 무대라는 깔뱅의 고백처럼 정치·경제·문화를 망라한 전 사회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고질적인 성/속의 이원론을 강화시키는 신앙의 사사화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를 필요로 한다. 또한 신앙과 신학의 이원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전통적인 반지성적 경향도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서의 이성에 대한 재평가로써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맺는 말 :
        우리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신뢰 증진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함에 있어서 도전이 되는 요소들과 필요한 노력들에 대하여 분석하고 전망하여 보았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결국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과 증진은 신앙인의 신앙인다움과 교회의 교회다움으로부터 시작되며 마무리되는 과제이다.  물론 더욱 지혜로운 책임의 수행을 위하여 적확한 사회분석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신앙인들의 만인제사장으로서의 사역 활성화와 시민사회 안의 교회로서의 자각을 필요로 한다. 소수의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지도층인사들의 관점만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대상영역과 전문성을 발휘하여야 할 영역이 축소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다움은 시민의 기독교인 됨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기독교인의 시민됨도 요구한다.  여기에서의 시민이란 한 사회의 책임적인 구성원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공신력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바로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인답지 못함과 시민답지 못함을 동시에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신앙인 됨의 기초를 점검하여야 한다. 신앙과 삶의 일치의 당위성,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새로운 고백, 뿌리 깊은 죄성에 대한 통찰에 기초한 계속적인 자기개혁 등은 윤리적 탁월성과 전문성 담보의 전제이며, 곧 한국교회가 신뢰도를 증진하기 위하여 전제가 되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신앙적 내용들의 확인과 점검, 즉 신학적 작업은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개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개방적 수용성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개혁되어진 교회라도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은 오늘의 우리 교회와 사회전반에 대하여 일관되게 개혁적인 태도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으로서의 기독교인들 각자에게도 자신의 삶과 태도만을 절대시하거나 그 안에 안주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현하는 삶, 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 과 ’작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을 실천 하도록 하여, 더욱 신뢰를 받고 또 줄 수 있는 기독 시민으로서의 삶으로 초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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