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얻기 위한 경쟁” “계층 이동을 위한 게임”
“수험생의 등급 라벨을 붙이는 시험.”
“단순히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치르는 과정”

 

우리나라 대학 입시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기회로 여겨지는 대학입시, 이 때문에 관련 제도는 해마다, 장관을 교체할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쳐왔습니다.

갈수록 대학서열주의가 과열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난 4월 11일 교육부가 현 중3 학생이 대학입시를 치르게 되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안의 쟁점들을 정리해 국가교육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한 국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가 대학입시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아직 실체도 불분명한 국가교육위원회에 떠넘기고 있으니 대한민국 대학입시 문제가 어렵긴 어렵나 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대학입시 정책은 한 번도 가만히 있은 적이 없었고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일정한 방향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대학입시 정책을 마치 처음 실시하는 것처럼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달려온 변화의 방향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대략적으로 보면 해방 이후 1980년까지는 대학이 직접 학생을 선발했고, 1981년 학력고사가 도입되고, 1994년부터는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면서 지금까지는 국가가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 점수가 학생 선발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대학이 직접 학생을 선발하든 전국 단위 시험으로 선발하든 결과는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전체 초중고 교육의 왜곡이요 붕괴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 사이에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의 결과가 대학입시의 중요한 판별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내신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신은 교과별 점수를 기록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전교생을 한 줄로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학교의 전교생을 가지고 한 줄 세우는 내신과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줄로 세우는 수능의 반영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무의미한 논쟁들만 이어져 왔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학교생활기록부다. 즉, 학생들에 대한 평가 기록을 점수와 상대평가 등급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 학생이 성취한 내용이나 발견된 특기와 적성을 기록하자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교과 외 각종 학교 활동의 내용도 함께 기록해서 대학에 제공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도 상대평가 내신 성적 기록이 있기 때문에 내신 성적 중심의 줄 세우기를 기본으로 하되 생활기록부의 다른 기록들을 참고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생부 종합전형이 확대되고 상대평가 내신 성적 기록 외 학생에 대한 다양한 배움의 과정과 활동 결과들이 참고가 되면서 학교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교과 수업이 수능 대비 문제 풀이를 넘어 교과의 본질을 살린 다양한 형태의 수업이 시도되고 학생의 참여와 활동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살린 깊이 있는 동아리 활동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외 그 동안 공부(수능 준비 문제풀이)에 방해된다고 제대로 하지 않던 학생 자치활동들도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순수하게 교육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대학 입시에 유리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학생부에 좀 더 좋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컨설팅을 받거나 이와 관련된 사교육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교사의 권한이 커지면서 공정성의 문제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학생부 기록이 입시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대학의 선발에 대한 공정성 시비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수능이 제일 공정하다’ ‘수능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이다. 물론 시비 거리가 없거나 교사나 대학의 주관이나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면에서 수능이 제일 공정하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한 번의 시험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전혀 아니다. 고등학교 3년간의 모든 노력과 결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가 대학입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면 학생 입장에서는 학교 수업이나 활동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출석을 위해 몸만 출석할 뿐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 교육이 무너져 온 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 70년의 역사가 아닌가? 그리고 이제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을 발견했는데, 여기서 발견된 문제들을 개선하되 학교 교육이 살아나고 있는 이 흐름을 살려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대학서열주의가 깨지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대학입시는 늘 과도한 경쟁이 유지되고 있다. 당연히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과 왜곡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대학입시가 초중고 교육을 왜곡시키지 않

고 정상화에 기여하도록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학생부종합전형을 기본으로 하되 현재 나타난 부작용을 보완하는 쪽으로 큰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수능과 같은 국가 단위 시험은 보조 장치로서 자리를 매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정병오(기윤실 상임공동대표, 오디세이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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