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2006년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인종 여성, 아동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하며 용기를 내어 사회를 바꿔갈 수 있도록 창안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으나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조금씩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윽고 2017년 10월에 이르러서는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등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의 성범죄, 성폭력 피해가 큰 반향을 일으켜서 확실히 공개 운동의 성격을 띄게 되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한창입니다. ‘나도 당했다’고 나서는 분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법조계에서 시작해서 연예계, 문단, 학계, 정치계, 그리고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폭로를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례 가운데 지극히, 정말 지극히 소수의 경우만 현재 노출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드러난 경우만 두고 보면 세 가지가 눈에 두드러집니다. 첫째는 상급자와 하급자, 교수와 학생, 감독과 배우,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지위나 영향력,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쪽이 아래에 있는 사람을 성적으로 추행하거나 폭행한 경우입니다. 둘째는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입니다(물론 반대 경우도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셋째, 성추행이나 폭행은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에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약하면 권력 관계가 형성된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여성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적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과거의 피해를 폭로하여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징벌하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투 운동은 성적 피해자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이바지 하리라 저는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첫째, 성적 가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사회적, 법적 장치가 마련되고 피해자의 치유를 돕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가야 성공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둘째, 미투 운동은 직장이나 가정, 교회에서 여성에게 성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식을 남성들에게 심어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도 물론 이러한 의식이 분명하게 확산하고 실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셋째, 미투 운동은 성과 관련해서 폭력을 가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어떤 일에서라도 약한 편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그 자체가 악한 행위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미투 운동은 아직은 힘차게 지속되어야 할 일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보는 일인지 교회에서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와 다 같이 하나님 안에서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교회는 적극 애쓸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걸음 물러서서 미투 운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 코스비의 성추행과 성폭력이 노출되고 작년 말 할리우드 영화감독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행이 뉴욕 타임스를 통해 2017년 10월 5일 폭로되면서 미국에서 ‘미투 운동’은 갑자기 활기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나도 당했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습니다. 와인스틴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가해자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투 운동의 역사를 보면 미투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운동이 아닙니다. 운동 자체가 시작된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터너러 버크(Tanara Burke)가 2007년 유색 여성들이 성적으로 피해를 무수히 입는 것을 보고 그들의 피해 사실을 노출시켜 성희롱이나 폭행으로 여성이 피해 입는 일을 막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해 미투 운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투 운동은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오스트렐리아 카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인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르웨이, 스웨덴, 스테인, 심지어는 에티오티아와 케냐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가 이제 정말 하나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매체의 영향뿐만 아니라 세계가 민주적인 삶의 양식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이념은 ‘자기결정성’입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운데는 정치행위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의 자기 결정성 또는 자율성입니다. 누구의 강요나 억압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이 이념은 근대 정치 이념의 근간이지만 그럼에도 사실은 모든 인간은 각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따라서 미투 운동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기결정권의 이념은 성경의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중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성적 결정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무시될 수 없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타인이 요구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원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어떤 방식의 성관계를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적 친밀성을 표현하거나 성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통로는 결혼입니다. 결혼을 한 사람 사이에는 친밀성의 표현이나 관계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성은 자기결정권의 사용에만 머물지 않고 이 보다 훨씬 더 깊고 더 소중한 하나님과의 언약과 사람과의 언약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먼저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성을 결혼 관계 안에서 감사하게 제대로 누려야 합니다. 두 번째, 결혼 관계를 벗어난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타인의 성적 결정권을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 세 번째,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적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 인한 고통이 줄어드는 사회, 공동의 선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다같이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해 정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의 속뜻일 것입니다.
강영안(서강대 명예교수, 미 칼빈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