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사도행전 19:8-12)
노종문(전 IVP 편집장, 좋은나무 편집주간)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 지역에 머무를 때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첫째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파했습니다. 즉, 바울이 전한 복음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바울의 에베소 전도가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칠 것이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10분이나 30분 정도로 복음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몇 개월을, 길게는 2년을 가르쳐야만 복음을 제대로 전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Valentin de Boulogne’s depiction of “Saint Paul Writing His Epistles”
한편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요? 20세기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여러 가지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중 집회이고, 둘째는 개인전도입니다. 대중집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복음을 알기 쉽게 단순화해야 하고, 적절한 예화를 곁들여 인상에 깊게 남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또 개인 전도를 통해 전도할 때에도, 복음을 몇 개의 핵심 교리로 축약하여 전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놀라운 효과를 내었고,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에 한국 교회도 양적인 급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전도 성공과 교회의 양적 성장은 20세기 교회의 복음 전도의 내용과 방법이 올바르고 효과적이라고 승인해 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도 방법은 메시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복음은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춘, 몇 가지 명제로 요약된 복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 사도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2년간 에베소에서 강론하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이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복음에 대해 그렇게 가르칠 게 많았단 말이야?’
20세기의 복음과 복음 전도는 성령님이 사용하신 도구였지만, 흠 없고 문제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 복음의 초점은 ‘개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둘째로, 그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신자들이 죽어서 들어가는 하늘나라’로 가르쳤습니다. 셋째로, 그 복음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렇게 된 것은 몇몇 전도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할 것이 별로 없었던 복음주의 신학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한편 19세기 말 독일 성서학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유대교의 묵시적 사상가였다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그전까지 예수님을 탁월한 윤리 교사로 그렸던 주류 성서학의 흐름에 도전하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주장 이후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의 성격에 주목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20세기 상반기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재발견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실현된 것인지, 미래에 올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말이 제시되었습니다. 이후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까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축적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의 복음에 어떻게 반영되고 심층적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밝히는 연구들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성서학에서 일어난 이런 발전에 자극을 받고, 1980년대 이후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 복음’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한국 교회가 성장의 정체기를 맞이하고 눈에 띄도록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교회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러한 대안 추구에서 중대한 한 가지 방향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추구입니다. 20세기 복음이 제시한 프레임이 개인 구원, 사회 참여, 교회의 성숙 등을 모두 별개의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면, 하나님 나라 복음은 그것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 구원을 지상의 목표처럼 제시했던 20세기의 복음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더 이상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데, 그 중대한 이유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복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에 대해 지나치게 축소된 그림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 글을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의 중요한 특징, 개념, 내용을 중요한 성경 본문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