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의 판단대로 행동했습니다.

오늘날은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

왕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권수경 (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영화 트루먼쇼 中

 

너도 옳고 나도 옳고

20세기 중반부터 문학, 철학, 예술에 등장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이 지난 수십 년 어간에 우리 삶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습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이 사상은 초고속 문화 매체를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 인간관계, 심지어 사회구조까지 금방 장악할 태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이 흐름을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벌써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자녀들은 휴대폰이나 SNS 등을 통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이 사조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틀은 ‘상대주의’입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 모두가 옳다는 입장으로 무척이나 포용적인 태도입니다. 조선 시대의 일화 하나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잘 보여줍니다. 황희 정승 집안의 종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옳다며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론이 안 나 황 정승에게 왔습니다. 황희가 한 종의 말을 다 듣더니 “네 말이 옳구나” 했습니다. 곧이어 다른 종도 제 입장을 서둘러 설명했고 말을 다 들은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 했습니다.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던 황 정승 부인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이 아이 말도 옳다 하시고 저 아이 말도 옳다 하시면 옳고 그름을 어떻게 가릴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황희 정승은 “듣고 보니 부인 말씀도 옳구려!” 했습니다.

이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서로 맞지 않는 종 두 사람의 말도 다 옳아야 하고 이 둘이 다 옳다 한 황 정승의 말도 옳아야 합니다. 심지어 황 정승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부인의 말까지도 옳아야 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이런 상대적 포용 주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누가 ‘진짜’ 옳은지는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을 수용하기 위해 객관적 진리, 절대 진리는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따라서 진리와 거짓이 같아져 버리고 바른말을 한 종의 억울함도 그대로 묻히고 맙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 기준이 없으므로 어떤 문제나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 둘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이 종도 옳고 저 종도 옳다 한 사람은 황 정승입니다. 내가 틀렸다는 부인의 말도 내가 옳다 선언했으니 옳습니다. 모두를 옳다 보아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너그러움은 결국 나 자신은 언제나 옳다는 자기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옳은 대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모두에게 옳은 진리’는 없습니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이해한 그게 진리입니다. 내가 진리라 믿는 것이 남에게도 진리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옳음은 옳음인데 절대 기준에 따르는 옳음이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에 맞춘 옳음이고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상대적인 옳음입니다. 부엌에서는 며느리가 옳지만,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가 진리입니다. 서로 맞지 않는 종 두 사람의 말도 동시에 진리로 수용합니다.

이런 상대주의는 불가지론과 통합니다. 사람이 진리 그 자체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아는 능력만 부인하던 옛날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 진리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교만함을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 자체를 따질 수 없게 된 우리 시대는 겉으로는 너도나도 다 옳다 하지만 남편의 무책임함을 지적하는 황 정승 부인의 입장은 폭력이라 부르며 거부합니다.

해 아래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도하는 우리 시대는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사사 시대와 잘 통합니다. 왕이 없던 그 시대에 사람들은 풍요를 위해 우상을 섬기다가 고통을 당하면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제사장이 축첩을 하고 손님을 동성애의 대상으로 이용하려 하고 여인을 집단 강간하여 죽게 만드는 윤리적 타락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사기는 이 모든 악행과 그릇됨의 원인이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삿 17:6; 21:25). 오늘도 성적 타락, 경제적인 불평등, 갖가지 폭력 등 삶의 양상은 비슷해졌습니다. 이것 역시 왕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이지만 우리 시대는 그것을 혼란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소외되었던 것들을 무차별 수용할 뿐 아니라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왕의 도래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틀은 기독교와 반대입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 객관적 진리에 대한 거부는 서구 문화의 중심이었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집니다. 상대주의 자체가 이미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에 대한 도전이요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격이 됩니다. 그 외에도 신앙의 개념, 성경의 의미, 자아의 역할 등 기독교 진리의 여러 요소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상입니다. 그 사상의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긍정적인 것도 적지 않고 그것들을 배워 활용하려는 기독 학자들도 꽤 많습니다. 비방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전파되는 것이 복음일진대 우리 시대를 온통 장악하고 있는 이 거대한 사상에서도 배울 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살피려 합니다. 오늘 첫 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했습니다만 앞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가운데 조심해야 할 것들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배워 활용할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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