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의 멕시코 대선에 대한 위 언론의 보도는 전형적으로 무지 때문에 발생한 가짜뉴스라 할 수 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아니라 로페즈 대통령이며, 89년만의 좌파정권이 아니라 30년의 공백 후에 이루어진 멕시코 혁명 좌파의 복귀이다.
백종국(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윤실 이사장)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갖가지 뉴스와 주장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되고 있으며 우리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보의 신뢰도가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가짜뉴스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다 더 진실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해당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1일에 실시된 멕시코 대선 결과에 대한 국내 보도들을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위 언론의 보도는 전체적으로 사실 보도처럼 보이지만,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아니라 로페즈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오보이며, 89년만의 좌파정권이 아니라 30년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실패로 인한 멕시코 혁명 좌파의 복귀라는 점에서 왜곡이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는 2018년 7월 1일 제58대 대통령선거에서 53.1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8월 1일에 멕시코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식 공고를 거친 뒤 12월 1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과거 몇 차례의 심각한 부정선거 갈등이 있었으므로 이 인증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의 성(姓)은 로페즈이고 오브라도르는 스페인 이름의 관례에 따라 어머니 성(姓)을 덧붙인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로페즈 대통령 당선자의 아버지는 안드레스 로페즈 라몬이고 어머니는 마누엘라 오브라도르 곤잘레스이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스트 중에서 홍길동이란 본명에 홍김길동이라는 식으로 어머니 성(姓)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어쩌면 스페인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로페즈의 자녀들로 가면 로페즈의 재혼으로 인해 이름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로페즈의 첫 부인은 로시오 벨트란 메디나이고 이 부부 사이에 호세 라몬 로페즈 벨트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벨트란, 곤잘로 알폰소 로페즈 벨트란 등 3명의 아들이 있다. 첫 부인과 사별한 후에 재혼한 부인인 베아트리즈 구티에레즈 뮐러 사이에 헤수스 에르네스토 로페즈 구티에레즈를 두었다. 혹시라도 홍김길동과 박이금순이 결혼하여 난 아이의 성을 결정할 때 참고할 만하다.
그러므로 제58대 멕시코대통령은 로페즈 대통령, 혹은 로페즈 오브라도르 대통령, 또는 암로(AMLO: 전체 이름의 약칭)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1953~)
멕시코 대통령 당선인
게다가 89년만의 좌파 정권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왜곡이다. 왜냐하면 멕시코를 가장 오래 통치했던 멕시코제도혁명당(PRI)이 좌파로 분류되어야 마땅하고, 우파인 국민행동당이 집권한 것은 2000년이 되어서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제도혁명당(PRI)은 1929년 국민혁명당(PNR)이라는 이름으로 까예스 대통령에 의해 창당되었다. 이 정당은 1938년 까르데나스 대통령에 의해 멕시코혁명당(PRM)으로 재편되었는데, 멕시코노총(CTM), 농민총연맹(UNIOS), 공무원총연맹(FSTSE)과 상공회의소(CONCAMIN)의 동맹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말 그대로 멕시코혁명을 실천하는 좌파 정당으로서 토지개혁, 교육개혁, 석유국유화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 정책노선을 멕시코에서는 까르데나스주의(cardenismo)라 부르고 있다. 까르데나스 대통령은 PRI가 극좌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당내 우파 지도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dedazo)”하였는데 이로써 당내의 좌우파 지도자가 번갈아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대통령 진자(presidential pendulum)”의 전통이 수립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에서 수입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이 당내의 좌우파 균형이 깨어졌다. 당내의 우파 지도자들이 대통령직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좌파는 1987년에 당내에서 민주파(CD)를 결성하였고 마침내 1989년 민주혁명당(PRD)으로 분당하였다. 이미 PRI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었던 로페즈도 이 분당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 공훈으로 로페즈는 2006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PRD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부정선거와 이 부정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하는 PRD의 무기력에 실망한 로페즈는 2012년 자신을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운동(MORENA)을 창당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로페즈는 자신의 이념을 까르데나스주의(cardenismo)라 부르고 있다.
로페즈가 절대 다수의 득표로 당선된 배경에는 약 30여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결과로 직면하게 된 멕시코의 체제 해체 위기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멕시코를 동서로 반분하여 경쟁하고 있는 양대 마약카르텔의 “내전(civil war)”을 들 수 있다. 10여년 이상 심화되어 온 카르텔 전쟁과 사회적 테러로 인해 사망자만 해도 매년 2만 명 이상이다. 군과 경찰조차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마약카르텔과 손잡은 부패관료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처럼 통치불능에 가까운 사태가 발생한 것은 지난 신자유주의적 통치기간 중 경제자유화를 명분으로 심화된 사회양극화와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높은 실업, 그리고 극심한 부정부패 때문이다. 높은 소득과 안전을 보장하는 마약 카르텔이 희망을 상실한 멕시코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로페즈의 정책노선은, 포린폴리시誌(Foreign Policy)의 한 논평이 지적했듯이, 중도좌파의 실용주의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사회적 양극화를 줄이고 멕시코의 자주적 번영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교육, 복지, 경제, 무역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각설하고 멕시코의 붕괴위기를 두고 볼 때 어쩌면 로페즈의 통치는 자주적 독립 국가로서의 멕시코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89년만의 좌파집권”이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미국의 일부 우파 언론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이다. 대중언론의 선정주의 혹은 미국인의 멕시코인 폄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보도 맥락에서 드러난 왜곡의 진정한 목적은 신자유주의 통치의 종료에 대한 우려와 함께 로페즈 정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자주적 경제정책을 통제하려는 선점적 캠페인이다. 멕시코 사정에 어두운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이들의 견해를 무작정 복제하고 있는 중이다.
위 사례처럼 단순한 사실 보도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목적으로 정보를 왜곡시키려는 경우들이 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기독시민들이라면 언제나 가장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