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도 마찬가지입니다. 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든, 함께 산행을 가든, 함께 여행을 가든 그 자체가 곧 우리의 삶입니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분명 쉼이 필요하지만 쉼이 일에 종속될 수는 없습니다. 쉼 자체도 일 못지않게 우리 삶에 중요합니다. 쉼도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가 사는 방식이고 우리의 삶의 내용을 이룹니다. (본문 중)
강영안(Calvin Theological Seminary 교수)
여름 휴가철입니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때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휴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쉬는 것이 좋은 휴식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말 ‘휴식’이나 ‘쉼’, ‘안식’은 우리가 순간마다 들이키고 내뱉는 숨과 관련이 있습니다. ‘휴식’이나 ‘쉼’은 숨쉬기를 쉬는 것이고 ‘안식’은 숨을 쉬되 편안하게 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숨을 아예 멈추면 죽을 테니 휴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순간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칠게 쉬던 숨, 숨 가쁘게 쉬던 숨을 잠시 멈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숨을 가쁘게 쉬거나 거칠게 쉬게 될 때가 언제입니까? 일을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가파른 산을 오르거나, 평지를 달리거나, 도자기를 만들거나, 열심히 글을 쓰거나 하는 것은 모두 일종의 일이요 활동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활동이든 마음을 모아 집중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일에 집중하고 오래 몰두하다 보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숨은 가빠집니다. 그리고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렇게 되면 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에 숨이 있는’(이사야 2: 22) 우리 인생은 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쉼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과 활동을 멈춤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삶의 상태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말을 좀 어렵게 해보자면, 능동의 상태에서 능동도 수동도 아닌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 쉼과 휴식 상태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쉼이나 휴식, 또는 안식이 일이나 활동의 멈춤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던 일을 일단 멈춘 다음 다른 일, 다른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도 휴식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같이 철학 공부를 하는 사람은 철학 책을 읽다가 문학 책이나 신학 책을 읽으면 약간의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훨씬 더 좋은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늘 하던 활동, 늘 하던 일과는 다른 활동, 다른 일을 할 경우 대개 휴식을 맛보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하거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우리의 삶에 커다란 휴식과 안식을 준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목사에게는 일이 될 수 있는 것도 성도에게는 커다란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물음이 하나 생깁니다. ‘활동을 하기 위해, 일을 다시 하기 위해 쉬어야 하는가, 쉼은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 고유한 목적이 없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쉼이 일한 다음에 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처한 신체와 영혼의 조건이 휴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쉼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힘과 생기를 얻습니다. 일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휴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밤이 되면 쉴 수 있고 또 쉬어야 합니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은 은퇴한 다음에 긴 쉼의 시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쉰다고 할 수 없고, 일을 했으면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휴식을 하고 안식을 누리는 것이 일을 다시 하기 위해 필요한 때문만일까요? 휴식이나 안식이 일을 위한 재충전의 수단밖에 되지 않을까요?
어느 학생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하기 위해 걷고, 생각하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기 위해 밥을 먹고, 생각하기 위해 잠을 자고, 생각하기 위해 수업에 참석합니다.” 골똘히 생각하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저는 이것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낯선 곳에 들르고 사람들과 만나 담소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를 하고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이고, 우리는 이러한 활동으로 살아갑니다.
쉼도 마찬가지입니다. 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든, 함께 산행을 가든, 함께 여행을 가든 그 자체가 곧 우리의 삶입니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쉼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쉼이 일에 종속될 수는 없습니다. 일 못지않게 쉼 자체도 우리 삶에 중요합니다. 쉼도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가 사는 방식이고 우리의 삶의 내용을 이룹니다. 일에 열중할 때 우리는 나 자신도, 타인도, 우리 주변도 잊어버리고 일 속에 빠져 일에만 몰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다가 쉬어 보십시오. 천천히 산책을 하게 되면 길가의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친구를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 나는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사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쉬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과 이웃을 생각하고 자연과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제대로 쉬게 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조건 쉬라고 가르칩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수 있으나 이레째는 쉬라고 합니다.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삶을 완전히 맡긴 사람만이 사실은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쉼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쉬되 그냥 쉬지만 말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예배드리면서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쉬지 못하는 사람이나 쉼이 필요한 이웃도 생각하며 그들도 쉬게 하는 것, 그들과 함께 쉬는 것도 제대로 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휴식의 계절을 맞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쉽시다. 모든 것 내려놓고 쉽시다. 예배 드리면서 쉬고, 남들과 함께 더불어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