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사람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틈에 사람이 끼어 있는 느낌이 든다. 프로 기사보다 바둑을 더 잘 두는 바둑 프로그램,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는 자동차, 군인보다 적군을 잘 식별하는 무기, 의사보다 진단을 잘하는 진단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우리를 살짝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딱히 혁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꾸 혁명이 온다고 하니 난감하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한참 들끓더니 이제 조금 잠잠해지고 있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되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도 만들어졌고, 수백 종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이 개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신개념이 유행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좀 애매한 개념이라도 유의미하게 쓰면 그것대로 순기능을 할 수 있으므로 너무 까다롭게 굴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현상과 그에 대한 보도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의미를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은 1, 2,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혁명적 변화다. 많은 설명이 있지만, 가장 단순하게 각 산업혁명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기관과 같은 동력 기관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된 일을 말한다.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일어나 유럽과 미국의 산업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농업 사회의 틀이 무너지고 시장과 공장이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부작용도 많이 생겨났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다수 생겨나고 대규모의 착취가 일어났고, 식민지가 확대되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가 핵심이 되었다. 전기는 동력의 이동을 쉽게 만들어 대량 생산 체계가 한층 더 확대되었다. 오늘날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서울에서 가져다 쓰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수 있다. 울진에서 삽을 들고 일하면 서울에 구덩이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전기는 통신, 조명, 미디어, 가전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전에는 세계가 식민지 관계 같은 물리적 힘의 관계로만 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문화적·정신적으로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광범위한 사용과 함께 시작된 변화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계산력의 증가다.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오던 동력과 소통의 잠재성은 연산 능력의 증가로 다시 한 번 폭발하였다. 1980년 후반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컴퓨터와 기계가 연결되면서 자동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컴퓨터와 통신이 연결되면서 정보의 소통도 크게 늘어났다. 인터넷 검색과 온라인 은행 업무가 없던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것은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혁명이다. 빠른 연산과 엄청난 메모리가 합쳐져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판단을 기계가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지난 세월 동안 조용히 발전해 온 생명기술까지 합쳐져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3D 프린터,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유전자 가위 기술 등 최근 몇 년 동안 갑자기 등장한 기술의 이름들도 여럿이다. 하나하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 기술들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능가한다는 점이다. 더이상 사람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틈에 사람이 끼어 있는 느낌이 든다. 프로 기사보다 바둑을 더 잘 두는 바둑 프로그램,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는 자동차, 군인보다 적군을 잘 식별하는 무기, 의사보다 진단을 잘하는 진단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우리를 살짝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딱히 혁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꾸 혁명이 온다고 하니 난감하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과 그 함의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1~3차 산업혁명은 그 혁명의 시간이 지난 후 이름이 붙여졌는데, 4차 산업혁명은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이 되는 혁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예측이 된다면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란 널리 준비되지 않은 급진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을 잘 대비한다면 급진적인, 그래서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향후의 기술 발전이 더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해 나가면 혁명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술 진보의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의 논의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의들은 마치 우리가 어쩌지 못할 폭풍우가 들이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이것은 부적절한 호들갑이다. 큰 변화가 올 수 있지만 그 변화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더 적절한 대응은 가장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단, 방금 살펴본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고 어떻게 논의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인간이 개발하고 사용하는 기술들에 대해 “왜?”라고 물어야 한다. 도대체 왜 인공지능이 필요하고 어디에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 왜 자율주행 자동차와 유전자 가위 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어떤 세상이 도래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나아가 내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물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기 예보를 듣고 우산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수동적인 태도로 미래를 대하면 안 된다. 기술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에 직면하여 대단히 새로운 물음을 던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이웃이 누구이며, 오늘날 우리가 아프게 경험하는 기술 격차와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이 대안이 당장 나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고민의 내용과 방향이 바뀌면, 대안은 여러 가지가 생겨날 것이다. 교회는 당분간 기술 사회에 관한 호들갑을 차분한 물음으로 바꾸는 데 천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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