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 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먼저, ‘사함’이라는 말은 ‘풀어줌’을 의미하며 해방과 같은 말입니다. ‘죄 사함’(=속죄)은 ‘죄로부터 풀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구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묶인 것을 풀어 구해낸다’는 말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노예 상태에서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전 IVP 편집장)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이사야 40:1-2)

영화 <이집트왕자> 중.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취의 복음일 뿐 아니라 해방의 복음입니다. ‘해방’이란 ‘묶인 것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개념의 배경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신 출애굽 사건, 모든 빚을 탕감받고 종노릇으로부터 돌아와 다시 자유인이 되는 희년, 그리고 바벨론 제국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신 사건이 있습니다.

 

‘해방’이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 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먼저, ‘사함’이라는 말은 ‘풀어줌’을 의미하며 해방과 같은 말입니다. ‘죄 사함’(=속죄)은 ‘죄로부터 풀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사함’, ‘용서’, 빚의 ‘면제’라는 말은 모두 헬라어로는 한 단어 ‘아페시스’의 번역어입니다). 또 ‘구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묶인 것을 풀어 구해낸다’는 말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노예 상태에서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둘 다 히브리어 ‘가알’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막 10:45), 이 ‘대속물’이란 단어는 ‘속량의 대가로 지불하는 값’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인류를 무엇으로부터 해방하셨습니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들이 발견한 것을 열거해 보면 아마도 다음 두 가지로 축약될 것입니다. 즉, 죄와 사탄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죄와 사탄으로부터 즉시 해방된다고 선언하시고, 그 해방의 가시적 표적으로써 치유와 귀신축출의 사역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복음서 전체에 펼쳐진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말이므로 여러 증거 본문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독자들 각자가 복음서의 본문을 읽거나 연구할 때마다 이 말이 옳은지 그른지 직접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에서는 이와 관련된 중요 본문인 이사야 40:1-11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소개하는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의 등장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세례 요한은 바로 이사야 40:1-11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고 예고한 사람입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원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예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예언에서 하나님의 죄 사함의 때가 왔으며, 예루살렘의 노역이 끝났고 그 모든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2절). 그리고 ‘아름다운 소식’(즉,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예언하는데(9절), 그 소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자로 임하셔서 친히 통치하실 것이다(10절). 여호와의 통치는 의인과 악인에 대한 심판으로, 그리고 친히 목자가 되셔서 자기 양떼를 돌보시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10-11절). 예수님은 바로 이 예언이 자신과 함께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고 그 성취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먼저 ‘죄 사함’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사탄’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이 이사야의 예언의 맥락에서 죄 사함이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결과로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던 상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과거 우상숭배의 죄를 이제 용서하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70년간의 포로생활이 그들에게 충분한 벌이 되었고 그것을 감안하여 하나님이 용서를 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심층의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들을 아끼셔서 회복시키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그들이 자초한 결과인 바벨론 제국의 포로생활을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구실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결과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곤고한 삶을 살았던 것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의 곤고했던 삶을 이미 충분한 벌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죄 용서 선언은 값없이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이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단 한 가지 조건을 내세우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용서를 베푸시는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 즉 회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죄 사함 선언은 죄 문제의 표면적 해결을 넘어 문제의 뿌리까지 영향을 끼쳐야만 합니다. 과거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죄 문제에는 단순히 행위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뿌리가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부패’(렘 17:9; 막 7:18-23)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은, 마음을 고치시거나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렘 31:31-34; 겔 36:26-27). 그러므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는 단순히 죄 사함을 선언할 뿐 아니라, 문제의 뿌리인 마음의 부패까지도 치유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말했고(막 1:8), 예수님은 바로 성령님을 각 사람에게 내주하도록 보내주시는 메시아이셨습니다(요 7:37-38).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복된 혜택은 각 사람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죄로부터 실제로 해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의 죄 용서를 선포하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초대하실 뿐 아니라, 인간 비참의 근원인 부패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각 사람 마음에 내주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된 사실을 우리는 단지 교리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혜택을 실제로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목자를 곁에 두고도 마치 목자 없는 양 같이 방황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을 경험하고 성령님과 친구처럼 친밀히 동행하는 삶을 추구하고 배워야만 합니다. 그런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명령들(대표적으로 산상수훈에 나타난)을 실천하려고 추구하며 기도와 간구로써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성령님의 임재를 가장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7:7-11; 눅 1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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