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독청년운동과 CCM 문화의 모태가 된 ”예수운동“(Jesus Freak)은 바로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 후반에 캘리포니아에서 태동했다.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가 주도한 이 운동은 삶의 희망을 읽고 방황하던 당대의 젊은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차용하여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문화 안에 있는 어떤 세상” 시리즈를 시작하며

문화 콘텐츠 안에는 어떤 세상이 있다. 그 세계는 현실의 갈등과 고뇌를 담기도 하고, 막연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상 세계를 투영해 주기도 한다. 대중문화는 한 아티스트가 꿈꾸는 세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이되어 더 큰 꿈으로 확장하게 만든다. 이 시리즈 글을 통해 본인은 노래, 영화, 문학, 미술, TV, 온라인 콘텐츠 등 다양한 대중문화 안에 그려진 어떤 세상을 안내하는 여행 도우미가 되어 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그 첫 순서로 1960년대 히피 운동이 상상한 세상으로 들어가 보겠다.

 

문화 안에 있는 어떤 세상(1)

California Dreaming: 히피 운동이 꿈꾼 세상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나뭇잎은 모두 시들고 하늘은 잿빛이지)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 난 산책을 하곤 했어)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내가 LA에 있다면 안전하고 따뜻했을 거야)

California dreaming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삭막한 겨울날, 난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The Mamas & the Papas  (출처: Rock hall 도서관 자료)

 

1966년에 혼성그룹 The Mamas & the Papas가 발표한 “California Dreaming”은 히피찬가로 불리는 포크 명곡이다. “자유롭게 살고, 자유롭게 놀고, 자유롭게 사랑하자”라는 히피 이상을 감미로운 멜로디와 하모니에 담아 들려준다. 이 노래가 묘사하는 춥고 우울한 도시 풍경은 당시 청춘들이 느꼈던 절망과 허무를 상징한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얽매어 떠나지 못하는 도시인에게 자연과 이상향을 동경하도록 히피 정신을 일깨운다.

 

히피들은 단순히 거리의 부랑아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명을 억압하고 규격화된 기성 문명과 질서로부터 일탈하여 자유의 욕망을 따라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히피들의 대표곡으로 떠오르는데,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는 히피들이 일종의 이상향으로 동경한 상징적 장소이다. 1960년대에 일어난 히피 운동은 당대의 사회변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들이 문화 속에 남긴 가장 중요한 그림은 반전과 평화, 그리고 인권과 생명, 그리고 자유와 해방이었다.

 

미국의 19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청춘들의 현실에 대한 절망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면서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이 나타났다. 이 운동 안에는 두 가지 주된 흐름이 있었는데, 하나는 ‘뉴 레프트’라 불리는 반체제론자들의 운동이었다. 이들은 모든 형태의 권위에 맞서 궐기하는 시위를 우선적인 행동 수단으로 삼았다.

 

두 번째는 1950년대 비트족(The Beat)의 가치를 이어 받아 60년대 태동한 히피들의 운동인데, 이들의 비판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주로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겨냥한다. 비주류를 선택한 이 긴 머리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대안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 저항한다. 이들은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주류적 삶의 양식인 노동, 질서, 가족을 버리고 다양한 형태의 쾌락주의를 추구한다. 약물과 자유연애는 전복적 삶의 상징이었다. 혼돈의 히피 시대는 1969년에 절정을 이룬다.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발의 대성공으로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듯했으나, 사실상 이즈음 히피들의 이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1969년 왜곡된 히피 정신을 가졌던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들은 베벌리힐스에서 임신 상태의 여배우 샤론 테이트(로만 폴란스키 감독 부인)를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또한 그들 시대의 패션이 되어 버린 약물은 수많은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1-2년, 소위 ‘27클럽’의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은 젊음의 저항 문화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히피 운동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히피 운동에 대한 또 다른 반동으로 70년대 초반 팝 음악계는 카펜터스, 짐 크로치, 캐롤 킹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노래들이 주도하였다.

 

현대 기독청년운동과 CCM 문화의 모태가 된 ”예수운동“(Jesus Freak)은 바로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 후반에 캘리포니아에서 태동했다.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가 주도한 이 운동은 삶의 희망을 읽고 방황하던 당대의 젊은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차용하여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Jesus Christ Super Star(1970)와 갓스펠(Godspell, 1971)같은 뮤지컬에서 그려낸 예수의 이미지는 60년대 히피 운동의 지도자와 유사한 것도 당대의 문화적 분위기의 반영이다.

 

히피가 추구했던 공동체의 삶은 실현 불가능한 ‘자본주의 사막 속의 신기루’였을 뿐인가? 이후 히피의 주축 세력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은 공동체 정신보다는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며 자본주의의 총아로 변신했다. 히피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은 이후 소비주의와 결합하며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Hippie) 또는 ‘보보스’(Bobos: 부르주아+보헤미안)로 불리는 도시 중산층 멋쟁이들의 삶의 방식에 전수된다.

 

한편 일본의 경영학자 이케다 준이치는 히피의 유산은 이후 미국의 IT 산업 혁신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실리콘벨리, 애플, 페이스북은 모두 “히피에게 빛을 졌다”고 주장한다.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란 인물은 수평적, 독립적, 자발적인 나눔의 삶을 지향한 히피 이상을 테크놀로지와 산업으로 구현하려 하였다. 그는 1968년 대안 잡지 Whole Earth Catalog를 발행하여 전지구적 가치를 지닌 상품들을 소개하고 우주와의 합일 주제를 다룬 여러 에세이를 실었다. 이 잡지는 1973년 폐간되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자신이 탐독했던 이 잡지가 자신에게 미친 결정적 영향을 이야기한 바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이 유명한 코멘트는 바로 이 잡지의 슬로건이었다. 미국 IT 산업의 선구자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 히피 문화를 즐기고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히피가 지향한 개인주의, 참여, 연대, 공유 등의 가치를 산업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과 SNS의 원리와 성격은 히피 이상과 닮았다. SNS에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에게 ‘이거 왜 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요. 재미있잖아요.” “이거 좋은 거니까 알려야죠.”

 

Andrea Boscoli(1550~1606)가 그린 “Die Hochzeit zu Kanaa”(가나의 혼인잔치)

 

늘 유랑하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던 예수가 꿈꾼 세상은 바로 자유로 충만한 세상이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물질적인 것들에 종속되어 살지 말라 하셨다. 이는 ‘이방인’들이나 걱정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자신이 물질보다 더 귀한 존재가 아니냐고’ 물었다(마 6:26-33). 또한 예수는 제자를 파송하면서도 전대에 금이나 은, 동전을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고,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고 당당하게 더부살이하는 법을 일러 준다(마 10:9-12).

 

현대인의 일상은 온통 쇼핑과 오락거리들로 넘쳐나고 삶의 희로애락이 거기에 맞춰 춤을 춘다. 영화나 드라마 속 젊고 부유한 이들의 일상은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꿈을 우습게 만들고, 우리 정신에 ‘과잉실재’의 거대한 판타지를 형성한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가 ‘소유’에서 ‘자유’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면, 우리는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물질이 모든 행복의 척도가 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서는 이제 더 이상 순진하며 낭만적인 히피 인격체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이를 만난다면 문명과 자연, 그리고 자유와 해방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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