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선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저버렸다. ‘압축 성장’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압축 오염’과 ‘압축 파괴’를 자행했다. 성장과 보전의 조화를 위한 왕도(王道)를 찾기는 어려우나, 정도(正道)를 추구할 수는 있다. 우리 사회에는 ‘먹고사는’ 문제와 ‘자연을 보전하는’ 문제 사이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 (본문 중)

홍종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 나의 아버지는 대단위 조림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충남 금산까지 4시간 반 정도를 내려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잣나무 묘목 심는 일을 했다. 산비탈에 나무 심는 일이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불평하지 못했다. 당시 아버지는 신앙이 없었지만 그렇게 내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금산에 갈 때마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는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곤 했다. 내가 심은 묘목이 매년 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

 

 

주일학교를 다니며 성경을 읽고 공부했다. 창세기 1장27-28절과 2장15절은 30년 넘게 필자의 세계관과 학문세계를 지배하는 말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유일한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특별한 권한과 책임을 주셨다.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신 후 그에게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는” 분명한 역할을 맡기셨다.

 

이 두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존재로 만드셨고 특별한 권한을 허락하셨으나, 그만큼 세상과 자연을 책임 있게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동시에 부여하셨음이 분명하다. 이 말씀은 ‘선한 청지기론’의 근거가 된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경제활동에 있어 자연의 역할과 중요성, 나아가 환경과 경제의 순환관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나 자신과 세상 사람 모두가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속가능발전’은 UN이 21세기 지구촌 사회의 발전 전략으로 천명한 거대 담론이다.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를 꼽으라면 1987년 발행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책에 나와 있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들 수 있다. 이 정의에서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 삶의 질의 형평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 말씀이 강조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다음 세대를 무시하고 우리 세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환경을 함부로 사용하고 훼손하는 것은 세상을 “경작하며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선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저버렸다. ‘압축 성장’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압축 오염’과 ‘압축 파괴’를 자행했다. 성장과 보전의 조화를 위한 왕도(王道)를 찾기는 어려우나, 정도(正道)를 추구할 수는 있다. 우리 사회에는 ‘먹고사는’ 문제와 ‘자연을 보전하는’ 문제 사이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 정부 정책과 기업 활동, 소비자 행동 등 모든 차원에서 경제일방주의가 지나치게 힘을 발휘한다.

 

더 큰 안타까움은 한국교회에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환경과의 공존이 왜 중요한지를 알리는 설교나 가르침을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오히려 창세기 1장 말씀을 왜곡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모 교회는 공공지역을 침해하면서 교회 건물 짓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한국인으로부터 가장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분은 교회 장로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가장 규모가 크고 논쟁적인 개발 사업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훼손했다.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20조 원이 넘는 국가 재원을 단 3년간 투입하여 하천 유역의 모습을 완전히 바꾼 경우가 없다. 그가 교회에서 창세기 공부를 통해 청지기의 소명을 제대로 배웠다면 대통령으로서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국민 세금의 사용처가 바뀌지 않았을까.

 

 

인간 생존과 번영을 위해 ‘쌀’과 ‘빵’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이다. 동시에 ‘공기’와 ‘물’도 중요하다. 우리 자신과 후손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이기에 함부로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성경이 가르치는 선한 청지기 정신이 대한민국 사회경제 전 분야에 스며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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