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부족하고 그 실천 기간과 범위가 한정적인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결코 쉽지 않은 시도이다. 더욱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나 군사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던 국가 폭력에 대한 사실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응보적 처벌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근현대사의 경험에 비춰볼 때,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과거사 청산 시도는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맡은 기관들이 회복적 정의를 활동 방향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2020년 새롭게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모두 회복적 정의를 사업과 활동이 추구해야 할 정의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문 중)

이재영(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회복적 정의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 책임을 진다’라는 상식화된 응보적 정의와 다른 이해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의 패러다임이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을 한 사람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벌이나 비난만으로 잘못을 한 사람이 정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지 않는다. 범죄의 처벌에 초점을 두는 응보 원리와 달리, 잘못이 양산한 근본적인 피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복적 정의 관점은, 발생한 피해가 최대한 회복되는 것을 정의의 목표로 삼고, 그 과정에 가해자의 책임 있는 참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위해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피해와 영향을 직시하도록 돕고, 피해를 회복하는 일에 자발적 책임을 질 기회를 보장한다. 또한, 잘못이나 범죄로 망가진 관계를 최대한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공동체가 함께 정의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여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피해자의 회복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와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사자 간 대화 모임이 주요 실천 과정이 된다. 결국,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단지 법의 침해 행위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침해한 행위로 보는, 확장된 이해에 기초한 정의 개념이다.1)

회복적 정의가 탄생하게 된 것은 한 소년 범죄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74년, 캐나다의 작은 도시 엘마이라(Elmira)에서 벌어진 소년 사건을 형사 처벌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직접적 만남으로 해결했던 경험을 통해, 사법 절차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던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려지게 되었다. 또한, 가해자의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사법적 책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피해자와 공동체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정의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엘마이라 실험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정의를 이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겨나게 되었고,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역 사회 모두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정의 개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 후, 회복적 정의는 현대적 사법 체계를 가진 다른 나라들로 점차 확대되면서 새로운 정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1989년 뉴질랜드에서 소년 사건에 회복적 정의 접근을 법제화한 ‘가족자율협의회’(FGC)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회복적 정의가 현 응보적 사법 체제와 보완적 또는 대안적으로 접목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유엔에서도 회복적 정의 접근을 회원국들에 권고하기 시작하였고, 점차 사법 영역을 넘어 학교, 지역 사회, 직장 등 다양한 영역으로 실천 분야를 확대해 나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2000년 이후 사법과 민간 영역에서 회복적 정의가 서서히 소개되고 실천되기 시작하였다. 2006년부터는 소년 사건에 대해 회복적 대화 모임이 시도되었고 소년부 내에 화해 권고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2010년 이후부터는 학교에서 체벌 금지 정책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학생 생활 지도의 새로운 형태로 회복적 생활 교육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지역 사회,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 병원과 직장 등에서 분쟁과 갈등을 풀어가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회복적 정의 실천이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꾸준하게 시도되고 있다.

 

회복적 정의를 통한 과거사 청산 사례2)

 

회복적 정의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에 적용된 사례는 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공에서는 백인 정부에 의한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따라 다수인 흑인들이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이익을 당해왔다. 하지만 꾸준한 국제 사회의 압력과 국민 저항의 결과로 1994년 백인 정부가 무너지고, 자유선거를 통해 흑인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그의 정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당시 세계는 새롭게 탄생한 흑인 정부가 과연 과거 백인 정부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보고자 주목하고 있었다. 폭력의 악순환을 우려했던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만델라 정부는 1995년 ‘국민통합과 화해 증진법’(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Act)을 제정하여 과거 정권의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과 살인 행위를 응보적 방법이 아닌 회복적 정의 원칙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하였다.

이후 새로 제정된 법에 따라 탄생한 것이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이다. TRC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인권 유린과 고민, 살인 등의 만행을 저지를 전직 군인과 경찰이 공개석상에서 피해자와 대중에게 자기 범죄 행위의 진실을 자백하고 사과하면 검증을 거쳐 법적, 정치적 사면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범국가적 조치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TRC 안에 인권유린조사위원회, 배상및회복위원회, 사면위원회 등, 세 개의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각각 자신들의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였다. TRC는 백인 정권의 과거사뿐만 아니라 ANC를 비롯하여 흑인 해방 운동 진영, 심지어 만델라 대통령의 부인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과거사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1998년 1차 보고서가 작성되었고(활동은 2002년까지 이어짐), 만델라 대통령은 남아공 정부를 대표해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TRC는 총 21,000명의 피해자 증언을 청취했고(2천여 명은 공개청문회에서 증언), 그중 약 18,000건(78%)을 인권 침해로 판정하고 피해자들에게 평균 3만 랜드(약 6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가해자 측에서는 사면 신청 7,112건 중 실제로 12%인 849건이 최종 사면 결정을 받았다.

남아공 TRC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새로운 시도는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전직 경찰들은 사면 신청에 적극적이었지만, 전직 군인의 참여는 적어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었고, 아파르트헤이트가 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은 경제 불균형도 바로잡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의(처벌)보다 진실 규명에만 집중했다’(Truth over Justice)라는 비판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대규모 피의 보복을 막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남아공 사회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과거사를 건강하게 청산하는 토대를 마련한 점은 높게 평가받았다. 당시까지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못한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룬 과거사 청산 작업은, 이후 전환기 정의, 또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고 불리면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과거사 청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TRC 위원장이었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는, “역사에서 피로 물든 보복과 재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나는 그 길은 응보적 정의를 넘어 회복적 정의로, 용서의 자리로 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역설하였다. 어찌 보면 비현실적일 것 같은 이런 회복적 접근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분투’(Ubuntu)라고 불리는 전통적 개념의 관대, 호의, 자비를 기초로 삼은 아프리카 세계관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남아공의 TRC 이후로 르완다 학살, 동티모르 독립 이후의 과거사 청산,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민족 분쟁과 인종 청소, 북아일랜드의 신·구교 갈등,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국가 폭력 문제 등,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회복적 관점의 전환기 정의를 시도해 왔다.

 

 

 

과거사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기 위한 도전과 과제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부족하고 그 실천 기간과 범위가 한정적인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결코 쉽지 않은 시도이다. 더욱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나 군사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던 국가 폭력에 대한 사실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응보적 처벌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근현대사의 경험에 비춰볼 때,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과거사 청산 시도는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맡은 기관들이 회복적 정의를 활동 방향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2020년 새롭게 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모두 회복적 정의를 사업과 활동이 추구해야 할 정의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과거사 정리를 위한 위원회들이 지향하는 목표를 보면, 과거 국가 폭력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범죄 사실을 조사하여 처벌하는 사법 기관의 역할이 아니라, 진상 규명을 통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치유와 화해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기구들이 진실과 화해라는 회복적 정의의 가치와 철학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진상을 밝혀내는 일이나 화해를 이뤄내는 일은 잘 진전되지 못하고 현실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결국, 선언적 의미는 있었으나 그 실현이나 목표 달성을 위해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과거사 문제를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 요소들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고, 이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색해 보아야 한다.

우선, 다른 나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회복적 접근과 비교할 때, 한국의 회복적 접근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 국민당 시절 자행됐던 백색 테러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대만도 시차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 효과적으로 적용된 곳은 주로 정권 이양 이후 사법적, 정치적 사면이 실제로 가능하고 효력이 있을 때 이뤄진 곳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당사자들이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에 나올 만한 실질적 동기가 약해진 시점에서 시도되는 회복적 정의 접근은 성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그동안 시도되었던 과거사 조사 및 진상 규명 활동이 주로 주요 책임자의 사법적 처벌을 목표로 진행된 하향식 방법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권의 공방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으로 마무리를 지어온 경우가 많았다. 결국 과거에 자행된 국가 폭력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자원인 국가 공권력에 동원되었던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지는 상향식 시도가 적었고, 이는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이 어렵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요소는, 회복적 정의 접근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즉, 과거 발생한 국가 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과 화해는 순차적 과정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실이 밝혀지고 그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다 이뤄진 후에야 역사적 화해를 이룰 수 있다는 관점은 매우 일반적이고 상식적 발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치 집단이 철저하게 단죄되고 다음 정권이 과거사를 바로잡을 의지와 방법이 명확히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일제 강점기와 연이어 발생한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한 번도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이어져 온 한국 근현대사의 분열적 정치 구조와, 이 과정에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가해자 그룹이 여전히 사회 기득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정치 사회 구조 속에서, ‘상식적인’ 과거사 청산은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회복적 정의를 통한 과거사 청산은 그 자체로 통합과 화해를 향한 정의를 이루려는 공동체적 결단이었다. 응보적 정의를 이룬 후에 회복적 정의를 이루겠다는 발상이 아니었다. 개인 간 폭력과 달리 국가 폭력에서는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개인적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선택과 책임의 등가 관계가 성립하기 어렵다. 결국 어떤 형태의 사회적 정의 구조 틀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과거보다는 좀 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집단적으로 과거사를 정리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진실을 통한 역사 정의 바로 세우기와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국가적 책임의 강조가 내용의 큰 줄기를 이루게 된다.

한국의 사회 정치적 구조를 고려할 때,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제 와서 회복적 정의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실효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해지는 것은, 과거에 자행된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자 색출과 강력한 처벌을 전제로 한 가해자 중심의 과거사 청산 접근이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정부의 진실과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채 시행된 정치적 사면으로 인해 무조건적 면죄부를 받은 최고 책임자들의 반성 없는 뻔뻔한 태도에, 국민들은 반복적으로 분노를 느끼면서도 점차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늦었지만 역사적 화해와 치유를 위해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정의 필요에 더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고, 회복적 접근이 현시점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시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사 문제의 해결에 회복적 정의 접근이 의미 있게 기여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이 점검돼야 할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 국가 폭력에 참여하고 폭력 행위에 실제로 가담했던 개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평가가 필요하다. 당연히 이들은 역사적 사건의 가해자들이지만 동시에 피해자로도 인식되어야 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신분상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했던 다수 개인들의 딜레마에 대한 이러한 포용적 이해는 이들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의 중요한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이들에게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참여를 끌어낼 적절한 동기 부여와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양심 고백과 증언이 곧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사망 선고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이들의 참여는 묘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과 정부가 상징적인 지지를 보장하고, 종교계와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사면’ 선언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사회적 사면은 결과적으로 참여 당사자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공소 시효 만료 등으로 사법적, 정치적 사면이 큰 의미가 없는 현실 속에서, 상향식 과거사 청산 과정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기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익명으로라도) 기여함으로써 개인적 트라우마와 부채 의식을 더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화해 경험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이 심리적, 정신적, 물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운영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 접근을 위해 중요하다.

이런 안전한 공간에서 자기 스토리텔링의 기회를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숨기고 묻어 두었던 개인적 역사를 직면함으로써 개인적 치유와 온전한 자신으로의 회복을 돕는다. 그리고 그 목적은 피해자(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회복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스토리텔링은 막연히 기관이나 언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 피해자 또는 피해 그룹을 향해야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피해자의 동의나 인정이 없는 가해자의 사과는 처벌 회피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사면의 궁극적 완성은 국가 폭력의 실질적 피해자의 인정과 동의이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의 가장 이상적인 완성은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면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치유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결코 일회성이나 우발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철저하고 세밀한 준비와 교육, 사전 모임을 통해 어려운 직면의 시간이 가장 치유적인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미리 설계된 대화 모임 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당사자 간의 대화의 장은, 진상 규명의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국가 주도의 기구들보다는, 종교계와 관련 시민 사회 그룹이 맡아 진행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범종교계와 시민 사회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회복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국가 폭력 문제에, 왜 지금 회복적 정의 접근이 필요한지 이해를 공유하고, 어떻게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적 사면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운영 역할을 감당할지 의논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이런 공유와 협의의 장을 통해,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의 가능성과 실현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야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용어의 선택에서부터 좀 더 회복적 정의 관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증언과 고백을 통한 진상 규명’이라는 관점은 철저하게 가해자 중심 사고이고, 동시에 개인의 필요보다는 국가적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좀 더 개인적이면서 중립적인 용어의 선택이 필요하므로 창의적인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다. 또한, 역사 문제에서 국가 폭력을 이야기할 때, 가해자에 대한 규정도 국가 기관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진상 규명을 위해 접촉하게 되는 개인들은 자신이 국가적 비극의 사건에 가해자로 규정되는 것만으로도 반발하고 비협조적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을 단지 심문을 위한 가해 의심자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한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내어놓고 공감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 그 밖에도 진상 규명을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들과 종교계와 시민 사회가 어떻게 실질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구조적 협력 관계를 지속할지를 의논해야 한다. 결국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협의하며 모두의 지혜를 모으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세대와 역사를 위해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과거사를 미래 지향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적 사면이라는 상징적 선언과 더불어,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 치유와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인 대화 모임이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장은 정부가 만든 위원회의 한시적 활동이 끝나도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역사적 트라우마 사건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 국민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고, 따라서 죽기 전에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기회의 장을 사회적으로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와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절차와 병행하여 종교계와 시민 사회 영역이 감당해야 할, 사회 통합을 위한 회복적 역할이다. 불행했던 과거의 국가 폭력의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을 적용한 치유와 화해의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회복적 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와 역할 수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1)  하워드 제어,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 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손진 옮김 (대장간, 개정 2019), 221-222.  

2)  이재영,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피스빌딩 2020), 14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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