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시가 주는 건강한 자극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평생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걸. 풋풋한 스무 살의 젊음은 너무 이쁘지만, 젊은 날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한다. 시가 젊은 날을 닮았다. 나는 그대가 시의 숨소리도 들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길 바란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우리는 자극이 넘쳐 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익숙해져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스마트폰과 외부 자극은 과도한 정보와 불필요한 자극으로 우리의 뇌를 흥분시킨다.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둔감해진다. 입맛도 없어져 맵고 짠 음식을 찾게 된다. 건강하게 살려면 집밥 같은 자극이 필요하다.

 

건강한 자극

 

유튜브를 보면 빗소리 영상이 많다. 잔잔한 빗소리, 시원한 빗소리,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 장독대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있다. 인위적인 소음에 지치다 보니 자연의 오감이 그리운 것이다. 흙을 밟을 때 오는 감촉,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꽃, 시냇물 소리 같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그리운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을 한두 번은 경험하게 된다. 어찌어찌해서 위기를 넘기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신경 세포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시냅스를 손상해서 뇌 기능을 저하한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TV를 보지만, 과학 기사를 보니 TV를 켜는 순간 뇌가 곧바로 활동을 멈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까다로운 뇌도 건강한 자극을 받으면 활성화된다. 세부 묘사나 암시와 비유가 풍부한 글을 읽을 때 뇌의 특정 부위―좌측 피질―에 변화가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는 5일 동안 지속한다. 이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높아지고 분석과 성찰을 만들어내는 힘을 익히게 된다. 이것이 건강한 자극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점화 효과

 

점화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우리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와 연관된 연결 고리를 통해 다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 하면 신호등이나 화재가 떠오르는 걸 말한다. 뇌에서도 비슷한 점화가 일어난다. 맨 처음 접하는 정보로 촉발되는 생각이 순차적으로 연관된 생각에 불을 붙인다.

우리가 남북전쟁이란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링컨, 노예 해방, 암살 같은 것이 연상된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이어서 링컨 콘티넨털이 떠오를 것이다. 뇌 속에 특정 대상과 연결된 정보가 많이 저장되어 있을수록 연상 작용은 더 풍부해진다. 그리고 이런 점화 작용은 무의식적으로 순식간에 작동하기에 통제가 어렵다.

우리 뇌에 장착된 점화 시스템으로 인해 시간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을 처리하는 데 영향을 준다. 우리가 습득해서 저장해 놓은 정보 중에서 가장 적합성이 높은 것이 점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화는 즉각적,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때론 감정이나 행동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사소한 말도 자꾸 듣다 보면 무의식의 심층에도 영향을 준다. 처음엔 사소해 보였지만 듣다 보니 그 맥락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기존 생각과 얽히고 서서히 자기 것이 된다.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이나 말씨가 자신의 것이 된 경우가 그걸 보여준다. 세뇌, 혐한, 혐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건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무엇을 읽는지가 중요한 이유

 

자극과 정보가 다르고, 정보와 문학이 다르다. 읽기에도 가벼운 읽기와 깊은 읽기가 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쓰인 글은 소통을 돕지만,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지 못한다. 대개는 몇 분 안에 사라진다. 반면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펴면 곳곳에서 꼼꼼한 묘사를 읽게 된다. 독자가 이런 묘사를 읽을 때 뇌가 자극을 받아 활성화된다.

도종환의 시는 암송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시구가 많다. 〈처음 가는 길〉을 읽는데 시인은 첫 두 행―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으로 나의 시선을 붙잡아 놓았다.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을 읽을 때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시인은 한 줌의 단어로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만든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말하지 않은 침묵을 듣는 것이다.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을 보면 시인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말한다. 시인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단풍의 의미를 단번에 확장한다. 당황해서 주춤하는 찰나의 순간, 머릿속 어디선가 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게 자극이다.

문학이 건강한 자극을 주어서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고 인지적 능력을 높이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과도한 정보로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면, 일단 멈춘 뒤 시를 잠깐이라도 읽어야 한다. 시인 김완하는 뻐꾹새 한 마리가 쓰러진 산을 일으켜 깨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1) 시인 김사인은 바람 부는 날 키 작은 풀들이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본다.2)

한 번이라도 시가 주는 건강한 자극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평생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걸. 풋풋한 스무 살의 젊음은 너무 이쁘지만, 젊은 날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한다. 시가 젊은 날을 닮았다. 나는 그대가 시의 숨소리도 들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길 바란다.

 


1)  김완하의 시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

2) 김사인의 시 〈풍경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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