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는 『이야기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유년기에만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유년기에도 읽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라고 했는데, 그림책이야말로 유년기를 넘어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최근에는 오히려 어른들이 그림책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의 특별함을 생각해 보았다. (본문 중)
김주련(한국성서유니온 대표)
오랫동안 책 만드는 자리에서 좋은 글을 읽고 매만지며 글이 좋고 책이 좋아 밤새워 일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있어 글이 무섭고 그 글을 쓰는 사람도 싫어지는 날이 이어졌다. 좋은 글과 달콤한 말들이 한꺼번에 물리는 음식처럼 보기 싫어졌고 소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추천받은 숀 탠의 『빨간 나무』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은 절망적인 일상에 깃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어떤 순간 어떤 환경에서든지 조용히 실재하는 희망을 보여 주는 그림책이 내 마른 눈을 적시고 며칠 동안 어둠 속 미로 같았던 머릿속을 환히 비춰 주었다. 다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났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이 책 이야기로 무슨 대화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림책에 빠지면서 숀 탠의 책을 다 읽고 싶어서 한 권 한 권 읽다가, 이민자들의 깊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따뜻한 연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도착』이라는 책을 만났다. 그 안에서 글자 하나 없이 그림만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서사는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림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깊은 밤을 지나는 이에게, 말이 어눌해서 고민하는 이에게, 무거운 죄에 눌려 사는 이에게, 엉엉 울고 싶어 하는 이에게, 결혼하는 이에게, 퇴직하는 이에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이에게, 이별하는 이에게….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그림책을 골라 선물하다 보니 정말 그림책에는 다 있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처럼, 선물과 함께 내가 전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그림책에 있었다. 예컨대 너무 바빠서 제대로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지 못하는 친구에게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잃어버린 영혼』과 같은 책을 선물하면 어김없이 눈물 어린 답장으로 돌아왔다. 그림책 선물은 무엇보다 받는 이가 독서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 장점이 있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같이 읽으며 대화의 물꼬를 새롭게 틀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동네 책방에 가는 일을 좋아하는데 그때마다 그림책을 선물하곤 한다. 전하는 이와 받는 이의 공감이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현장이 된다.
설교나 강의 시간에 그림책을 즐겨 사용해오고 있다. 한 기관의 대표를 맡아 일하다 보니 어떤 행사의 시작이나 마무리에 메시지를 전할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성경 본문에 맞게 그림책을 한 권씩 소개하며 말을 시작하거나 끝을 맺곤 했는데, 적잖은 분들에게 감동이었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고 실제로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강의를 듣는 청중의 모습을 보는 일도 많았다. 20세기 이솝으로 불리는 레오 리오니의 책들을 거의 대부분 사용했고, 죤 버닝햄, 숀 탠, 샤노 요코, 권정생, 노인경, 정진호 등 좋은 작가들의 작품에 기대어 메시지를 전하다 보면 매번 내 어쭙잖은 생각들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만나며 나부터 매료되곤 했다. 그동안 그림책을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알고 있었던 어른들이 위로와 감동을 받으면서, 새삼 어느 집에나 넘쳐나는 그림책들 속에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눈물과 웃음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C. S. 루이스는 『이야기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유년기에만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유년기에도 읽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라고 했는데, 그림책이야말로 유년기를 넘어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최근에는 오히려 어른들이 그림책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의 특별함을 생각해 보았다. 좋은 그림책은 나이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대한 뭔가 특별한 경험을 주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답답할 때 숨 쉴 수 있는 작은 창문 하나 열어 주는 것 같고, 막다른 길목에 들어선 것처럼 당황스러운 때 순간 겨드랑이에 날개 하나가 돋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게도 한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서 받아들여야 할 어떤 대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부닥친 문제들과 같이 뒹굴고 놀아도 괜찮다는 응원을 받아서인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너무 자주 억지로 답을 찾아 욱여넣으려고 노력하다 지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짧은 글과 깊은 울림을 주는 그림으로 된 책에 마음을 빼앗기며 ‘휴~’ 하고 안도의 숨을 가만가만 몰아쉬는 듯하다.
언젠가 목회자 몇 분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성경 읽기를 했는데, 그중 한 분이 그동안 시골 교회 어르신들 몇 분에게 설교하면서 너무 딱딱하고 마른 말들로 피곤한 분들을 더 피곤하게 하진 않았는지 자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분들의 언어로, 자연과 가까운 언어로 얼마든지 성경을 나눌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파하면서, 앞으로는 강단에서 내려와 그분들과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성경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찌 그분만 그럴까? 실제로 지금은 높은 강단에서 이래라저래라하는 지시와 동원의 언어에 사람들이 이미 신물이 나 있는 시대다. 권위 있는 누군가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끄덕여 주는 작은 몸짓들에 마음이 흔들리는 시대다. 강단에서 내려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대어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때다. 그림책, 또는 시와 소설, 자연과 환경 이야기를 성경과 함께 나누는 모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일 때 어느 부활절에 어린이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오바마와 미셸 대통령 부부는 온몸으로 소리 내어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어 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응원했다. 이 책은, 방안에 갇혀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어린이다움의 유쾌한 매력을 보여 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그림책을 읽지 않고 이런 상상력을 펼칠 수 없다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갇힐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저런 괴물딱지 같은 녀석!’하고 혀를 차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지금 숨도 못 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더 그림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림책 읽어 주는 목사, 그림책 읽어 주는 교회 언니, 그림책 읽어 주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리는 공동체라면 적어도 괴물들의 자리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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