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은 읽고 난 뒤 남는 게 있다. 문장이 남기도 하고 감동이 남기도 하고 생각이 남기도 한다. 문장이든 감동이든 생각이든 이것들은 소설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이다. 이것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태동했다. 나는 이것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여긴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주홍 글자』, 『침묵』, 『순교자』, 『천국의 열쇠』,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 『더버빌가의 테스』, 『장미의 이름』, 『분노의 포도』,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다. 좋은 소설이지만 출간 시기와 내용이나 주제는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현실의 삶에서 포용하지 못하는 뭔가를 보게 한다.
나는 이런 뭔가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1)에서도 발견한다. 좋은 소설은 읽고 난 뒤 남는 게 있다. 문장이 남기도 하고 감동이 남기도 하고 생각이 남기도 한다. 문장이든 감동이든 생각이든 이것들은 소설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이다. 이것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태동했다. 나는 이것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여긴다.
소설을 읽어야만 경험하게 되는 게 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같은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 빠르게 읽게 된다. 해야 할 바쁜 일이 있어도 중간에 멈춰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에 빠진 독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한다. 독자는 서사가 주는 긴장과 문장이 주는 쾌감에 중독되어 안절부절못한다. 다음 문장을 한번 읽어보라.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2)
『7년의 밤』에서 작가는 한 번의 실수가 가져온 비극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그 속에서 한 남자는 죽은 딸의 복수를 꿈꾸고 다른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이런 행보가 맥락은 다르지만 『레 미제라블』에도 나타난다. 한 사람은 추적하고 한 사람은 도피한다. 도피자의 이름은 장 발장이다.
『7년의 밤』이나 『레 미제라블』 모두 서사가 주는 힘이 엄청나다. 장 발장은 쫄쫄 굶고 있는 누나 아이들을 먹이려고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가 인생이 망가졌다. 완역본으로 다섯 권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는 장 발장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시작된다. 통행증에 전과자 표시가 찍혀 있어 가는 곳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번역본 1권은 이야기의 첫 시작이다. 그 첫머리를 미리엘 주교가 시작한다. 위고는 작품의 배경을 1815년으로 못 박는다. 그때 주교는 일흔다섯쯤 되는 나이였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디뉴라는 곳의 주교이다. 위고는 1장 이야기를 시작하며 “도시에는 말 많은 사람은 흔해도 생각 있는 사람은 드물다”(13쪽)라고 썼다.
주교는 올바른 사람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가 주교로 임명되어 와서 보니 주교관은 넓었지만 자선 병원은 협소했다. 주교관엔 셋이 사는데 병원엔 60명이나 되는 환자가 있다. 그는 다음날 자선 병원으로 이사를 했다. 집을 바꾼 것이다. 작가는 주교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작가는 주교가 사형수를 어떻게 품었는지 보여 준다.
주교는 사형수를 위해 기도하고 위로한 뒤 천국의 소망을 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죄수와 함께 사형장에 동행하고 단두대에도 올라가서 그를 안아 주었다. 소설에선 사형수의 얼굴이 빛났다고 적고 있다. 주교가 다른 사제들과 다른 게 하나 있다. 주교는 신의 법에 몰두하여 인간의 법을 모른다면 그건 잘못이라고 여긴다(36쪽).
미리엘 주교를 보면 『주홍 글자』 속 청교도들이 떠오른다. 믿음의 공동체를 꿈꾸었고 완벽한 신앙인의 삶을 살려고 했지만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다. 신의 법에 몰두하여 인간다움을 놓친 것이다. 미리엘 주교는 그런 점에서 놀랍다. 그는 주교관에서 자물쇠와 빗장을 떼어냈다(48쪽). 누구든지 어느 때든지 밀기만 하면 문이 열렸다.
주교는 도둑이나 살인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들 자신을 두려워하라고 말한다(55쪽). 그는 편견이 도둑이고 악덕이 살인자라고 말한다. 주교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의아해진다. 왜 그처럼 신실하고 뛰어난 사람 곁에 젊은 사제들이 없을까? 장래의 출세를 바라는 성직자는 그의 삶이 불편했던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니 어렸을 때 읽었던 『장 발장』과 완전히 달랐다. 좋은 책은 처음 읽을 때보다 그것을 재독 혹은 삼독할 때가 더 좋다. 이 책이 그랬다. 요즘 우리는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졌다.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편리하게 바꿔 간다. 그런 걸 보다 보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걸 찾고 싶어진다.
『레 미제라블』은 신앙 서적 같다. 우리에게 인간다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위고는 독자에게 주님을 연구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에 사로잡혀야 한다고 말한다(107쪽). 그러고 보니 문학만큼 인생과 신앙의 의미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매체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사람과 신앙에 대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한다.
1)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1』. 정기수 역(민음사, 2021).
2) 정유정. 『7년의 밤』(은행나무, 2013),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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