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 운동은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연속이었다. 1800년대 산업혁명 시대 하루 노동 시간은 16-17시간이었다. 1817년에는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수면, 8시간 휴식”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할 정도였다. 노동절(5월 1일)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파업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본문 중)
우상범(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유명한 장하준 교수는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정책이 19세기의 낡은 생각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노동자가 원하면 주 120시간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일할 자유’는 구시대적 사고라고 평가했다.1) 예컨대 1905년 미국 뉴욕주가 1일 노동 시간 제한을 15시간에서 10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만들자 연방 대법원은 노동자들이 15시간을 일할 수 있는데 1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일할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노동자가 하루 15시간을 일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원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자의 말을 따라야 하는 상황을 외면한 논리이다.
노동부는 현재 주 52시간 정책을 없애는 개편안을 냈다. 개편안의 핵심은 현재 주 단위 노동 시간을 월, 분기, 반기, 년으로 관리하고, 바쁠 때 일한 시간을 계좌에 모았다가 한가할 때 휴가(근로시간저축계좌제)로 쓰는 것이었다. 노동자는 6일 근무 시 주 최대 69시간(11.5hX6일=69시간), 7일 근무 시 주 최대 80.5시간(11.5hX7일=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2)
<그림1> 정부의 노동 시간 개편(안)
노동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 69시간 노동 시간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 당선에 일등 공신인 20-30대 MZ 세대의 반대가 있다는 언론 기사를 접하자 곧바로 윤 대통령은 노동부 장관에게 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청취해 정책을 보완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장관은 여전히 250만 명의 양대 노총(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의견은 무시한 채 6,000여 명의 MZ 노조를 만나 간담회를 개최해 의견을 청취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 운동은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연속이었다. 1800년대 산업혁명 시대 하루 노동 시간은 16-17시간이었다. 1817년에는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수면, 8시간 휴식”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할 정도였다. 노동절(5월 1일)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파업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16시간 노동 시간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영세민의 자녀들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라고 편지 썼다. 이후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면서 주 48시간(주 최대 60시간)에서 44시간(주 최대 64시간)으로, 2003년에 주 44시간에서 40시간(주 최대 68시간)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 근로기준법 제50조는 노동 시간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 연장 근로 포함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했다.3) 주 최대 60시간대에서 50시간대로 확 줄인 것이다.
1953년 |
1989년 |
2003년 |
2018년 |
– 1일 8시간– 1주 48시간– 주 최대 60시간 |
– 1일 8시간– 1주 44시간– 주 최대 64시간 |
– 1일 8시간– 1주 40시간– 주 최대 68시간 |
– 1일 8시간– 1주 40시간– 주 최대 52시간 |
<표1> 우리나라 노동 시간 변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일까?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5년 34개국 중 2위였지만 2018년에는 5위로 떨어졌다. 이는 주 최대 52시간으로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세계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이다.
2015년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 시간 |
2021년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 시간 |
<그림2> OECD 노동 시간 현황
주 69시간 장시간 노동이 추진된다면 여러 가지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첫째, 장시간 노동은 이미 과로 사회인 우리나라를 초과로 사회로 만들 것이다. 과로는 누적될수록 위험하다. 과로 누적은 질병과 죽음으로 나타난다. 노동 시간을 월, 분기, 반기, 년 단위로 관리하는 체제는 과로 누적을 가중시킨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과로로 사망한 노동자는 1,205명으로 매년 240명꼴이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55시간 이상 일하면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있고 매년 전 세계에서 75만 명 정도가 장시간 노동을 하다가 질병으로 죽는다고 보고했다.
둘째, 장시간 노동으로 일‧가정 양립이 파괴되어 자녀 돌봄의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애 맡길 곳이 없어 눈앞이 캄캄했던 경험은 맞벌이 부부라면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혼자 벌어서 집값,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부는 2000년대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노동 시간을 줄일 당시 장시간 노동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정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주 최대 69시간 노동 정책은 저출산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가속화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이 증가할 것이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9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1.4%이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일이 바쁘면 비정규직들을 뽑았다가 덜 바쁘면 이들을 해고할 수 있으므로, 굳이 정규직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정부는 바쁠 때 열심히 일하고 그 시간을 계좌에 넣었다가 한가할 때 장기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강조했지만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법으로 정한 연차(유급 휴가)도 다 쓰지 못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노동 시간 줄이기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상당수 기업이 주4일제를 시행하고, 호주, 아이슬란드, 벨기에, 스페인은 주 4일제를 실험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4일제는 고사하고 주 52시간 노동을 주 69시간으로 늘이는 쪽으로 역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도가 노동자인 한국교회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휴식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낡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을 터부시하는 편견을 버리고, 정부가 올바른 노동 정책을 펴도록 감시해야 한다.
1) 120시간은 하루 24시간씩 5일(24h×5일=120h), 하루 20시간씩 6일(20h×6일=120h), 하루 17시간씩 7일(17h×7일=120h) 근무해야 달성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노동 시간이다
2) 하루 11.5시간은 다음과 같은 계산에 의해 나왔다. 정부는 노동자 건강을 위해 퇴근과 다음 날 출근 사이에 최소 11시간 이상 휴식과 4시간 근무 시 30분의 휴식 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24시간-11시간=13시간. 13시간 일한다면 그에 따른 휴게 시간은 1시간 30분이기 때문에 13시간-1.5시간= 1일 11.5시간이 된다.
3) 근로기준법 50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1주간의 근로 시간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 시간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특정한 주의 근로 시간은 52시간을, 특정한 날의 근로 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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