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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문득, 잠시 숨을 고르게 되는 시간이 온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매듭짓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다지는 시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분주하면서도 낯선 시간이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준비하게 되는 시간이 그렇다. 나에게는, 그럴 때면 늘 찾게 되는 ‘쉴만한 물가’와 같은 영화가 있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살다 보면 문득, 잠시 숨을 고르게 되는 시간이 온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매듭짓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다지는 시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분주하면서도 낯선 시간이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준비하게 되는 시간이 그렇다. 나에게는, 그럴 때면 늘 찾게 되는 ‘쉴만한 물가’와 같은 영화가 있다.
패터슨의 패터슨
시인 패터슨을 좋아하는,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패터슨>은 말장난 같기도 한 그 설명처럼 독특한 운율이 반복되는 영화이다. 영화는 일주일 남짓 이어지는 패터슨의 일상을 보여 준다. 새로운 하루의 아침은 잠든 패터슨과 그의 아내 로라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같은 침대에서 비슷한 자세로 잠든 패터슨과 로라는 비슷한 시각에 눈을 뜬다. 도시락을 챙겨 출근한 패터슨은 매일 패터슨 시내의 노선을 왕복하는 버스를 운전하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퇴근한 뒤에는 매번, 기울어지는 집 앞 우편함을 다시 바르게 세워 놓는다. 저녁을 먹고선 공책에 시를 쓰고,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하고,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같은 풍경에 같은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가끔은 일찍 눈이 떠지거나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거나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기도 하면서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주가 담긴 일상이 규칙적이고 평범하게 지나간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패터슨의 일상에 운율을 더해 주는 것은 시이다. 패터슨은 출근 준비를 하거나, 점심 도시락을 먹거나, 퇴근한 후 하루를 돌아보는 틈 사이에 공책에 시를 써 내려간다. 아내와의 대화 후나 버스 승객들의 대화를 들은 뒤에 난 생각을 시로 쓰기도 하고, 버스를 운전하는 일에 대해 쓰기도 한다. 아내 로라는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내자며 복사를 해두자고 하지만, 패터슨은 부끄러운 마음에 나중에 복사해 두겠다고 말하며 넘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의 책 『인생의 역사』에서 “광부와 농민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부르짖던 시대도 있었지만, 진정한 유토피아는, 광부와 농민이 이해 못 할 작품이 없을 만큼 그들에게 교육과 시간이 주어지는 사회”라고 말했다.1) 점차 냉소적이고 각박해져 가는 각자도생의 공간이 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자산과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 계발서나 수험서보다 시집을 찾는 이가 더 많은 풍요로움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휴대전화조차 갖고 있지 않은 패터슨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시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 지루함보다는 왠지 모를 부러움과 평안함이 느껴진다.
일상의 변주
평화롭게 한 주가 흘러가던 중 패터슨에게 좀 더 큰 변주가 일어난다. 토요일 저녁, 패터슨이 시를 적어 가던 공책을 반려견 마빈이 갈가리 물어 뜯어버린 것이다. 아직 복사본도 만들어 놓지 못한 시들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과 어렸을 적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평범하고 그저 그런 일상. 무언가를 이뤄도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거나 허망하게 사그라지기 쉬운 삶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너머를 가늠해 보는 때.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 신학자들은 그 허무함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했고 아름답고도 치명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면
한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1:2)라고 말했고, 철학자 니체는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되는 영원 회귀의 세상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스스로 삶과 그 가치를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카뮈는 허망하고 권태로운 삶의 끝이 결국 죽음뿐인 부조리한 것일지라도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의지나 기대를 하기보다 바로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위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며, 많은 것을 가져본 이들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내린 결론은, 사실 인생이란 거창한 의미가 없는 공허한 것이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내가 그에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놀라우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지점이었다. 어떠한 대의명분을 발견해 이를 위해 삶을 바쳐 매진해야 하고, 그 대의명분을 이루면 인생이 예비한 목적을 이룬 것이라는 명제는, 시시하고 평범한 삶을 가치 없는 미완의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만든다.
시와 같은 삶
시를 출판한다는 패터슨의 멋진 꿈은 물 건너갔다. 쓰라린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 일요일 아침. 패터슨은 우연히 한 일본인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와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되고 지금껏 썼던 시를 모두 잃어버린 패터슨에게 일본인 작가가 새로운 빈 공책을 건넨다. 패터슨은 다시 그 공책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새로운 월요일이 시작된다.
패터슨이 다시 쓸 시들은 이전의 시와는 조금 다를 것이고, 어쩌면 끝내 시집을 출간하지도, 제2의 시인 패터슨이 되지도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한가. 패터슨의 일상은 계속되고 시는 써질 것이고 그렇게 반복과 변주가 이어지는 시와 같은 삶은 이어질 것이다.
일상의 충실함, 충분함, 충만함
나는 더 이상 인생의 의미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며, ‘정말 좋았다!’라며 감탄하는 그 순간들을 계속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고 대단한 것을 이루는 일생일대의 목적에 대한 과도한 천착은 우리를 늘 조급하고 부족한 존재로 만들며, 영원하고 온전한 것을 부정하고 비관적인 허무함에 머물러 있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이에 대한 섭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큰일은 늘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고, 인생의 가치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미처 다 가늠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빚어내는 일상의 아름다움과 충실함, 그로 인한 감사함과 충만함,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전도서 5:18-20)
1)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2022,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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