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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교회는 여느 다른 모임들만큼 갈등을 잘 못 풀 뿐 아니라 교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잘못 풀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에 대한 확신이란 이름으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역자를 본 적 있는가? … 우린 엉킨 실타래를 푸는 법을 잘 모른다. 아니 내가 잘 모르겠다. (본문 중)
이슬기(신학대학원생)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교회만 한 갈등 현장도 또 없다.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는다. 최근에 가까운 동료에게 매주 악화하는 생생한 교회 분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매콤한 전개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 세부 사항만 다를 뿐이지, 내가 속했던 교회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서늘한 결론을 내린다. 교회가 곧 갈등의 현장이구나.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는 주님뿐 아니라 갈등도 그들 가운데 있구나(마 18:20). 혹시 주님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시는 분(마 10:34)이라서 그런가?
피할 수 없는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교회는 여느 다른 모임들만큼 갈등을 잘 못 풀 뿐 아니라 교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잘못 풀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에 대한 확신이란 이름으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역자를 본 적 있는가? 구성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는데 기도만 하는 사역자는 어떤가?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돌려 까기 설교를 하는 사역자는? (다 내 이야기다.) 우린 엉킨 실타래를 푸는 법을 잘 모른다. 아니 내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2024 평화교회연구소 화해자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화교회연구소는 갈등에 취약한 교회에 회복 시스템을 구축하고 화해자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2019년부터 화해자 과정을 열어왔다. 이번 상반기 과정은 지난 5월 20일부터 4주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모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장평화서클네트워크의 김석봉 목사, 기독교갈등전환&화해센터의 한세리 전도사가 공동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4주 차 마지막 세션에선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목사가 마태복음과 평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프로그램 안내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청년 중심의 진행을 지향한다는 점이었다. 교회가 ‘다음 세대’를 말할 때 청년은 주로 사역의 ‘대상’이 되지만, 이번 화해자 과정은 청년을 교회 내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를 이끄는 주체적 대안으로 보려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화해자 과정에 참여하며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좌석을 둥그렇게 배치하고 서클 방식으로 모든 모임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화해자 과정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서클은 한자리에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며 연결되기를 익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모닥불이나 촛불 앞에 둘러앉아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이야기 나눈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아마도 서클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서클의 주안점은 안전한 공간 만들기다. 여기서 안전함이란 참여자들이 편안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서로의 존재와 이야기를 존중하는 분위기와 구조를 말한다. 중심에 센터피스를 두는 배치나, 서로 오늘의 기분이나 상태를 말하며 마음을 연결하며 모임을 시작한다는 점, 무엇보다 토킹피스(토킹스틱)를 든 사람만 말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안전한 공간 만들기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4주간 나는 이상하게도 토킹피스를 손에 쥐면 이전까지 복잡했던 마음이 금세 차분해지면서, 내 생각을 차근차근 말할 수 있었다.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 안전한 공간을 몸으로 배우고, 경청하는 눈빛을 통해 내 감정과 경험이 명료화되고 확인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또 하나 놀란 점은, 과정 내내 진행한 놀이와 대화 중심의 활동이었다. 우리는 첫날 둘씩 짝지어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대화를 나누었고, 둘째 주에는 경청 연습과 ‘감정 퀴즈’ 놀이를 했다. ‘감정 퀴즈’ 활동은 조별로 하나의 감정 카드를 받고, 이를 날씨, 동물, 색, 음식, 노래 등으로 표현해 본 뒤에, 이 표현만으로 다른 조가 받은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맞히는 활동이었다. 셋째 주에는 욕구를 확인하고 서로 나누었고, 넷째 주에는 함께 카드 탑을 쌓았다. 필기하려고 챙겨간 노트북은 꺼낼 필요도 없었고, 다음 주부터는 가져가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많이 웃었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또 웃는 와중에 남은 강렬한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탐색했고, 배운 바를 파일이 아니라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4주간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해 보니 다소 밋밋하고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경청하기, 감정 맞히기, 욕구 확인하기, 카드 탑 쌓기 같은 활동이 평화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자주 하는 프로그램은 아닌가? 진행자였던 김석봉 목사는 감정과 욕구를 확인하는 연습과 평화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갈등은 외부 자극(언어, 태도, 몸짓 등)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반응(맞섬, 회피, 복종 등) 때문에 악화하고 더 나아가 다툼과 폭력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내 감정과 욕구를, 그리고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확인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곧 화해와 성장의 가능성이 된다. 멈추어 생각하기,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 느낌과 진심은 무엇인지 확인하며 평화의 싹을 틔운다. 여기에 더해지는 경청과 공감, 놀이와 웃음은 더없이 기름진 거름이 되겠다. 이런 게 교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활동이고 실천이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평화의 씨앗이 널리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지막 강의에서 박성용 목사는 마태복음과 예수 공동체의 평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 그리스도인들, 곧 마태복음의 신학을 형성하고 실천해 온 이들은 성전 중심으로 이해하던 거룩함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마태복음의 공동체가 찾은 거룩함은 곧 평화와 화해, 용서의 실천이었고, 이들은 이 같은 실천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마 5:9)과,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마 5:44-45)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 말한다. 또 예배드리러 가기 전에 화해할 것을 강조하고(마 5:23-24), 산상수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도 용서의 기도가 놓여 있다(마 6:9-13). 마태복음에서 평화와 화해, 용서는 공동체를 세우는 심장과 같다고 박성용 목사는 강조했다. 첫 모임을 열며 팔복 본문(마 5:3-12)을 묵상했는데, 마지막 강의에서 다시 같은 본문을 다루니, 평화를 이루는 제자로 살라는 주님의 부름이 반복되는 것 같아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반기 화해자 과정은 9월 23일(월)부터 5주간 진행된다. 갈등 전환 모델로서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s)에 집중한다고 하니 좀 더 생생하고 실제적인 배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평화교회연구소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공지를 확인하시길 바란다. 상반기에 만났던 분들, 그리고 새로운 분들과 울고 웃으며 가슴 떨리는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 볼 가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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