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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K-POP을 낯설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K-POP을 즐기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 중 하나인 나는 K-POP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짧은 지식을 전달하려 한다. 이 지식은 아마도 K-POP을 즐길 수 있게 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K-POP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자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그가 돌아왔다
K-POP의 전설, 트렌디한 아티스트, 만능 뮤지션, 연예인들의 연예인, 샤넬의 남자. K-POP을 잘 몰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아이돌 그룹 ‘빅뱅’의 리더 G-Dragon이 7년여 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중음악 시상식인 마마 어워즈(MAMA Awards)에도 빅뱅의 다른 두 멤버들과 함께 등장하며 화재를 모았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는 핑크빛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이 게시되었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의 귀환을 축하했다. 나는 원체 K-POP을 잘 듣지 않지만, 대중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한 번쯤은 그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최근 발표한 두 개의 싱글 앨범에 수록된 두 곡을 들어보았다. 어려웠다. 기독교인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처럼 “마음이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어려웠다. 한 곡 안에 여러 장르의 음악이 섞여 있었고, 가사는 맥을 잡을 수가 없었으며, 이제 조금 익숙해졌나 싶으니 노래가 끝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마 어워즈의 공연 영상을 보았다. 훨씬 나았다. 세 명의 빅뱅이 보여준 무대가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절제된 동작, 화려한 의상, 여유 있는 무대 매너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짧은 예술 공연을 본 느낌을 주었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
보면서 즐기는 음악은 이미 MTV 시대가 시작된 90년대 말부터 존재해 왔지만, 오늘날의 K-POP은 보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사람에게 K-POP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어렵다는 말을 다시 표현하면 즐기기 힘들다, 혹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K-POP을 낯설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K-POP을 즐기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 중 하나인 나는 K-POP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짧은 지식을 전달하려 한다. 이 지식은 아마도 K-POP을 즐길 수 있게 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K-POP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자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면, 적어도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대중음악이 아니라 K-POP
K-POP은 무엇일까? 먼저 그 범위부터 정해보자.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가 아니다. 흔히 기성세대의 취향이라 알려진 트로트가 한국 대중음악의 일부이듯, K-POP 역시 한국 대중음악의 일부이다. 예전에는 K-POP을 스타일에 따라 ‘댄스 음악’, 혹은 형식에 따라 ‘아이돌 음악’이라고 구분하였지만, 요즈음에는 K-POP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K-POP으로 구분되는 음악은 스타일도 형식도 매우 혼종적이라서 장르 구분이 어렵다. 앞서 언급한 G-Dragon의 음악을 예로 들어보면, 그가 작사, 작곡, 편곡한 곡들은 발라드부터 일렉트로닉, 댄스, 록, 힙합, 심지어 트로트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한 곡 안에도 여러 장르의 음악이 혼재해 있다.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비트에, 힙합과 일렉트로닉, 때로는 록까지 변화무쌍한 멜로디가 이어진다. 미국의 철학자 프레더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패스티쉬(pastiche)를 포스트모던의 특징적인 형식이라고 정의하였다. 패스티쉬란 혼성모방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여러 가지를 짜깁기해서 만드는 작품을 의미한다. 패스티쉬는 의미나 메시지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직관적인 매력이나 재미를 선사하는 것에 중점을 둔 예술 형식이다. 그런 면에서 G-Dragon의 음악을 포함한 오늘날의 K-POP은 패스티쉬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장르가 분명했던 모더니즘 시대의 음악을 들어온 이들에게 철저하게 포스트모던적인 K-POP이라는 장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렵다는 것은 잘 모른다는 뜻이니,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기실 K-POP은 특정한 소비층, 즉 포스트모던 세대 혹은 디지털 세대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음악이다.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음악의 길이이다. 채 3분이 되지 않는 K-POP은 진중한 기승전결을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매우 낯선 음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요즈음의 10대, 20대들에게는 이것이 딱 즐길 만큼의 길이이다. 게다가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여 있지도 않다. 승-승-전, 혹은 승-전-승-전의 구성을 가진 K-POP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기와 결은 노래가 아닌 퍼포먼스로 채워진다. 앞서 보는 음악이라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은 K-POP이 겨냥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만 이해하지 못한 거야?’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젊은 세대를 주 소비층으로 상정한 K-POP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젊은 사람들의 문법을 따른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음반을 홍보하고, 챌린지 문화를 만들어 음악을 퍼뜨린다. 앨범에는 포토 카드를 포함한 각종 굿즈를 추가하여 젊은 세대의 관심을 모으고, 주기적으로 온/오프라인 미팅을 열어 그들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조율한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수들과의 상호 소통은 10대, 20대들의 팬덤을 강화하고, 그렇게 강화된 팬덤을 통해 젊은 세대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렇다 보니 세대가 올라갈수록 K-POP에 몰입하는 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나이를 먹듯, 문화에도 시기라는 것이 있다. 대중문화의 정점을 넘겨줄 때, K-POP을 그들의 문화로 인정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괜스레 기웃거리며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평가하는 것은 멋지지 않다. 어쩌면 K-POP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나이를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K-POP은 아이돌이라는 특정 가수들이 노래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아이돌 음악이라 폄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안에서 양성되는지를 알게 된다면, 그런 비판을 쉽게 하기 어렵다. 일전에 BTS에 관한 글에서도 아이돌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아이돌 가수들은 철저하게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과 같다. 그들은 기획사가 촘촘하게 짜 놓은 스케줄이라는 시간과 기획사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생활한다. K-POP의 소비자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가부장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이 혹여나 소비자들의 높은 도덕적 잣대에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그들의 사생활을 규제한다. 그리고 완벽한 상품으로 거듭나도록 연습에 연습을 강요한다. 서구에서 연신 찬사를 보내는 아이돌의 ‘칼군무’는 한국 사회의 악바리 정신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상품이다. 사생활과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K-POP 아이돌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을 버려야만 정 맞지 않는 사람이 되는, K-POP 이면에 깔려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혼까지 갈아 넣는 한국인의 근성을 알 리 없는 그들이 언감생심 K-POP 아이돌을 동경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그렇게 노력을 해도 K-POP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대다수의 아이돌 지망생들은 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에서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 줄 조연이 될 뿐이다. 수많은 아이돌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결국 K-POP은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가부장적인, 수직 구조적인, 승자독식적인, 한 마디로 줄여서 이제는 문제적이라 말할 수 있는 기성세대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도 K-POP을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폄하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K-POP을 바라보는 마음은 측은지심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K-POP은 매우 아이러니한 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젊은 세대에 의한, 젊은 세대를 위한 문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성세대의, 기성세대에 의한, 기성세대(의 수입)을 위한 문화. 모더니즘의 논리가 포스트모던의 형식을 쓰고 있는 문화. 열려 있는 소통과 닫혀 있는 생활이 공존하는 문화. 무한 경쟁의 시장 논리와 자유를 향한 아티스트의 영혼을 바꾸어야 하는 문화. 본의 아니게 K-POP을 이해해 보려는 어른들에게 독설을 날리는 꼴이 되었지만, K-POP이 진정한 젊은이들의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선 빠져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른들이 문화 생산과 소비의 정점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그렇게도 소중한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창조력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BTS를 비틀즈에 견주는 것을 못 견디는 이들에게
어른들이 열광하던 비틀즈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BTS는 음악적 역량이나 영향력으로 보자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매일 수백 곡의 신곡이 등장하는 요즘, 세계의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빌보드의 영향에서 벗어난, 소수 인종 출신의 가수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 더 대단하지 않을까? 단지 어른들의 귀에 익숙하지 않다고, 눈에 불편하다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틀즈와 비교해 가며 옛날 음악을 칭송하는 것은 음악의 본질을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 음악은 즐기는 것.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K-POP에 대해 책임감 있는 언행이 있다면, 그것을 즐기는 젊은 세대를 좋은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과 유일하게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성장 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이다. 음악이 모든 이들의 삶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구따라라 스따라라.1)
1)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노래 “밥 레논”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살자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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