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소설은 소녀가 말 없는 아이로 성장한 배경에 대해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녀와 킨셀라 부부가 주고받는 사랑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 곳곳의 암시와 여백을 통해 독자는 소녀와 킨셀라 부부를 헤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클레어 키건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 사랑이다. (본문 중)

 

김보경(IVF 중앙회 간사)

 

클레어 키건 | 『맡겨진 소녀』(Foster) | 허진 옮김

다산북스 | 2023. 4. 21 | 104쪽 | 13,000원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은 지난 2024년 가장 주목받은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섬세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클레어 키건은 소설가 존 맥가헌의 말을 빌려 말한다.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다.”1) 독자에게 처음부터 뚜렷이 보이지 않더라도,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2) 편을 택하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클레어 키건은 본질만이 남을 때까지 계속 덜어내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맡겨진 소녀』는 그렇게 쓰인 작품이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에게로 맡겨진다. 아이의 시점에서 설명되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매우 함축적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등장인물들의 의도는 도저히 못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명료하기만 하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킨셀라 부부가 계속 주목하는 소녀의 장점은 조용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소녀에게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다.3) 소녀가 킨셀라 부부와 이별할 때, 그들에게 꼭 하고 싶던 말 또한 “절대 말하지 않겠다”라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내뱉기를 멈추고, 해도 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헤아림’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맡겨진 소녀』 표지 ⓒ다산북스

 

소설은 소녀가 말 없는 아이로 성장한 배경에 대해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녀와 킨셀라 부부가 주고받는 사랑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 곳곳의 암시와 여백을 통해 독자는 소녀와 킨셀라 부부를 헤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클레어 키건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 사랑이다.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70쪽)

 

지금보다 더 서툴렀던 시절, 실패를 거듭하던 나에게 한 선배가 말했다. “많이 사랑하는 것보다 잘 사랑하는 것이 중요해.” 예리한 말이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느끼는 주된 이유는 주는 만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이 사랑할수록 막심한 손해를 입는다. 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고,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사랑의 아름다운 속성 중 하나는 역전이다. 주체였던 것이 객체가 된다. 더 이상 받는 것을 바라지 않고, 막심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사랑하는 게 당연해진다.

 

인간은 사랑의 주체가 아니다.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기 부인이다. 우리는 자기중심성과 이기성을 동력으로 삼지 않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멈춰야 한다. 멈추어 서서, 완전한 객체가 되어 상대를 헤아리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소녀가 너무 늦지 않게 킨셀라 부부를 만나 샅샅이 헤아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순록처럼 힘차게 달리게 된 소녀와 그런 소녀를 받아 안는 킨셀라 아저씨를,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사랑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1)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2)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3) 73쪽.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관련 글들

2024.12.27

한 그리스도인 비평가의 『채식주의자』 읽기(정영훈)

자세히 보기
2024.12.23

나라, 권력, 영광(유정훈)

자세히 보기
2024.12.20

나는 죽는다(김보경)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