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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다양하다. 우연한 기회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꼼꼼한 계획도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가기도 한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환경에서도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삶의 변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소니는 30년간 겪었던 한심해 보이는 실패와 방황, 체념 속에서 마침내 자기 자신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2024년 상반기에 <파묘>와 <범죄도시4>가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된 이후로도 한국 극장가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의하면, 202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의 추정 평균 수익률은 -16.44%이다. -30%에 달하는 전년도 수익률에 비하면 나아진 셈이지만, 할리우드 파업 등으로 인해 외국 영화의 극장 매출도 24% 감소하며 코로나 시기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7월 말에는 정부 지원 국민 영화 관람 6천 원 할인권 사업이 시작되어 최소 천 원 이상의 금액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문화의 날과 겹치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에는 오랜만에 영화관이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 속에서 입소문에 힘입어 역주행하며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있다.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몰입감과 스릴을 최대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는 <F1 더 무비>이다.

영화 <F1 더 무비> | 감독: 조셉 코신스키 | 155분
세계 최고의 자동차 프로 레이싱 대회인 F1 창설 75주년 기념작이기도 한 <F1 더 무비>는 <오블리비언>, <탑건: 매버릭>의 연출을 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30년 전 주목받는 루키였지만 F1 경기 중 사고로 인해 F1을 떠나 이쪽저쪽을 방황하던 드라이버 소니 역할은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절체절명의 팀을 구하기 위해 조용히 살고 있던 베테랑을 데려오고 팀 내 루키와 삐걱대다가 긴장되는 접전 끝에 베테랑의 완벽한 활약으로 팀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스토리는 흔히 볼 수 있는 히어로 서사의 정석이다. 이 영화도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우리의 영웅 소니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결점도 실패도 많은 히어로다.
사고 이후 F1을 떠난 소니는 30년간, 보다 작은 매니아층을 위한 레이싱 경기를 뛰거나, 택시 운전을 하기도 하고, 도박과 파산, 이혼을 여러 차례 겪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F1 시절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루벤이 찾아온다. 루벤은 은퇴 후 사업을 시작해 현재 최약체 F1팀인 에이펙스GP를 이끌지만, 이번 시즌 종료 전까지 우승하지 못하면 팀이 해체될 것이라는 이사회의 통보를 받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루벤은 최정상들이 겨루는 F1에 복귀해 이번 시즌에서 우승을 따내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며 그를 설득한다. 1,600km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바하 1000에 참가하러 가던 길이던 소니는 그의 제안에도 시큰둥하다. 결국 답을 받지 못한 채로 루벤은 떠나고 소니는 식당의 직원에게 자신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직원은 돈을 얼마나 주냐고 묻고 소니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직원은 소니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뭐가 중요한데요?’ 그 말을 들은 소니는 그제서야 루벤의 에이펙스GP가 있는 런던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영화 <F1 더 무비> 스틸컷.
루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데려온 소니는 시범 드라이브 중에 테스트 중인 차량을 날려버리고 팀의 신예 드라이버인 조슈아와 싸울 뿐만 아니라 팀의 전략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경기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게다가 소니는 일부러 경기장의 패널에 부딪히거나 자갈을 밟아, 안전을 위해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는 ‘세이프티 카’나 경기를 중단하는 ‘레드 플래그’를 일으키는 더티 플레이 전략으로 논란을 일으킨다. 아슬아슬하게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전략으로 팀의 순위를 높인 소니는 자신을 희생해 경쟁자들을 막아서서 같은 팀 루키인 조슈아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차량 내부의 카메라를 통해 드라이버의 일인칭 시점뿐만 아니라, 차체에 달린 회전 카메라로 달리는 차의 안과 밖을 비추며, 마치 직접 서킷을 질주하는 듯한 엄청난 속도감과 스릴, 작은 실수 하나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또한 실제 F1 현장에서 녹음된 현장과 차량의 사운드와 실제 F1 해설자들의 해설 음성으로 생생한 현장감과 박진감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F1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금세 이해하고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듄>, <인터스텔라>, <탑건: 매버릭> 등의 음악 감독인 한스 짐머의 음악과 로제, 에드 시런, 도자 캣 등이 부른 노래들이 더해지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영화 <F1 더 무비> 스틸컷.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에도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는 이러한 실감 나는 연출뿐만 아니라 소니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눈치 보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며 감탄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는 사생활 문제와 서툰 언론 대처 능력을 개선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려는 노력 자체에 관심이 없다. 30년 만에 복귀한 F1에서 보란 듯이 큰 성과를 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거나, 자신을 둘러싼 의심과 조롱의 눈초리에 대해 반박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높은 자리를 차지해 돈과 명예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팀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받아도 거절하고 늘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영화의 스릴 넘치는 레이싱을 따라가던 관객들은 그의 행보를 보며 문득 자신에게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영화 <F1 더 무비> 스틸컷.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다양하다. 우연한 기회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꼼꼼한 계획도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가기도 한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환경에서도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삶의 변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소니는 30년간 겪었던 한심해 보이는 실패와 방황, 체념 속에서 마침내 자기 자신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떠오르는 루키인 조슈아가 소니보다 월등한 체력이나 집중력, 적응력으로도 팀의 승리를 이끌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니는 불행 속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떠나보냈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가려냈다. 그가 만약 사고 없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면 쌓아온 성공과 커리어에 집착하느라 매여 있는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원들조차 소니를 답답해하고 믿지 못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최약체 팀의 승리에 매진하게 만든 것은 결국 그의 지난한 실패들이었다.
소니와 같은 수많은 실패와 스릴 넘치는 큰 성과가 아니더라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은 순간들 역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무엇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지 아직 모르겠더라도 괜찮다. 인생의 레이스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시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니에게는 F1에서의 승리가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고,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여러 제안에도 불구하고 바하 1000에 참가하려던 여정을 다시 떠난다. 소니가 주어진 서킷에 갇혀 빙빙 도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레이스를 펼치듯,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여정을 스스로 이끌어갈 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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