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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뭔가 ‘번쩍’했다면 전두엽이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흑백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 하는 반응과 비슷하다. 우리는 익숙한 게 편하지만 뇌는 낯선 걸 읽을 때 행복해한다. 뇌는 색다르고 낯설고 어려운 것을 읽고 자극을 받아 기쁨을 느끼면 행복함을 도파민을 뿜어내며 표현한다. 이 순간 뇌에서 창의적인 부위인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이게 활성화될수록 사고가 유연해지고 넓어진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순정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는 대사이다. 가벼운 대사인데 마음에 박혀 빠질 줄을 모른다. 이런 일이 시를 읽을 때 자주 일어난다. 시는 낯설고 어색하나, 뇌는 그걸 행복해한다. 시인은 늘 새로운 언어를 궁리한다. 궁리하는 그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사고의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다. 뇌는 시인이 궁리한 활어 같은 언어가 주는 기쁨이 뭔지를 안다.

 

이준관 시인의 시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을 찾아 읽어 보라. 저녁놀이란 단어부터 설렐 것이다. 여기에 “새 떼들도 밟지 않은”이란 표현이 더해지니 저녁놀의 아름다움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저녁놀 + ‘새 떼’와 ‘밟지 않은’이 주는 이미지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읽다가 어려서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대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란 시구가 떠올라 연결하니 번쩍한다.

 

머릿속에서 뭔가 ‘번쩍’했다면 전두엽이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흑백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 하는 반응과 비슷하다. 우리는 익숙한 게 편하지만 뇌는 낯선 걸 읽을 때 행복해한다. 뇌는 색다르고 낯설고 어려운 것을 읽고 자극을 받아 기쁨을 느끼면 행복함을 도파민을 뿜어내며 표현한다. 이 순간 뇌에서 창의적인 부위인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이게 활성화될수록 사고가 유연해지고 넓어진다.

 

 

물론 시를 읽지 않아도 아쉬운 건 없다. 사고의 확장을 모른다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가장 아쉬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실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넣어 주신 ‘독창성’이란 재능이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창성은 이해와 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방식이 왜 효과적인가를 알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걸 완전히 새롭게 사용하는 더 나은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엘렌 쇼에 나와 슈퍼마켓의 물건 가격을 알아맞히는 영상(“Billionaire Bill Gates Guesses Grocery Store Prices”)이 있는데, 조회 수가 미쳤다. 4,111만이 넘었다.1) 억만장자가 즉석 볶음밥(Rice-A-Roni), 세탁 세제(Tide), 치실(Floss), 과자(Totino’s), 파티 음식(Artichoke Dip)의 가격을 추측하는데 묘하게 끌린다. 이게 세상에서 궁리하는 방식이나 시인이 시를 쓰는 방식 같기도 하다.

 

슈퍼마켓 물건을 빌 게이츠와 연결하니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런 시선을 갖고 읽어 보라. “신은 장사다/ 사람을 든다.” 여기서 신은 신발이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찾아낸 특별한 시선, 신발을 바라보는 생각의 시선을 발견한다. 이제껏 신발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아이는 그런 감각의 문을 처음 열었는데 이런 것을 경험하면 남과 차별되는 변별력이 생긴다.

 

이런 변별력을 소수만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아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반드시 시선이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처음엔 그걸 우연이라고 여길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게 ‘이끌림’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주홍 글자』와 기형도의 시 “우리 동네 목사님”을 우연히 읽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짚어볼 때면 그게 성령님의 이끄심임을 느낀다.

 


1) 이 조회 수는 2025년 11월 15일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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