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면…그것도 ‘교회’일까?
기독교인은 매주 꼭 교회에서 모여야 할까. 기존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싶다면, 그 장소는 꼭 ‘교회 건물’이어야만 할까. 다른 곳에서 모여 신앙 고민을 나누는 공동체는 교회라고 할 수 없을까.
청어람ARMC(청어람·박현철 대표)가 2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포럼 두 번째 시간은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상상하는 자리였다. 첫 포럼에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나안 교인’에 대해 고민했다면, 두 번째 시간은 교회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해 보는 시간이었다. 11월 20일 서울 중구 공간새길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소장 지성근 목사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청년 그룹 ‘교회가기싫은사람들의순모임'(교가싫순) 멤버들이 패널로 참석해 자신들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했다.
한 참석자가 비기독교인을 공동체로 어떻게 초대할 수 있는지 묻자 지성근 목사가 한 답변이다. 부산에서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맡고 있는 지 목사는 매주 예배당으로 모이는 교회가 아닌 일상생활 자체가 사역인 교회 공동체 처치M을 실험하고 있다.
처치M은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모인다. ‘M’은 세상으로 보냄받음(Missional)과 함께 한 달에 한 번(Monthly)이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시도는 지성근 목사가 2005년 개척한 함께하는교회에서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교회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한 교인이 공간의 한계로 함께 예배하기 어렵게 되자,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교인의 집에서 교제하며 감동을 느낀 지성근 목사는 교회가 매주 예배당으로 모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지성근 목사는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떠난 교회 난민들, 작은 가정 교회, 가나안 교인들도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교회, 창의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는 느슨한 공동체를 상상했다. 고민 끝에 2018년, 매월 넷째 주에 모이는 처치M을 시작했다. 선교적 관점으로 일상을 살다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이다.
처치M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지성근 목사는 작년부터 40~50년 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한믿음처치M’을 새롭게 시작했다. 이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함께 예배하고 교제한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교인들은 성경 공부를 하고 삶을 나누며 서로 성장하고 있다.
지성근 목사는 새로운 교회를 상상하려면 마태복음 18장 20절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 지금도 뜨거운 상상력으로 여기저기서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두세 사람의 공동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며 새로운 교회를 위한 상상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작은 공동체를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임의 오너(ONer, 먼저 불을 켜는 사람) 김자은 씨가 교가싫순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교가싫순은 저마다 이유로 교회와 거리를 둔 사람들이 공원처럼 마음 편히, 느슨하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동체다. 먼저 강연자로 나선 차수민 씨는 멤버들이 교회와 멀어진 사연을 설명했다.
자은 /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 이후, 이런 슬픈 사건이 있는데 주일에 교인들은 즐겁게 찬양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죽어도 교인들이 이럴 것 같단 생각이 스쳐서, 예배 중간에 뛰쳐나왔어요.
허밍 / 시간이 갈수록 교회 내 시대착오적인 발언들, 혐오와 차별적 말과 행동, 과중한 봉사와 모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서서히 교회와 멀어진 거 같아요. 무엇보다 설교와 나눔의 내용에 내 삶과 고민이 닿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요즘은 교회에 안 다녀요.
수민 / 41세 미혼 여성이에요. 20대 후반부터 청년부인데 그 친구들과 신앙적 고민을 나누는 일이 쉽지 않고 은근히 결혼하지 않는 일을 죄악시하는 교회 분위기가 힘들었어요.
각자의 고민을 안고 모인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교회를 성토하며 위로받았다. 나아가 강연자를 초청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떤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지 공부하기도 했다. 1년 6개월 넘는 시간 동안 세 번의 시즌을 마친 모임은 시즌 4를 준비하고 있다.
차수민 씨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주고 환대하는 교가싫순 모임이 정말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멤버가 모임이 교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저는 사실 우리가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가싫순 모임처럼 신앙에 이렇게 진지한 사람들을 만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건 처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나누는 지금 이 자리가 정말 재미있고 소중하다. 어떤 말을 해도 정죄당할 것 같지 않은 안전한 모임이라는 것 또한 특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교가싫순은 한 번도 제도권 교회처럼 특정 형식과 식순에 맞춰 진행된 적이 없다. 하지만 김자은 씨는 기존의 종교 관습과 신앙 규율의 틀을 거슬렀던 예수님과 제자들을 떠올린다면 교가싫순 또한 교회로 생각하지 않을 이유도, 한정 지을 이유도 없다며 비정형화되고 애매모호한 경계를 지닌 지금의 신앙 공동체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그때 모인 이들과 시간과 (앞으로) 방향을 나누면서 함께 흘러가는 이 모임을 지속하고 싶다. 때로 누군가 불편하게 느끼기도 하고, 대안 없이 제도권 교회를 욕한 모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간 낭비나 친교 모임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느슨하고도 안온하게 표류하는 모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제가 한국교회를 생각하며 아팠던 부분에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교가싫순 발표자들에게 ‘앞으로 제도권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결정이 변할 수 있는지’, ‘교회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있는지’를 물었다. 차수민 씨는 “교회에 여전히 출석하고 싶지만 우리 생각과 가치에 부합하는 교회를 찾기 쉽지 않다”며 “지금은 새로운 교회를 찾을 동력이 남아 있지 않아 머물고 있지만 언제든 좋은 취지의 공동체가 있다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N누림교회 임무환 부목사는 “청년부 사역을 하며 이들과 어떻게 교회를 만들어 갈지 고민 중인데 실마리를 풀어 보고자 참석했다”며 “(새로운 교회에 대한) 고민을 저 혼자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니 안도와 위로가 됐다. 답을 쉽게 찾지 못하더라도 오늘처럼 고민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교회에서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