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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제목이 조금 독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권대웅의 시 “화무십일홍”의 마지막 구절이자 시집 제목이다. 시집은 표지가 민트색이고 얇다. 천천히 읽어도 한 시간이면 읽어 낼 것이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시집엔 반드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한 문장이 있다. 그 딱 한 문장이 “우리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였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세계 3대 과학 저널은 네이처, 사이언스, 셀이다. 여기에 논문을 등재하려면 연구자는 반드시 개념적 진보(conceptual advance)를 제시해야 한다.
아르키메데스 하면 ‘유레카’가 생각난다. 그는 왕으로부터 왕관이 진짜 금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목욕을 하던 중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을 봤고 순간 물체가 잠긴 부피만큼 물이 밀려나는 부력의 원리를 통해서 왕관이 진짜 금으로 만들어졌는지 판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사람들도 이미 부력은 알고 있었다. 이게 이론적 틀이다. 하지만 부력을 이용해 순금을 식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 주는 게 개념적 진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을 보면서 우리는 탁월한 아이디어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기회와 부를 창출하는지를 본다. 그런 지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나 실제론 크고 작은 개념적 진보가 실타래처럼 연결된 결과이다. 그런 진보를 과학이 보여 주나 시도 보여 준다.
이 글 제목이 조금 독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권대웅의 시 “화무십일홍”의 마지막 구절이자 시집 제목이다. 시집은 표지가 민트색이고 얇다. 천천히 읽어도 한 시간이면 읽어 낼 것이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시집엔 반드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한 문장이 있다. 그 딱 한 문장이 “우리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였다.

“우리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 이 표현은 낯설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분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 것이다. 신화는 오래전에 살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모순을 만났을 때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그런 모순을 지금 인공지능이 해결하고 있고 시도 제 몫을 한다.
시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우리가 저마다 마음속에 시집 한 권을 품고 있다면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 한국은 노동 강도가 꽤 높은 나라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사회 곳곳에 배어 있어서 무엇을 하든 빠르고 잘해야 하는데 이게 엄청난 피로감을 가져온다. 술 소비량이 많다는 것은 피로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 피로감을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을 것이다. 운동, 여행, 캠핑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걸 하되 가끔은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어 보자. 시가 어려워 보여도 쉬운 시도 많다. 시 읽기도 러닝과 비슷하다. 쉬운 시를 읽어야 어려운 시도 읽어 낼 수 있다.
고두현 시인은 썼다. “잊지 말라. 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 한때는 다 벽이었다는 걸.” 시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를 읽으면 겸손해진다. 쉽게 열리는 문은 쉽게 닫히고, 들어올 땐 좁지만 나갈 땐 넓은 거란 걸 알려 준다. 우리의 삶도 시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는 게 힘들다면 운동을 시작하고 운동을 시작했다면 시를 읽어 보라.
삶이 던지는 문제에 잘 대처하려면 유연해야 한다. 인간의 조건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으나 그게 표현되는 방식은 바뀐다. AI가 보여 주듯 앞으로 세상은 다중적인 선택과 혼합된 해결책을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경계를 넘어야 한다는 뜻이고 다중 렌즈를 통해 문제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시는 이것을 연습하는 최적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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