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모는 야간 배송…”선두주자 쿠팡이 택배 생태계 교란”
수많은 택배 노동자가 야근 중 사망하면서 야간·새벽 배송이라는 편리함 뒤에 가려진 노동자의 건강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신동식·이상민)과 영등포산업선교회가 12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심야 배송 논쟁에 관한 집담회를 열어 ‘일하다 죽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심야 배송에 대한 단순 찬반을 넘어, 노동자의 건강권과 소비자의 편익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고민하고 정부의 기업의 책임, 기독 시민의 역할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전국 15세 이상 국내 경제 활동 인구 기준으로, 2005년에는 1인당 연간 택배 이용이 5회에 불과했다. 2024년, 이 수치는 약 40배 폭증한 204.3회로 나타났다. 물량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배송 노동자의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2017~2024년 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64명. 코로나19 이전 8건이던 사망 건수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58명으로 급증했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면서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덩달아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 노동이 “과로사뿐만 아니라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이라며 “몸이 (야간 노동에)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라, 회복되지 못한 생체 리듬의 파괴가 누적되는 과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심야 배송이 택배 노동자 과로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심야 배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반면 이미 많은 소비자가 이용해 생활의 일부가 된 만큼 이를 없애면 많은 불편이 초래되고, 타 직역도 심야 노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배송만 제한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도 대치한다.
이날 집담회에서 발표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 연구원 우상범 박사는 현실적으로 야간 배송을 일부 허용하면서, 유연성 있게 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야간 배송을 금지해야 하는 게 맞지만 0~5시까지 택배 노동자 인력을 충원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현실적으로는 품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신선 식품, 채소, 유제품에 한해서만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고객에게 야간 배송 할증료를 부과해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 향상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범 박사는 소비자의 의식 변화와 사회적 협약 이행 의무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의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워라밸도 중요하다. 나의 편리를 위해 남을 희생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쿠팡의 고용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 박사는 “쿠팡이 택배업 생태계를 교란시켰다”고 진단했다. 쿠팡의 2024년 매출이 41조를 돌파하고 이용자 수 247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고공 행진을 거듭했지만, 다른 택배사·유통사들와 달리 ‘택배사’로 분류되지 않아 법적 규제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택배사들은 정부와 노사가 함께 대화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가 있어 주 60시간 초과 노동 금지 등의 협약을 만들었으나 쿠팡은 여기에서 빠져 있다.
우상범 박사는 쿠팡이 노동자 산재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면제하기 위한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쿠팡 택배 노동자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 7500여 명, 비정규직(특수고용직) 2만 3000여 명으로 이뤄져 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10%만 정규직이고, 일용직 40%, 계약직 50% 등 90%가 비정규직이다. 때문에 쿠팡은 인건비 절약은 물론이고 비교적 자유롭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쿠팡의 성공에 따라 다른 회사들도 야간 및 주 7일 배송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라, 노동자들의 환경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우 박사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이번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쿠팡을 포함해 전국 모든 택배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총무는 11월 23일 ‘속도보다 생명의 사회로!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 대행진에 참석해 들었던 발언을 언급하면서 “기업이나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고발하고 악행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회적 작업”이라고 했다. “시편 141편 5절에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림절 이 시기, 불의를 고발하고 개선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손은정 총무는 쿠팡이 “전쟁 같은 밤일을 부활시켰다”고 했다.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경제개발 계획에 따른 압축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을 전쟁터의 군인처럼 내몰았다. 12시간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주말에는 18시간의 곱빼기 노동이 횡행했다. 그 당시의 야간 노동이 지금 쿠팡 물류 센터에서 똑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은정 총무는 “쿠팡의 미션은 모든 사람 입에서 ‘쿠팡 없이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신앙 고백의 패러디처럼 들린다. 이런 목표하에서는 몇 명쯤 쓰러지고 죽는 것을 감수하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2월 17일 과로사에 이어 개인 정보 유출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쿠팡의 국회 청문회가 열린다. 하지만 김범석 대표는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하지만, 쿠팡은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김 대표 역시 미국 시민권자이며, 2021년 한국 법인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을 사임해 출석 의무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손은정 총무는 김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회적 가치를 망각하고 돈 벌기에 급급했던 점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본부 이창호 본부장은 그리스도인이자 시민으로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심야 배송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산업 평균보다 9배 높은 산재율을 겪는 등 가장 큰 부담을 지고 있다. 돈과 효율이라는 현실과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더 빠르고 더 편하기 위해 한 영혼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지, 인간적인지, 안전한지 따져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호 본부장은 기윤실에서 진행하는 자발적 불편 운동과 쿠팡 과로로 세상을 떠난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 씨 연대 활동을 소개하면서 “기독 시민이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지키도록 끝까지 감시해야 한다. 심야 배송 멈춤이라는 거룩한 불편을 선택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