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회 발행되는 <좋은나무>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무료),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권서는‘복음 궤짝’이라는 상자 안에 성경책 수백 권을 넣고 당나귀 등 양쪽으로 싣고 마을과 장마당을 돌아다닌 장돌뱅이였다. 하루에 30권을 팔면 잘 팔았다. 가난한 시골이지만 책을 무료로 주면 종이로 쓰거나 읽지 않기 때문에 책값으로 쌀이나 달걀을 받아서 나귀에 실었다. 육의 양식으로 영혼의 양식을 사던 시절이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가난한 시골 아낙들도 쪽복음으로 글자를 깨치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새해는 병오년(丙午年) 말띠의 해다. 신문마다 신년 운세나 말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사실 60갑자와 띠는 입춘에 바뀌므로 2월 4일부터 병오년이다. 병오년은 60간지 중에서 가장 뜨거운 해이므로, 기후 이상으로 사나운 열기가 한반도를 덮칠지도 모르니 조심할 일이다.

 

성경의 말과 나귀

 

성경에서 말(馬)은 제국의 힘(신 17:16)과 전쟁과 부를 상징하고, 하나님 대신 그것을 믿는 인간의 교만을 상징한다. 출애굽 때 파라오의 군대는 말을 앞세워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을 추격했으나 모두 홍해에 수장되었다. 이는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력함을 상징한다. 신약에서도 말과 마차는 로마 제국의 상징, 곧 군사력과 전쟁과 정복과 사치를 상징한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임할 재난을 네 마리의 말로 상징하여, 정복, 전쟁, 기근, 감염병과 죽음의 심판을 나타내는데, 붉은 말(赤馬)은 전쟁과 유혈사태를 상징한다. 반면 종말에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승리자로 다시 오시는데(계 19:11), 이때도 말은 평화가 아닌 최후의 승리와 심판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귀는 말과 대조되는 평화와 봉사와 겸손의 상징이다. 구약에서 왕이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이동하면 백성들은 평화의 시기임을 알았다. 스가랴 9:9에서 메시아가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리니”라고 예언한 것은 그가 무력이 아닌 평화로 통치할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마(軍馬) 대신 어린 나귀를 선택했다. 세상의 정복자들과는 다른 섬기는 왕이자 화평의 도구로 오셨음을 몸소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다.

 

한국 교회의 나귀와 일제의 군마(軍馬)

 

초대 한국 교회에서 선교사들이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갈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나귀였다. <사진 1>과 <사진 2>에서 보듯이 선교사와 함께 가는 나귀는 전도 문서와 쪽복음서가 든 ‘복음 궤짝’을 지거나, 조사를 태우거나, 다른 일용품을 지고 따라갔다.

 

또한 초대 교회에서 전도의 숨은 일꾼인 권서(勸書, colporteur)에게 당나귀는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요 말벗이었다. 성서공회에 고용된 권서는 교인이 없는 마을과 장을 돌아다니면서 마태복음, 요한복음 등 쪽복음을 파는 매서인(賣書人) 행상이었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봄가을에 2-3개월 장기 순회 여행을 하면서 값싼 성경을 팔고 전도했다. 산골이나 시골길을 걸어 다니며 복음서를 반포하며, 한글을 가르치면서 전도했다. 전도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소총병과 같은 전도인, 그들의 아름다운 발 곁에 짐꾼인 당나귀가 있었다.

 

권서는‘복음 궤짝’이라는 상자 안에 성경책 수백 권을 넣고 당나귀 등 양쪽으로 싣고 마을과 장마당을 돌아다닌 장돌뱅이였다. 하루에 30권을 팔면 잘 팔았다. 가난한 시골이지만 책을 무료로 주면 종이로 쓰거나 읽지 않기 때문에 책값으로 쌀이나 달걀을 받아서 나귀에 실었다. 육의 양식으로 영혼의 양식을 사던 시절이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가난한 시골 아낙들도 쪽복음으로 글자를 깨치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사진 1> 성경 짐을 실은 아펜젤러의 권서와 당나귀, 1887년 [OAK]

정동의 사택을 떠나 평양으로 갈 때 찍었다.

 

<사진 2> 언더우드 가족의 소래 전도 여행, 1898년 [OAK]

운송 수단은 가마꾼의 가마, 당나귀의 등, 황소가 끄는 수레였다.

 

이런 나귀와 대비되는 장면이 1905년 군마가 끄는 마차를 탄 이토오 통감의 행렬이 남대문 정거장을 떠나 봉환문으로 가는 장면이다. 러일 전쟁 승리 후 한국을 반식민지로 점령한 일본 제국을 상징하는 것이 그의 기마(騎馬)행렬이었다. 권서들은 복음 궤짝을 나르고, 일본군은 기관 단총과 장총으로 무장한 채 시가를 행군했다.

 

<사진 3> 이토 통감의 한국 부임 환영식, 남대문 정거장, 1905년 11월 [OAK]

 

<사진 4> 순종 즉위식에 가는 이토 통감 행렬, 대안문 앞, 1907년 8월 27일[OAK]

 

1907-1912년 권서 김성호에게는 함께 일하던 당나귀가 있었다. 힘든 고갯길도 늘 쾌활하게 잘 넘어가 주었기에 ‘종달새’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 권서의 판매 실적만큼이나 유명한 당나귀가 되었다. ‘종달새’가 죽자 애도하는 글을 썼고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00년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예수님을 태웠던 새끼 당나귀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한 나귀였다.

 

권서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민중의 가난과 고난도 보았지만, 그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종교적 열망과 나라의 독립을 바라는 민족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중 다수가 신학생이 되고 목사가 되어 3.1운동에 참여했다. 해외에 나가 독립운동을 했다. 다 나귀의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고 나라를 섬겼다.

 

새해는 말 대신 나귀

 

교회 안에도 말(馬)처럼 힘 있고 화려하지 않지만 수수한 당나귀(donkey) 같이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들이 있다. 때로 하나님을 위해서 ‘바보’(ass)가 되기도 하지만 속으론 종달새의 노래가 있다. 일용할 양식을 먹이시는 ‘주인의 구유를 아는’(사 1:3) 그들이야말로 교회의 열쇠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당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과 같은 교만한 자를 깨우치시고(민 22:28; 벧후 2:16), 그들을 사용하여 천국의 문을 여신다. 새해 한국 교회는 말을 타고 권력과 재물을 탐할 것인가? 당나귀를 끌며 복음을 전할 것인가? 선택할 때이다. 말(言) 대신 겸손히 섬기는(事) 한 해를 만들자.

 

* <좋은나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시하시려면 저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02-794-6200)으로 연락해 주세요.

* 게시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표기하셔야합니다.
(예시)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https://cemk.org/26627/ (전재 글의 글의 주소 표시)

<좋은나무>글이 유익하셨나요?  

발간되는 글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시려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여 ‘친구추가’를 해주시고

지인에게 ‘공유’하여 기윤실 <좋은나무>를 소개해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좋은나무> 구독하기

 <좋은나무> 뉴스레터 구독하기

<좋은나무>에 문의·제안하기

문의나 제안, 글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시면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위원과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_

 


관련 글들

2025.12.22

로제타 셔우드 홀의 엽서(손승호)

자세히 보기
2025.12.08

한국 개신교회는 왜 교회력을 활용하지 않아 왔는가?(김형락)

자세히 보기
2025.12.03

장로, 어르신이 필요했던 이유(기민석)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