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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제가 남궁억 선생을 가만둘 리가 없었습니다. 1933년 일제는 무궁화 심기 운동이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고 치안을 악화시킨다면서 남궁억 선생은 물론 모곡학교의 교직원들, 교회 목사님 등을 잡아들이고 무궁화 묘목을 태워버립니다. 이때 태운 묘목이 한 8만 주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 남궁억 선생이 전국에 보급한 무궁화는 적어도 몇십만 주에 이르렀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무궁화 사건입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나라꽃 무궁화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무궁화는 법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우리나라 꽃입니다. 법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의아해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라꽃을 법으로 정한 나라보다 관습으로 정한 나라가 더 많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그 나라 사람들이 사랑했던 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법으로 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86년에 법으로 장미를 미연방 국화로 정했죠. 특이하게도 한 가지 장미 품종이 아니라 장미 전체를 국화로 정했는데, 미국의 다양성을 반영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꽃입니다.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신라 시대의 외교 문헌에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 나라)이라고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그 말이 처음 노랫말에 쓰인 것은 1800년대 말 배재학당 등에서 부르던 “무궁화가”라는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에서도 왕실은 오얏꽃(梨花)을 왕실 상징으로 사용했지만, 민중들은 무궁화를 우리나라, 혹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무궁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조선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일제가 깨닫고 탄압하면서, 무궁화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완전히 나라꽃으로 각인됩니다. 일제가 무궁화를 탄압했던 대표적인 사건이 남궁억 선생이 연루된 ‘무궁화 사건’입니다.

 

한서 남궁억 선생

 

남궁억(南宮檍, 1863.12.27.-1939.4.5.) 선생은 다양한 면면을 지닌 분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계몽 운동가와 교육자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시인이기도 하고 작곡‧작사가, 저술가,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작곡한 곡이 한 100편 된다고 하는데요. 그중에 기독교인들에게 제일 유명한 것은 찬송가에도 수록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입니다. 이래저래 이루신 일이 참 많으시죠. 보통 ‘한서 남궁억’이라고 많이 부르는데요. 한서(翰西)는 남궁억 선생의 호입니다.

 

선생은 조선 말과 대한제국기에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고종의 통역관이었다가, 내무부 토목국장을 맡아서 탑골공원 공사를 감독하고, 서울의 도로를 정비하는 등의 일을 하기도 했죠. 공무원으로 잘 지내던 선생이 관직을 내려놓게 된 것은 을사늑약 때문입니다. 남궁억 선생의 사직은 그러니까 원래는 망할 리 없는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랄까요. 나라가 그렇게 기울어 버리니 남궁억 선생은 공무원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계몽과 교육에 헌신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907년에는 동지들과 애국 계몽 운동을 위해 대한협회(大韓協會)를 창립하고 회장이 됩니다. 이듬해에는 관동학회(關東學會)를 창립하고 교육 잡지 「교육 월보」를 발행합니다. 정말 에너지가 많은 분입니다. 그러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으로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하자 교육 현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배화학당(培花學堂) 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무궁화 지도’ 도안을 만들어서 배화학당 학생들이 자수를 놓게 하죠. 애국 계몽 운동에 전념하다가 건강을 잃은 선생은 1918년 홍천으로 낙향을 하는데요. 거기서도 쉬지 않습니다. 1919년에 모곡학교(牟谷學校)를 설립하고 거기서 무궁화를 키우고 전국에 보급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무궁화 심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남궁억 선생은 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에너지를 가진 분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남궁억 선생을 가만둘 리가 없었습니다. 1933년 일제는 무궁화 심기 운동이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고 치안을 악화시킨다면서 남궁억 선생은 물론 모곡학교의 교직원들, 교회 목사님 등을 잡아들이고 무궁화 묘목을 태워버립니다. 이때 태운 묘목이 한 8만 주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1933년에 모곡학교 학생 실습지에 그 정도의 무궁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모곡학교를 설립한 이래 남궁억 선생이 전국에 보급한 무궁화는 적어도 몇십만 주에 이르렀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무궁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조사하던 일제는 남궁억 선생을 비롯한 홍천의 감리교인들이 비밀 결사 ‘십자당’(十字黨)을 만들어서 박애, 평등, 평화 등의 가치에 입각한 ‘공존공영의 지상 천국 건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십자당의 기독교 정신은 사회주의와도 유사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일제 입장에서는 꼴도 보기 싫은 두 개의 사상이 접붙은, 불온사상의 끝판왕이었을 겁니다. 결국 사건은 더욱 크게 확대되어 많은 기독교인이 체포되었고, 십자당의 주동자였던 남궁억 선생은 옥고를 겪게 됩니다. 수감 생활 중이던 선생은 노령임이 참작되어 1935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1939년 돌아가십니다. 안타깝습니다.

 

선생이 하신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홍천에 가시면 무궁화 마을과 한서 남궁억 기념관이 있습니다.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무궁화 한반도 지도

 

오늘 보여드리는 지도가 남궁억 선생이 도안한 무궁화 지도입니다. 자수를 누가 놓았는지, 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남궁억 선생의 도안이 원체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무궁화 지도는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여러 박물관에서 수집해서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문화관도 홍승표‧홍이표 목사님의 기증을 받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도안을 살펴보면, 무궁화의 가지로 한반도 형태를 잡고 있고, 꽃 13송이로 전국 13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13도는 1896년에 시행된 조선의 지방 제도를 따른 것입니다. 8개의 도(경기, 충청, 전라, 경상, 황해, 평안, 강원, 함경) 중에 남부의 3개(충청, 전라, 경상), 북부의 2개(평안, 함경) 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모두 13도입니다. 지금의 행정구역 편제와는 다르지만, 북한의 변화가 큰 반면 남한은 큰 틀이 유지되고 있다 보니 이 지도에 그려진 한반도를 훨씬 익숙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와 울릉도는 무궁화나무의 잎사귀로 표현했습니다. 남해와 동해의 영토도 신경을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도가 없는 것이 좀 아쉬울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일본이 트집을 잡는 곳이 그곳이니까요. 하지만 울릉도는 표시되어 있습니다. 독도는 늘 한반도의 일부였고 남궁억 선생이 이 지도를 도안할 당시 독도는 울릉도의 어민들도 단지 울릉도의 부속 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인식이 미미했었으니까요.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암튼 남궁억 선생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궁화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무궁화에 빗대어 우리 민족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 독립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는 한국 기독교의 애국 애족을 잘 보여 주는 동시에 무궁화가 지금 한국의 나라꽃이 되어 있는 것에 한국 기독교의 영향도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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