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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앱이나 새로운 제품에 관심이 가다가도 설치나 작동법이 복잡해 보여 주저한다. 그래도 내게 위안이 되는 건, 페이스북, 블로그, 드롭박스, 클라우드 같은 새로운 디지털 언어를 생존을 위해 익혀온 일이다. 그럭저럭 디지털 까막눈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요즘은 디지털 겁쟁이가 되어 움츠린 채로 살게 될까 봐 겁이 난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며칠 전 컴퓨터로 자료를 찾는데 업데이트 알림창이 떴다. 안내에 따라 업데이트를 진행한 후 ‘업그레이드 후 계속’을 선택하고 잠시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컴퓨터는 비밀번호조차 입력되지 않는 먹통이었다. 마침, 쓰고 있던 글 저장도 안 했기에 나는 난감했다. 중요한 순간에 이런 일로 발목이 잡힌다. 컴퓨터는 나의 내밀한 친구이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편을 촉발하는 빌런이기도 하다.

 

대학 병원의 키오스크 앞에서도 이런 막막함을 경험한다. 넓은 로비에서 기계 조작에 서툴러 쩔쩔매는 어르신들을 자주 본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도움을 청해도, 대부분은 번호표부터 뽑으라며 키오스크를 가리킨다. 진료 후 바코드를 인식시켜 처방전 번호표를 받는 과정 역시 기계에 서툰 이들에겐 복잡한 절차다.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

 

프랑스 학자이자 작가 이자벨 드 크루티브롱이 쓴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시작을 여는 말이다. 이런 여름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업데이트나 키오스크가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Unsplash

 

뭐라도 하려면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회원 가입은 필수이고 이용할 때마다 로그인해야 한다. 매번 비번 기억하는 것도 번거로운데 난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킹으로 개인 정보가 노출되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받으면, 마음이 위축된다. 비번 변경도 쉽지 않다. 자녀들은 멀리 살고 문제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검색으로 해결법을 찾더라도 혹시 설정을 잘못 건드려 상황이 나빠질까 두려움이 앞선다.

 

근사한 앱이나 새로운 제품에 관심이 가다가도 설치나 작동법이 복잡해 보여 주저한다. 그래도 내게 위안이 되는 건, 페이스북, 블로그, 드롭박스, 클라우드 같은 새로운 디지털 언어를 생존을 위해 익혀온 일이다. 그럭저럭 디지털 까막눈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요즘은 디지털 겁쟁이가 되어 움츠린 채로 살게 될까 봐 겁이 난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있다. 소설 『세월』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DVD 재생기로, 디지털카메라로, MP3로, ADSL로, 평면 화면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쉬지 않고 넘어갔다. 더는 넘어가지 않는 것, 그건 곧 늙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삶의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이가 든 것이다. 그 속도를 늦추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 안에 젊음이 머물 시간을 늘려 주어야 한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죽음이란 주제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지만, 이 경우에도 조건이 따라붙는다. 내 안의 젊음이 완전히 죽지 않았어야 그렇게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방에는 책 대신 약 봉투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제 좀 늦긴 했어도 내 안에 젊음이, 즉 여름 햇살이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사람은 이처럼 낯선 상황에 직면할 때 비로소 기존에 가졌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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