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함흥읍내교회(신창리교회) 시작과 1897년 핍박을 견디다.

120년 전 길에서 사람들이 예수교인을 보면 “예수 온다” “예수 지나간다”고 말해

1927년에 간행된 『조선예수교장로회 史記』를 보면 함경도 첫 교회인 함흥읍교회가 1896년에 설립된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현대어로 옮긴다.

“[1896년 8월에] 함흥읍내교회가 성립하다. 일찍이 선교사 소안론[William L. Swallen)과 조사 전군보 이기풍이 본군에 순행하여 읍촌에 전도하는데, 이 때는 군인 외에 단발한 자가 별로 없고 군인은 선달(先達)이라 통칭하는데, 소 목사는 단발하였으므로 이름은 알지 못하고 다만 소선달이라 호칭하더라. 하루는 만세교 근처에서 전도하는데 한 부인을 만나니, 이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자라. 도를 듣고 즉시 믿어 <성경문답>이란 소책자를 사서 받아, 그 집에 즉시 돌아가서 그 남편 신창희에게 전도하고, 신창희는 그 친구 진종 장홍술에게 전도하여 믿고 따름으로 점차 교회가 설립되었으니, 함흥 신 부인은 전일 빌립보 성 루디아에 비길 수 있는 사람이라.”

 

유럽에서 첫 기독교인이 된 마게도니아 빌립보 성의 루디아(행 16:9~15)처럼, 함경도 함흥의 첫 신자는 신창희(申昌熙)씨 부인이었다. 역사를 바꾸는 인물은 의외로 여성이 많다. 그녀는 성령의 감화를 받아 복음을 즉시 받아들일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선교사나 조사들이 전도하고 소책자를 팔고 성경을 반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온 배후에는,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먼저 활동하신 성령이 계셨다. 굶주린 아이가 밥을 구하듯,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심령은 옥토처럼 준비되어 있었다.

 

1897년 3월 스왈른이 함흥을 두 번째 방문해 보니 교인이 1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진지했고 “하나님과 죄와 죄의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놀라운 체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겸손했고 문자 그대로 복음 외에는 말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6월에는 더 많은 이들이 교회에 찾아왔다.

그러자 교회에 조직적인 핍박이 다가왔다. 함흥 감사가 “외국 종교의 탈을 쓴 불법의 무리”인 예수교인들을 체포하여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포졸들에게 모든 기독교인을 체포하고, 집안의 모든 기독교 서적들을 몰수하고, 교인들은 배교하라는 명이었다. 그러나 교인들은 감사의 명을 거부하고 무시했다. 명령이 두 번 연기되면서 협박의 수위는 높아졌다. 교인들은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켰으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안하게 지냈다. 곧 함흥에서 예수교인을 추방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람들은 점점 대담하게 ‘예수쟁이’들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다른 욕은 싫어했으나, 안디옥에서 초대 교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며 욕했던 것처럼(행 11:26), 자신들을 ‘예수쟁이’로 욕하는 말은 기쁘게 들었다.

 

사람들이 길에서 예수교인을 보면 그들은 “예수 온다.” “예수 지나간다.”라고 말했다.

아, 우리가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안에 예수가 보이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을까!

 

1898년 봄 스왈른 목사가 세 번째 함흥을 방문했을 때 들은 말이다. 그때 예수교인 추방령이 시행되기 직전이었고, 일부 교인들은 옥에 갇혀 있었다. 스왈른은 선교회의 정교분리와 소극적 개입 정책에 따라, 천주교 신부들처럼 교인의 소송을 돕기 위해 관아의 법정에 가는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았으나, 함흥 교인의 경우는 종교적 자유의 문제요 교인들을 도와줄 자가 없었으므로, 감사를 직접 찾아가서 항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판단했다. 감사는 소 목사를 정중히 대접했고 핍박은 즉시 중지되었다. 감사는 포도대장을 불러 예수교인을 석방하고 도시를 떠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일렀다. 양반 유지들에게는 예수교인의 예배에 간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감사의 명령은 바로 퍼졌다. “진실로 사람의 분노는 주님의 영광을 더할 뿐이다.”(시 76;10)

 

1898년 9월 스왈른이 네 번째 함흥을 방문했을 때, 20명의 새 신자가 신앙을 고백했다.

 

“그들은 귀신 숭배를 버렸고 주일을 성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쁘게 전도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물론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며, 함흥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증인을 부르고 계신다.”

 

이상은 1898년 10월 스왈른이 쓴 개인 연례보고서 함흥 앞부분을 요약·번역한 것이다. 비록 종교개혁의 한 원리가 “오직 성경만으로”이지만, 지난 2,000년간 하나님께서 일하신 이야기는 교회사를 공부해야 알 수 있고, 240년 한반도에서 일하신 놀라운 일은 한국교회사 자료를 읽고 정리해야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전체 이야기의 일부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현재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전체 이야기를 보아야 한다. 어디서 왔는지를 알면 어디로 가는지도 보일 것이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고정되어 있는 소망의 공간이다. 과거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 인식과 해석으로 바꿀 수 있는 믿음의 공간이다. 어제의 잘못을 바꾸는 회개를 통해, 오늘 사랑의 삶을 연습하면, 내일의 문이 연릴 것이다. 교만, 우상숭배, 거짓 증언, 표절, 횡령, 세습, 간음, 성범죄 등 온갖 범죄를 먹고 마시며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한국 교회, 주님의 거룩한 교회가 창녀처럼 욕을 먹고 있다. 화려한 하드웨어를 자랑하지만 이미 목사 소프트웨어, 장로 앱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시스템이 고장이 난 지 오래되었다. 어디서 치유 백신을 구해서 병든 신학교의 바이러스, 병든 당회와 노회와 총회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것인가? 과거 역사의 창고에 숨겨져 있는 백신의 원천 자료를 교회에 투여하는 방법이 한 해결책이다. 과거 이야기의 주인공 속에 일하신 성령의 능력을 채굴하여 오늘 그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예수쟁이’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향해 외칠 것이다. 저기 “예수가 온다.” 저기 “예수가 지나간다.”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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