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시작이 있는 한, 우리는 우주의 창조자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주가 실제로 완전히 자급자족하고 경계나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자가 존재할 자리는 어디 있을까? (『시간의 역사』중)”
성영은(서울대학교 교수)
지난 3월 14일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세상을 떠났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호킹은 루게릭 병으로 인해 점점 마비되어 가는 뒤틀린 몸으로 휠체어에 앉아 음성 합성기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하는 힘든 삶을 살았으나 그런 중에도 활발한 과학 활동을 하여 온 인류를 감동시킨 인물이다. 살아서는 뉴턴과 같은 캠브리지 대학교의 루카스 석좌교수로 있었고, 죽어서는 영국 황실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뉴턴 그리고 찰스 다윈과 나란히 묻히게 된 데서도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호킹의 과학적 업적은 빅뱅의 특이점, 블랙홀 복사(증발), 빅뱅의 무경계, 양자 중력 등 양자 우주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우주가 특이점이라는 시공간의 한 점에서 시작한다는 주장으로 우주가 138억년 전 소위 대폭발로 시작했다는 빅뱅 이론을 지지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양자역학(원자와 같은 아주 작은 세계를 다루는 과학)을 도입함으로써 기존에 했던 이 주장을 수정하였고, 빅뱅이 시작된 시작점이 따로 없다는 무경계 이론을 펼치는 데로 나아간다. 또 별이 수명을 다하여 그 크기가 극도로 작아지면 중력이 너무 커져 빛조차도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 이론에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적용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기존 이론과는 달리 물질이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새로운 결과를 발표한다. 호킹은 중력이나 우주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다루던 기존의 우주론에, 빅뱅, 블랙홀과 같은 아주 작은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더해서 양자 중력 나아가 양자 우주론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아직 그 실체에 대한 직접적 증거조차 분명치 않은 빅뱅과 블랙홀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호킹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용어들과 내용들은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였는지 호킹은 『시간의 역사』와 같은 여러 대중서적을 써서 일반인들도 그의 과학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시간의 역사』에는 ‘빅뱅에서 블랙홀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제목에다 불치병에 걸린 호킹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야 할 것은 대중을 위해 펴낸 이 책조차도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사고서 가장 많이 읽지 않은 책”이라는 악명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그 책의 내용을 일반인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적어도 그 실체가 과학에서조차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빅뱅이나 블랙홀 같은 용어들을 사람들 뇌리 속에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제 그의 대단한 명성과 인기가 그의 과학적 업적 때문이었는지 혹은 불구의 몸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알려졌던 우주에 관한 거대한 이론들을 펼쳐낸 그의 인간승리에 대한 환호인지 한번쯤 따져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호킹의 빅뱅이나 블랙홀의 어려운 과학이론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나 종교적 해석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호킹은 어려운 자기 과학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종교적 신념 때문인지 과학적 설명 사이사이에 과학을 넘어선 종교에 관한 언급을 많이 했다. 특히 기독교의 창조나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언급들이 많다. 자신의 빅뱅 연구에 관해 말하는 중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난 일화를 소개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교황이 자기를 만난 자리에서 빅뱅 이후 우주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빅뱅 자체는 창조의 순간이며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탐구하지 말 것을 권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일화에서 호킹은 교황이 말하는 창조의 순간이 바로 자신의 이론에서 말하는 ‘특이점’이라는 설명을 하려했는지 모르지만, 교황 앞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갈릴레이와 같은 심정을 느꼈다고 언급함으로써 기독교를 비웃고 있다. 그러나 이후 그는 ‘특이점’이라는 자신의 이론이 창조를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이 싫었는지 그 이론을 수정한 빅뱅의 무경계 이론으로 나아간다. 무경계이론에서 그는 마침내 창조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주에 시작이 있는 한, 우리는 우주의 창조자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주가 실제로 완전히 자급자족하고 경계나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자가 존재할 자리는 어디 있을까? (『시간의 역사』)”
호킹은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의 과학을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과학을 잘 모르거나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과학자라도 당연히 창조나 하나님이 없다는 호킹의 언급이 마치 과학으로부터 검증된 것인 양 오해할 소지가 많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나 하나님의 존재는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킹도 과학 이론은 단지 우리의 관측을 서술하기 위해 만든 수학적 모형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점에서 호킹의 과학과 그의 종교적 신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호킹은 과학으로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중력과 같은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무로부터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고 창조할 것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God)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 (『위대한 설계』)” 이런 주장은 과학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고 그의 신념일 뿐이다. 과학으로 중력과 같은 과학법칙의 기원을 밝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킹을 말할 때 그의 과학이론을 이해하되 그것이 가지는 한계와 과학을 가장한 신념을 구분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용한 ‘빅뱅’ 같은 용어 몇 개를 가지고 그의 이론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것처럼 과민 반응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것 역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과학 자체가 아니다. 악한 자가 과학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과학은 선용하면 얼마든지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존재나 창조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신자는 얼마든지 호킹의 시간과 공간, 우주, 블랙홀과 같은 과학을 논하고, 창조의 터 위에서 그 이론들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적극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 즉 새로운 과학이론들이 나올 때 적극적인 태도로 그 이론들을 논하면서도 하나님의 깊고 넓은 창조의 원리를 다 알 수 없는 우리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 창조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론이라 할지라도 우선은 그 이론들을 잘 이해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꼼꼼히 따져보는 공정한 태도가 과학의 영역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신자의 바른 태도일 것이다. 교회나 신자들이 그런 태도를 가져야 과학을 공부하는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과학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과학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악한 자의 궤계를 물리치는 믿음의 용사들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교회나 신자들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