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본 글에 나타난 통계자료는 기윤실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하여 2017년 1월 20~21일 조사한 결과입니다.
공적 기관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도는 아주 낮다.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10% 이하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회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신뢰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 가치가 무너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의 토대가 무너진 것이다. 아래의 문항과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님께서 다음 중 가장 신뢰하는 기관은 무엇입니까?”(하나만)
① 종교기관 ② 정부
③ 국회 ④ 사법부
⑤ 언론기관 ⑥ 시민단체
⑦ 기업 ⑧ 대학
⑨ 기타
1. 일반국민들에게 우리나라의 주요 기관들을 제시하고 가장 신뢰하는 기관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시민단체’가 29.9%로 1순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언론기관’, ‘종교기관’, ‘대학’, ‘사법부’ 등의 순을 보였다.
2. 지난 2013년 조사 대비 대체로 유사한 비율과 순위를 보이고 있으며, 종교기관의 경우 10%에 조금 못 미치는 비율로 언론기관과 비슷하게 2위권을 유지했다.
3. ‘종교기관’에 대한 신뢰 응답은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 주부 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으며, 종교별로는 기독교(29.7%) 및 가톨릭(19.6%)에서 종교기관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무엇보다 시민단체를 신뢰한다고 대답하고 있다. 아마 응답자들은 ‘신뢰’라는 부분을 ‘정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에서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은 시민단체라고 본 것이다. 이에 정치권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의 인재를 모셔올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또는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인력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기성체제에 쓴 소리를 하고, 개혁을 외치는 유일한 집단인 시민단체의 대표적 인물들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결국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민주화를 바라던 시민운동에서는 그래도 ‘원로’들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 시민운동을 거쳐서 이 사회에 ‘원로’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들은 드문 것 같다. 그만큼 이 사회의 중요한 자산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기관은 언론기관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결국 10%를 넘기지는 못했다. 그나마 순위가 3위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수준이다. 그러나 종교기관이 이렇게 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도덕적 보루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종교기관은 사회에서 약한 자들의 도피성이요 변호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종교기관은 그러한 일을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순결성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 살던 시절 성직자들을 보면 그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공기관에서 성직자들의 보증이나 추천서는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을 받는다. 아마 그것은 교회가 받는 높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성직자들의 모습이 이 정도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최근에 개신교의 불법 세습 문제나 불교의 총무원장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신뢰회복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심층 르포’면에 종교기관이나 성직자에 대한 보도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이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할 수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국회의 경우는 거의 신뢰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조사의 표준오차가 3.5%인데 0.8%라고 하는 것은 실수 수준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거기에 정부나 사법부도 부끄러운 수준으로 응답이 나왔으니 돌아볼 바가 크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는데 이는 조사 시기가 2017년 1월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재판이 진행되던 때이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법부는 소폭의 하향을 보였지만 최근 밝혀진 사법부의 문제들을 고려한다면 이도 높게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고 정교분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도 그 이유이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부터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고, 탄압과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신학적 배경으로, 더 나아가서는 사상의 배경으로 작용을 했다. 이것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에서 비슷하게 작동을 하고 권위주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도 갖춰지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기관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공기관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절대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