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해방운동]
‘청년부채’ 인터뷰
글_최진호 간사
기윤실에서 청년부채ZERO 캠페인-5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었으며, 그럼에도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빚에 대한 극복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청년을 만나서 어떻게 부채를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지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기윤실 :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참가자 : 신학생이고, 부채상환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장기 휴학 중에 있습니다. 주중에는 학습지 교사로, 주말에는 교회 사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윤실 : 어떻게 부채를 가지게 되었고, 현재 부채 상황은 어떻게 되나요?
참가자 : 먼저는 학자금 대출이 있고,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제 명의로 된 00저축은행 카드를 사용하다가 장기간 연체를 하게 된것입니다. 현재 이자가 세 배 이상 불어났고 다 부채가 되었습니다. 통장은 압류상태에 있으며(연체 된지는 5년이 넘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워크아웃 및 회생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다른 절차들을 찾아보다가 기윤실에서 하는 청년부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500여만원을 빌려 사용했고, 어머니께서 돈을 빌리실 때는 저도 “이 정도는 갚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갚아갔지만 점차 이자도 못 낼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지셨습니다. 언젠가 이자만 감면해주면 원금 500만원 정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쪽에서 이자도 갚아야 된다고 해서 시기가 미뤄졌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생활도 더 어려워지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500만원 이상으로 불어있고, 이자는 더 늘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윤실 :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그런 상황들이 와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 : 그 당시에는 힘든 것을 몰랐습니다. 아버지도 계셨고 어머니도 지금보다는 건강하셔서 어려도 괜찮았었는데, 지금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삶의 무게를 알려고 노력했어도 몰랐다면 이제는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고, 미성년자인 동생과 어머니도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부채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장 통장이 압류가 되고, 얼마를 갚아야 된다는 통지서들이 오니까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제3금융권에서 통장을 만들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혜롭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 때 알았더라면 또는 그 때 누가 알려줬더라면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윤실 : 청년부채제로 캠페인하면서 도움이 되었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참가자 : 재무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과 돈에 쫓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메꾸면서 살지라는 생각에 쫓기면서 살았습니다. 돈을 쓰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비싼 음식을 먹으며 안되나?’ 라는 죄책감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사실 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 돈으로 조금 저렴한 음식을 두 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출 항목 별로 파악하고 예산에 맞게 쓰니까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회생절차를 밟아서 착실하게 빚을 다 갚아나갔으면 좋겠고, 여건이 된다면 신대원에서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기윤실 : 마지막으로 청년부채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해주세요.
참가자 : 부채에 눌리거나 돈에 쫓기지 않고, 상황을 원망만 하지 말고 내가 버틴 하루가 죄책감이 아니라 당당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청년부채ZERO 캠페인-5차’의 자세한 내용들은 기윤실 홈페이지 자료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cemk.org/resource/9217/)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