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기윤실 수련회 개회예배 설교]

그리스도인의 애국(욘 3:10~4:4)

 

글_손봉호

(기윤실 자문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고신대 석좌교수)

기독교의 하나의 특징은 ‘놀라게 한다’ 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역사에 대해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논리, 기대에 부응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 이런 관점을 강하게 나타낸 분이 로마의 교부신학자 ‘터툴리안’ 이다. 그가 남긴 말 중에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믿는다.” 가 있다. 아주 특이한 표현이다.

‘삼위일체 교리’, ‘예수님의 두 성품’ 이 초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교리이다. 이 두 가지가 다 말이 안 된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두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두 교리를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다. 터툴리안은 “이 교리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러니까 믿을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하였다.

요나서 주석을 읽어보니까 “요나서는 우리를 게속 놀라게 한다” 라고 써져있다. 저는 이 놀라게 하는게 3장 마지막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부분이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시고, 절대적인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 ‘뜻을 돌이키사’ 라고 써있다. 그런데 이 뜻을 돌이킨것에 대해서 요나는 굉장히 화를 낸다. 그 참 신기하다. 요나는 뜻을 돌이키면 안 되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킨 것이다.

또 하나 놀라게 하는 것은 요나의 애국심이다. 요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앗수리아의 수도는 니느웨이고, 앗수리아는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힌 나라이다. 앗수리아가 멸망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앗수리아에게 멸망에 대해 경고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요나는 도망을 쳤다. 요나의 애국심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은 전혀 요나의 애국심에 동의를 하지 않으셨다. 이런 애국심이 정말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겠느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꺼라 생각한다. 감상적 애국심보다는 실제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애국심이 필요하다.

한 가지 적어도 우리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 정직했으면 좋겠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이여 너는 나의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안창호 선생은 거짓말이 우리나라를 죽인 원수라고 보았다. 군부의 원수는 같은 하늘을 섬길 수 없다. 거짓말이 우리나라를 죽인 것이다. 도산은 이 말이 거짓말이 안되기 위해서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하였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유는 힘이 없고,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미국만큼 강해본 나라가 있는가? 그런데 미국을 이긴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이 무슨 힘이 있어가지고 미국을 이겼을까? 대통령과 함께 똘똘 뭉쳐서 미국을 쫓아내었다.

왜 단결하지 못하냐? 서로 거짓말하기 때문이다. 식민 시대는 지나갔지만, 우리가 거짓말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우리의 투명성이 일본 수준만 되면 경제적으로 1.4~1.5%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투명성은 56위이다. 일본은 20위이다. 도덕적 후진국이다. 우리 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이 ‘거짓말’이다. 우리는 불신 때문에 불필요한 낭비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애국은 간단하다. 정직하고 거짓말 안하는 것이다. 정직만큼 중요한 애국은 없다. 도산 안창호의 판단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직은 기독교인에게는 핵심이다. 우리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인데, 계시의 종교라는 말은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다. 설명가지고 안 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 하라고 말씀한다. “이 복음을 증거하여 전하노라” 부활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정직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은 오역이다. 하나님은 믿을만하다. 증인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을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실함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정직함 이것은 기본이다.

요나서에 나타나는 애국심 “자기나라 중심적 사고” 이다. 하나님은 동의하지 않으신다. 니느웨도 잘되야 한다. 이게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기독교에 얼마나 위대한 가르침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인데 과연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인가? ‘치체로’ 가 의로운 전쟁이론을 내엇다. 그는 조국을 위한 전쟁은 다 의롭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배타적이지 않다. 국수주의적인 애국자가 되지 말자.

성경은 감상적이고 이기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사랑하고 돕는 청지기로서의 애국을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나는 그런 나라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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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전국수련회 후기 '함께 모이니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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