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삶은 달라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길게 보며 살아야 한다.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를 예수님을 향해 늘 깨어 있어야 하듯이, 나의 물질 소비와 생산 활동이 내 이웃과 자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 학문도 자연과 후손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행동 방식이 초래할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본문 중)
홍종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지구온난화 지도.
아직도 한국인에게 기후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인가? 2018년 10월 한 달 동안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 10월 1일부터 5일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총회였다. IPCC는 1988년에 UN 주도로 설립된 국제기구로서 19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IPCC의 주된 임무는 기후변화 현상, 인간의 경제활동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기후변화로 인한 잠재적 피해 가능성, 기후변화 대응 전략 등에 관한 전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총 5차에 걸쳐 공식 보고서를 채택했으며, 지난 2007년에는 IPCC의 이름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번 총회의 가장 큰 의의는 ‘지구 온난화 섭씨 1.5도 특별 보고서’가 최종 승인된 것이다. 그동안 IPCC는 19세기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하여 섭씨 2도 이상 지구 기온이 올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해 왔는데, 이번에 이를 0.5도 더 낮추었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 문제를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는 방증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지구 기온은 섭씨 1도 정도 상승했다. 지구 기온이 계속 오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농업생산을 생각해 보자. 섭씨 1.5도에서 0.5도 추가로 오르기만 해도 농업생산성이 50% 가까이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는 특히 중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남미 지역의 옥수수와 쌀, 밀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전 세계 정치지도자들이 인류 생존을 위협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특단의 사회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사건은 지난 10월 8일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이다. 학문 업적이 뛰어난 경제학자가 노벨상을 받는 것이 기후변화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의 연구 분야는 다름 아닌 ‘기후변화 경제학’이다. 1969년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된 이래 기후변화 연구로 상을 받은 것은 노드하우스 교수가 최초다. 경제학의 지평을 기후 문제로 확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미 1970년대에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과 기후 관련 논문을 썼으니 평범하지 않은 통찰력을 지녔다. 노드하우스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수단을 지금부터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일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출처:AFP연합뉴스)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변화 연구를 통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했을까? 첫째, ‘환경’이라는 조건 없이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과 자연 없이 경제활동은 불가능하다. 토지, 공기, 물 없이 어떤 생산이 가능하겠는가. 노드하우스 교수는 인간의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라는 부산물이 지구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인류의 윤택한 삶을 위해 지난 수백 년간 사용해온 석탄과 석유가 도리어 인간 생활을 옥죄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제활동을 제어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근시안을 버리고 세상을 길게 보며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마음껏 쓰고 버리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종국에는 기후변화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환경적 피해가 너무나 크기에 지금부터 정책과 경제활동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중요 테마 중 하나는 ‘조급증’(impatience) 혹은 ‘시간선호’(time preference)다. 쉽게 말해 인간은 미래보다 현재를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론이다. 미래의 소비와 삶의 질보다 당장 나에게 주어지는 물질과 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미래보다 현재를 얼마나 선호하는지를 수치로 계산하였다. 대체로 매년 2% 정도 시간을 할인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물가상승이나 경제성장 가능성은 제외한 결과다. 이 값을 적용하면 약 35년 후에는 현재의 100만원이 50만원, 즉 50%의 가치로 줄어들게 된다. 미래에 심각한 기후변화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 보자. 35년 후에 발생하는 피해는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는 50% 정도의 피해로 여길 것이며, 70년 후에 엄청난 피해가 생긴다고 해도 현재 시점에서는 25% 수준으로 간주할 뿐이다. 70년 후 현재 30세 이상의 인류는 대부분 세상에 없겠지만, 후손은 그들이 생활하면서 만든 온실가스 때문에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출처: Pixhere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였다.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마 24:42),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막 13:35)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마 24:38),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적나라한 모습이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마 24:39) 오늘이 전부인 양 살아간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인간생활의 종착점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달라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길게 보며 살아야 한다.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를 예수님을 향해 늘 깨어 있어야 하듯이, 나의 물질 소비와 생산 활동이 내 이웃과 자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 학문도 자연과 후손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행동 방식이 초래할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분명한 사명을 부여하셨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책임 있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 기후변화야말로 근시안과 조급증으로 뭉쳐진 인간이 야기하고 있는 비극적 결과물이다. 이래도 한국 교회에게 기후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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