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영역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기술과 교회는 별반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신기술이 폭증하는 오늘과 같은 시기에 교회의 자리는 의외로 중요하다. 교회는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이면서 세상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다 함은 관계를 끊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 관찰할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본문 중)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흔히 기술은 잘 쓰면 좋고 잘 못 쓰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기술의 중립성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핵분열 반응을 조절하는 기술은 원자력 발전으로 유익하게 쓸 수 있는데 핵폭탄을 만들어 악용하고, 칼로 요리도 할 수도 있고 살인도 할 수도 있으니 결국 쓰는 사람 나름이라는 것이다. 미국 총기협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총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라고 늘 말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상식적이고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또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술 하나를 따로 놓고 보면 잘 쓸 수도 있고 잘 못 쓸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어떤 기술 하나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생기거나 바뀌는 맥락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는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작은 실수로 사고가 나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에 엄정한 관리와 강력한 보안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게 된다. 총기를 구입하고 휴대할 수 있는 사회의 문화가 그렇지 않은 사회와 같을 수 없다. 교통이 발달하면 기러기 부부와 주말부부가 생겨나고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면 의사소통 방식이 바뀐다. 인공수정이 늘어나면서 불임 부부는 줄었으나 쌍둥이 형제자매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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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유전자 가위 등 우리 시대에 곧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는 새로운 기술들 역시 각 기술로 얻을 단기적인 성취뿐 아니라 우리 삶의 맥락과 의미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 오던 것들은 의미가 없어지고, 별로 눈에 띄지 않거나 몰랐던 것들의 중요성이 갑자기 부상할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을 추구하고 기대하는 것만큼,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변화들을 꼭 부정이나 긍정으로 나누어서 평가하거나 기술의 중립성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는 제안이 아니다. 그런 변화가 있다는 것, 기술의 중립성은 개별 기술들을 독립적으로 고려할 때에만 성립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공학자들은 이런 맥락의 변화에 대해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흔히 공학자들은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가져다 줄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술이 많은 사람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넓은 시각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에 내가 개발하는 기술이 더해지면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날지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예측할 수야 없지만, 적어도 우려되는 부분에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술을 사용하는 일반인들은 기술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술이 중립적이어서 잘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 기술들을 잘 사용하려 굳이 애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우리의 삶에 밀려드는 기술들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기술들에 대해서는 그 원리를 알아보려 노력해야 하고, 전문가들에게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요구해야 한다.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차이에 압도되어 만들어 주는 대로 사용하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복잡한 외교와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치가들을 비전문가인 국민이 선출하는 이유는 그들의 결정이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공학자와 기업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그들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제품과 새 기능에 열광하기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신기술의 발전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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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영역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기술과 교회는 별반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신기술이 폭증하는 오늘과 같은 시기에 교회의 자리는 의외로 중요하다. 교회는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이면서 세상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다 함은 관계를 끊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 관찰할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굳이 빨리 가거나 편리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성도는 영원을 마음에 두기 때문에 단기간의 성공과 급한 변화에 연연하지 않는다. 더구나 교회로 모여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그런 차분함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런 공동체라면 개발된 기술의 적절한 사용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기술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시민, 공학자, 정책 결정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엄청난 변화의 흐름에 흥분하지도, 함부로 몸을 맡기거나 휩쓸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 변화에 오히려 더 잘 대응할 테니 말이다. 잘 쓰면 좋고 못 쓰면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고 삶으로 옮겨낸다면, 교회가 기술의 문제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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