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1995년 개봉되었고 당시에는 고작 12만 명의 관객 동원으로 흥행에는 참패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제기한 철학적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담론을 형성해 왔다. 그런데 2017년에 이 작품은 헐리우드에 의해 엄청난 시각적 화려함이 덧입혀져 SF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하였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자 더욱 큰 화제를 불러오며 골수팬들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본문 중)

[문화 안의 어떤 세상③]

진정한 고스트는 어디에?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과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성 찾기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한 신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도대체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라는 정통교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고전적인 교리는 이미 문장 자체 안에 논리적인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아리우스 논쟁, 그리고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그리스도 안의 인성에 관한 네스토리우스 논쟁은 초대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신학 논제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현상이 생겨나 새로운 신학적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 존재 증명’의 논제이다. 페미니스트 학자인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사이보그 매니페스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시대, 이 신화적 시대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들, 즉 이론화되고 가공된 기계와 유기체의 혼종들이다; 우리 모두는 사이보그들이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

유발 하라리 역시 자신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유전공학, 인공지능, 가상현실.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인류는 세상을 지배하게 해준 도구 개발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 그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계와 융합되어 정신과 자아를 복사할 수 있는 인간은 맹수에게 쫓기던 나약한 동물에서 이제 새로운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원작 만화. 시로 마시무네 작.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등장한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진다. 1859년 발표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인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다. 이 논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기독 지성은 이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려하며 과학계와 마주하며 ‘인간 존재 증명’을 위한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이런 주제는 SF 영화의 단골 메뉴이다. 그중에 한 영화를 소개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1995년 개봉되었고 당시에는 고작 12만 명의 관객 동원으로 흥행에는 참패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제기한 철학적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담론을 형성해 왔다. 그런데 2017년에 이 작품은 헐리우드에 의해 엄청난 시각적 화려함이 덧입혀져 SF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하였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자 더욱 큰 화제를 불러오며 골수팬들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하지만 헐리우드 판은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재현해 내지는 못해 매우 아쉽다.

 

2017년 3월 개봉한 SF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포스터.

 

제목에 나오는 단어 ‘고스트’는 인간의 자아와 정신을 의미하며, ‘쉘’은 인간의 육체 또는 기계화된 장치를 의미한다. 원작이 관객에게 제기한 질문은, “인간다움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모든 특성을 기계가 대치할 수 있다면 인간됨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헐리우드 판은 그 ‘고스트’의 본성을 개인의 ‘기억’으로 축소해 버린다. 주인공은 새롭게 주입된 기억이 아닌 삭제된 본래의 기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마치 제이슨 본처럼….

단지 기억일까? 일찍이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론적 회의에서 내가 지금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모든 환경이 악마의 조작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철학자의 기본자격으로 제안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는 인간 주체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이성적 의식(consciousness)라고 결론짓는다. 원작 「공각기동대」의 ‘고스트’는 이러한 이성적 의식을 넘어선다. 신학자 박일준은 “포스트휴먼 담론에서 인간은 ‘육화된 실제성보다 탈육화된 정보에 기초를 두고’(마정미) 기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구성되는데”, 이때 인간 정체성의 핵심인 인간의 의식은 “물리적인 하드웨어에 기반한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세계를 매개로 사방으로 연장되어(extended) 나가는 정신”이라고 말한다.[1]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아를 상상했다면(고후 5:17), 현대 문명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스스로 탈육화한 새로운 피조물로 진화되길 소망한다.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기보다 기획되고 변화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서브젝트(subject)가 프로젝트(project)가 되었다. 이것을 흔히 동력혁명, 정보화혁명을 넘어선 ‘이식혁명’이라 부른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신체는 기계와 결합하고, 정보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컴퓨터나 인터넷과 연결된다. 나아가 생명공학을 통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길 원한다.

세상과 자신의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전능한 호모 데우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모른다. 우주 최강의 힘을 가졌지만, 어디에 또 어떻게 그 힘을 써야 하는지를 모르고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모르는 이 신은 너무나 위험한 존재가 아닐까?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스틸컷.

 

「공각기동대」TV 시리즈(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전차로봇은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자신을 희생해 숭고하게 자폭하면서 신의 이름을 부른다. 이 인공지능이 마침내 소유하게 되는 ‘고스트’를 점차 사이보그화되고 있는 인간들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우리는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한 대로 인간성의 본질을 종의 기원(Origin of the Species)이 아니라 종의 원형(Original of the Species)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 고스트가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내 고스트의 진정한 안식은 없었습니다.”

 

[1] 박일준,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학(2): 사이보그로서 인간 그리고 자본주의”, 에큐메니안 2016.04.11.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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