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때로 정부가 상대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종교개혁자들이 이미 주장한 것처럼, 기업의 정당한 이윤추구나 기업에 자원이 많다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집단이 타락하면 매우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기업은 죄성이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각각의 기업 수준에서는 구성원에 대한 지배력과 충성 요구가 대단히 크고, 기업 집단의 수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힘과 자본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곤 한다.(본문 중)

배종석(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

 

조직의 형태를 띤 사회적 제도(social institution)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교회, 국가, 기업이 있다. 과거 서구에서는 교회가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가 있었고, 국가가 지배하던 시대도 있었다. 또한 이 두 영역 간의 힘겨루기로 인한 긴장의 시기도 있었는데, 황제권과 교황권의 알력이 드러났던 성직 서임권 투쟁 기간(11-12세기)이 그런 예이다. 교회의 시대였던 중세를 지나 국가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그 이후로는 국가의 힘이 강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국가와 함께 기업이 사회 전체의 방향과 구성원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기업이 사회와 개인의 삶 전반에 점점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이 시대를 과연 ‘기업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Unsplash

 

기업의 시대라고 부를 만한 현상은 다양하지만 특히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기업의 침투성과 편재성이다. 기업은 비즈니스가 될 만하면 국가 간의 외교 관계가 없는 곳까지도 침투하는 능력이 있다. 외국 진출에 따르는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며 사업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 이념이나 종교에 기인하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열정을 보인다. 기업이 보편성을 띠고 저항감을 줄여가며 침투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느 종교의 선교 활동보다도 효과적이다. 이렇게 기업은 세계 곳곳에 편재해 있다. 기업의 편재성을 잘 드러내주는 사고 실험이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에 의해 제시되었다. 화성인이 지구를 정탐하기 위해 오면서 지구의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망원경을 가지고 왔다. 그 망원경으로 보면 기업은 녹색으로 표시되고 시장거래는 기업들을 연결하는 빨간 선으로 표시된다. 사이먼이 던진 질문은 ‘화성에서 온 방문자가 돌아가서 지구 상황을 어떻게 보고 하겠는가?’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A) ‘넓은 녹색 영역이 빨간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large green areas interconnected by red lines)이고, 다른 가능성은 (B) ‘녹색 점들을 연결하는 빨간 선들의 네트워크가 있다(a network of red lines connecting green spots)’이다. 사이먼은 화성으로 돌아간 정탐자가 지구의 상황을 (A)로 보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B)는 시장 경제(market economy)를 나타내고 (A)는 조직 경제(organizational economy)를 나타내는데, 지구인들은 ‘조직 경제’를 ‘시장 경제’라고 부르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고 보고하리라는 점도 덧붙인다.[1] 기업 조직이 편만하고 경제에서 주도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의 시대라고 할 만한 또 다른 요소는 기업이 가진 자원 확보력과 지배력이다. 오늘날 누가 인력과 재력을 가졌는가? 기업은 매우 적극적인 의미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가치인 ‘가격’ 보다 ‘사용가치’가 더 클 때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사용가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부여된 기능이나 속성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주관적 가치이다. 사용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은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자원을 더 확보하게 된다. 물론 이와 함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산도 방대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미국의 경우 총수입에 있어서 기업이 창출하는 것이 정부지출의 약 8배가 되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을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본은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니라 가치의 축적과 힘의 원천이 되었다. 과거보다 정보와 지식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것들이 아직도 자본의 힘에 종속되어 있는 현상이 너무도 많이 나타난다.

셋째로, 기업의 영향력을 들 수 있다. 기업은 임직원, 소비자와 일반 대중 등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제도와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다. 우선, 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인 임직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자유로운 고용계약에 따라 동의한 헌신이라고는 하지만 기업이 개인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창출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강력하며, 나아가 일반 대중의 사고방식에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예로서 스마트폰이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은 다른 사회적 제도조직과 영역들, 예를 들면 대학, 언론, 정부, 종교단체에도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면 ‘기업의 시대’는 우리에게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우선, 기업은 우리 삶에 많은 유익을 준다. 많은 기업신학자들은 기업이 인류사회 유지에 필요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만들어 낸 제품과 서비스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신칼뱅주의자들은 기업이 고유한 성격을 지닌 영역으로 분화되었다고 간주한다. 사회적 역할 및 사회적 제도의 분화된 한 영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하나님의 창조명령(창 1:22, 27-28)을 이루어가는 한 주체로 이해될 수 있다. 로마 가톨릭 사상가인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은, 세상 모든 곳에서 그러하듯이 기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가 나타난다고 보며, 기업을 창조성이 가장 잘 발휘되는 곳으로 파악한다.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며 일자리를 만들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업이 우리에게 유익만 주는 것이 아니라 큰 위협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은 때로 정부가 상대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종교개혁자들이 이미 주장한 것처럼, 기업의 정당한 이윤추구나 기업에 자원이 많다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집단이 타락하면 매우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기업은 죄성이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각각의 기업 수준에서는 구성원에 대한 지배력과 충성 요구가 대단히 크고, 기업 집단의 수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힘과 자본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곤 한다.

 

ⓒPixabay

 

따라서 기업의 시대에 우리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 기업 간의 자본력 양극화와 불공정 거래와 같은 폐해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사회의 다른 영역을 침범하며 자의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영역 자율성’(the autonomy of the spheres)이 확보되지 않는 사회가 불의한 사회이며, 영역 자율성이 위협을 받을 때 사회 전체가 대단한 위험에 처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다른 영역에 대해 자의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일은, 예를 들어 기업이 가진 자본력을 활용하여 정치 영역에서 권력을 가지려 하거나, 학문의 영역에서 선택적 주제에 연구비를 집중시키고 연구결과를 유리하게 생산하거나, 언론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OO공화국’ 등으로 부르는 현상도 그런 지배력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회적 제도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창조질서 속에서 합당한 지위를 지니지만 그 영향력의 방향은 창조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나 파괴하는 방향으로 발휘될 수 있다. 교회의 시대에도 국가의 시대에도, 하나의 사회적 제도가 힘이 강해져 삶의 다른 영역을 불의하게 지배할 때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고 지속적인 개혁이 요구되었다. 이제 기업의 시대에는 기업도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

 

[1] ‘시장 경제’는 시장을 매개로 시장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의 거래가 중심이 되는 경제이지만, ‘조직 경제’는 시장 외에 기업조직이 새로운 사회적 제도로서 인정이 되며 기업조직 내에서 형성된 내부시장에서 시장논리가 아닌 조직논리에 따라 수많은 거래가 형성되고 시장은 그것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경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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