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은 포용적 성장의 한 부분으로서 경제적 약자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중략) 이런 포용적 성장은 성경의 기본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성경의 기본 정신은 약자 보호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라고 말씀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고전 13:5) 것이므로, 이웃 사랑은 양보와 나눔으로 나타나야 한다.(본문 중)

이윤재(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난 11월 22일 통계청이 2018년도 3분기(7~9월) 가계소득 통계를 발표하였는데, 하위 20%의 소득은 전년동분기 대비 7% 감소된 반면에 상위 20%는 8.8%나 증가되었다. 그리고 상위20%의 평균소득과 하위 20%의 평균소득 격차는 5.52배로서 금융위기 이후(2008년 5.43배) 최대로 악화되었다. 이런 결과 때문에 소득양극화를 해소시키기 위하여 추진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하여 말도 많고 논쟁도 무성하므로 소득주도성장의 도입 배경과 내용 그리고 주요 쟁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소득주도성장 개념이 등장한 배경

소득주도성장(income-led growth)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개념이 등장한 역사적인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 개념은 경제적 불평등(소득양극화)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경제는 개방화의 물결과 신자유주의경제 정책으로 고성장을 누렸으나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하위층까지 전파되는 낙수효과(trickle-down)가 점차 사라지고 소득양극화는 점차 심화되었다. 이런 불만이 1999년 미국의 시애틀에서 개최된 WTO 각료회의 기간에 대규모 반세계화 시위로 터져 나왔다. 이후에 닥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은 더 커졌다. 그리고 2014년 프랑스 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되면서 경제 불평등 이슈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 되었다.

이 무렵 2010년 초반에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경제 불평등을 해소시키고 근로자의 소득증대를 추구하는 일환으로서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대한 연구가 보고되었다.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통하여 소득을 증진하고 내수를 증대시켜 성장을 도모하자는 아이디어다. 국내에서도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임금주도성장에 관한 연구가 진척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탄생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이 국가경제 정책의 초석이 되었다.

소득주도성장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의 일환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시키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함께 도모하자는 것이다. 포용적 성장에 이르는 길이 소득주도성장만 있는 건 아니지만, 현 정부는 기존의 기업투자(이윤)를 통한 고용(소득)증대 정책전략에 한계가 있으니 그 대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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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의 주요 내용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주도성장 모형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임금주도성장 대신에 소득주도성장으로 명명되고 있는데, 저소득층 소득의 대부분이 임금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내수침체가 경기불황을 유발하고 따라서 일자리 창출이 안 된다고 보고, 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 계층은 소비성향이 높은데 소득이 낮아서 소비를 못하게 되고 이것이 내수침체의 주원인이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내수침체 극복의 돌파구로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마중물을 붓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저임금 근로자들의 소득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키워주면, 그들의 소비성향이 크므로 늘어난 소득의 대부분은 소비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기업의 매출과 이윤을 증대시키고, 따라서 고용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다시 소득이 증대되고 결국 소비 증대로 이어져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최저임금을 2018년에 16.4%로 대폭 인상했으며, 2019년에는 10.9% 인상했다. 이 외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 정책 시행 1년 반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 정책들은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정책 당국자들은 시간이 걸리니 좀 지켜보자는 입장인 반면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경제가 완전히 가라앉아 회복력을 잃기 전에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시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1]

 

무엇이 문제인가?

소득주도성장이 지속적인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 내려면 고용이 창출되어야 한다. 일단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근로자들의 지속적인 소득이 창출되고 소비 증대도 뒤따르게 된다. 그런데 금년의 일자리 창출은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하여 정책 당국자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정책 당국자는 그동안 마중물을 부었지만 펌프질을 제대로 안했으므로 이젠 본격적으로 펌프질을 할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펌프질이 문제가 아니라 파이프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이 구멍을 때우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하 깊이 수원지에 닿아 있는 파이프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도 물이 잘 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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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구멍은 가계부채, 고령화 및 저성장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증대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도 빚 때문에 소비에 쓸 여력이 없다. 근로자들은 늘어난 소득을 소비하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오히려 저축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임금은 양면성이 있다. 임금 인상은 근로자에겐 가계소득 증가지만 사업주에겐 인건비 상승이므로 기존 근로자마저 감원시키려 할 것이다.[2] 또한 가계부문의 과다한 부채로 인해 향후에도 소비증대가 불확실할 경우 사업주는 추가적인 고용도 줄이려고 하므로 최저임금 인상효과는 누적적으로 영향을 미쳐 고용증대 순 효과가 감소될 수도 있다.

두 번째 구멍은 기업의 투자증대가 이뤄져야 하는데 온갖 규제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규제개혁을 수도 없이 외쳐왔지만 실효성은 없다.[3] 새로운 산업(예를 들면 우버 택시)이 등장하는데 기존 법규에 관련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규제하여 제품생산, 판매, 유통이 안 되고 있다. 또한 반기업 정서와 함께 신산업 부문의 규제 강화는 기업의 투자의욕(animal spirit)을 꺾고 기업가정신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혁신성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전문은행(일명 카카오뱅킹) 설립을 위하여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추진했지만 여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세 번째 구멍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2018)는 한국경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을 확보해야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권고를 하고 있다. 금년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거시경제안정성과 정보통신기술(ICT) 보급에서 1위를 차지하고 혁신역량도 8위로 종합순위 15위였지만 노동시장은 48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직적이다. 경직된 노동시장 하에선 신규 채용을 늘리기 힘들어 자동화나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고용은 줄어들게 된다.

 

성경적 관점에서 본 소득주도성장

소득주도성장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의 한 부분으로서 경제적 약자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포용적 성장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배분되고 소득 양극화를 해소시켜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에게도 소득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포용적 성장은 성경의 기본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성경의 기본 정신은 약자 보호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라고 말씀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고전 13:5) 것이므로, 이웃 사랑은 양보와 나눔으로 나타나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이웃 사랑의 정신을 발휘한 상호양보가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여부는 지속적인 고용창출에 있는데 지속적인 고용창출은 민간 기업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민간 기업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호양보를 통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네덜란드의 타협 모델(Polder)을 참고할 만하다. 근로자는 과도한 임금인상률 자제와 함께 기업은 해고 자제를 그리고 정부는 근로자 및 기업 측에 적절한 지원정책을 통해 대타협을 유도하였다. 우리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과거 노사정위원회)가 있지만 타협이 잘 안 되어 안타깝다. 각자의 기득권을 일부 양보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진행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모두 이미 취업한 근로자들(기득권)에겐 이익이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구직 청년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노동시장 진입 문이 더 좁아져 청년 일자리 창출은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이웃 사랑’에 기초한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1] 일각에선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으니 포기하고 궤도를 수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만일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포기하고 기존의 기업투자(이윤)주도성장 전략을 채택한다면 미흡했던 낙수효과에 대한 보완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 강화, 저소득자 소득증대 방안 및 복지정책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해소책이 세심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 거시경제모형에서 최저임금 급상승으로 총수요곡선의 우측이동 보다 총공급곡선의 좌상방 이동이 더 클 경우 고용감소(실업률 증가)와 함께 고인플레이션으로 특징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우려가 있다.

[3] 일반적으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공무원 증가) 규제도 함께 증가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각종 이익단체(노동조합, 약사회, 의사회, 환경단체 등과 같은 각종 협회 및 단체들)들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이익단체들은 자기들만의 이익(rent, 우리말로는 지대로 번역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익단체들은 자신의 지대를 공고하게 지키려고 각종 로비나 압력을 행사한다. 이런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하게 될 때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시켜 저성장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점을 맨슈어 올슨(M. Olson)은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과거부터 누적되어온 일부 규제를 폐기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규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어 규제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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