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완전하고 여러 가지 죄를 짓는다. 그 죄가 sin이든 crime이든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신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대로 운영되도록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중략) 피해자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왜곡될 수 있다면, 이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건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 중)

김예원(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저희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입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선고받도록 청원 드립니다.”

–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 국민청원문 중

지난 10월 22일 강서구 등촌동에서 47세의 여성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에게 흉기로 13회 찔려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언론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는 세 명의 딸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가해자인 자신의 친부를 엄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피해자는 “끔찍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엄마는 아빠와 살 수 없었고 이혼 후 4년여 동안 살해 협박과 주변 가족들에 대한 위해 시도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늘 불안감에 시달려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보호시설을 포함 다섯 번 숙소를 옮겼지만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어 엄마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으며, 결국 사전답사를 비롯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으로 엄마는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가해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청원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은 주취 상태가 아닌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안이다.

이 사건보다 약 한 달 전인 9월, 제대를 4개월 앞두고 휴가를 나온 병사 윤창호씨가 한 건널목 인도에 서 있다가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에 치어 뇌사에 빠졌다. 2개월이 넘도록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피해자는 결국 11월 9일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음주운전 및 주취감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매우 높아졌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사건 직후 한 방송을 통해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어쨌든 저도 많이 힘들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주취 상태에 있던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음주차량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진 윤창호(22)씨의 친구들이 ‘윤창호법’의 본회의 상정 및 통과를 호소하는 호소문을 읽고있다.(출처: 하태경 의원 공식블로그 보도자료)

 

우리나라 법률에는 명문으로 주취감형 또는 주취감경 등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형법 제10조 제2항에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에 대하여는 형을 감경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즉,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필요적으로 형을 감경한다는 것이다. 다만, 위험의 발생을 예상하고 스스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자의 행위에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동조 제3항). 가령 음주운전을 하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다거나, 살인을 계획하고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술을 마신 후 살인을 한 경우에는 필요적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례는 여러 사건에서 심신미약과 심신상실을 인정한 바 있다. ‘생리 기간만 되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고, 물건들을 보면 온몸에 열이 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그냥 집어 들고 가게 되는 증상’이 충동조절장애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심신미약’으로 감형 받은 판례가 있으며, 두 살배기 아기를 3층에서 던져 숨지게 한 19세 발달장애인은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인지와 정신 기능의 장애 및 자폐증적 경향으로 발달 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라고 보아 무죄 판결을 한 것이다.

그런데 잔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심신미약 감형 규정과 이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의 괴리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2008년 8세 여자아이를 유인해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은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한 반대여론과 반성적 조처로 2012년에 성폭력에 관한 범죄에 한해서는 주취감경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0조, 이하 ‘성폭력처벌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살인범죄자 범죄시 정신상태(「2016 범죄통계」, 경찰청), (단위: 명, %)

강간범죄자 범행시 정신상태(「2016 범죄통계」, 경찰청), (단위: 명/%)

경찰청 ‘2016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6년 검거된 살인 또는 살인 미수범 995명 중 390명(39.2%)이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폭행 범죄자 6,427명 중 1,858명(28.9%)도 술에 취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만약 주취 상태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되어 감형된 형이 선고될 때, 그 선고형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의 형이라면 정상을 참작하여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형법 제62조). 심신미약감경이 집행유예 판결까지 연결되는 경우 국민들의 분노감은 더 크게 나타난다.

국회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해당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을 시도한다. 그래서 도가니 사건으로 유명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 이후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간 사건의 법정형이 높아지기도 했다. 심신미약 감형 제도의 존치 여부는 별론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졸속으로 법정형만 높아지면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경찰과 검찰은 수사를 하고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재판한다. 기소된 이후 공소가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기소 이후 유죄판결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법정형이 높은 사건의 경우 통상 증명력이 높은 증거가 요구된다. 수사가 미진한 상태로 법정형이 높은 범죄로 기소할 경우 공소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기에, 검찰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피해자로서는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의 법정형이 높아지는 것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여러 가지 죄를 짓는다. 그 죄가 sin이든 crime이든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신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대로 운영되도록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감경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특성에 기인하여 고안된 제도지만,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왜곡될 수 있다면, 이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건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이 금세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신자들도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토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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