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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영희가 짊어질 이유가 없었던 책임을 이제라도 벗어났으면 좋겠다. 가부장적 폭력과 여성 차별이 켜켜이 쌓인 영희 씨의 인생에 비로소 온전한 배움이 찾아와서 나는 참 좋다. 나는 늘 생각한다. 영희 씨가 나의 영원한 영감(inspiration)이라고. 엄마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적을 떠나서(물론 영희 씨는 내심 성적을 잘 받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엄마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길 바란다. (본문 중)

 

김자은(기윤실 청년위원)

 

우리 엄마 김영희 씨의 최종 학력은 ‘초졸’이다. 학창 시절 가정 환경 조사서를 작성할 때면 엄마는 “그래도 중졸이라고 쓰자”라고 하며 민망한 듯 웃곤 했다. 그런 엄마가 최근 진짜 중학생이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송통신중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방송통신중학교는 엄마처럼 제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다. 평소에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정해진 등교일에 학교에 출석해 수업을 듣는다.

 

늘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곤 하던 엄마는, 막상 정말 학교에 가자고 하니 지레 겁을 먹었다. “난 초등학교도 다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남들보다 못하면 어쩌지? 가서 다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 걱정하는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아니, 나 학교 다닐 때는 잘해라, 뭐 해라, 말도 안 하더니 엄마는 왜 그래? 특목고라도 가려고 그래? 일단 졸업장 따는 걸 목표로 다녀보자. 그러다 보면 차근차근 아는 것도 쌓이고, 친구들도 만나고, 생각보다 너무 재밌을걸? 겁먹을 필요 전혀 없어.” 어쨌든 결국 교문을 열고 들어가는 결정은 엄마의 몫이었다. 아마 197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마음 한쪽에 쌓아두었던 공부에 대한 미련과 더는 시작을 미룰 수만은 없다는 마음이 엄마를 한 발 한 발 교문 안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자식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엄마는 1남 3녀 중 둘째이고 장녀다. 외할머니가 애를 못 낳는다며 갖은 구박을 다 받다가 10년 만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외삼촌)을 그 옛날 시골에서 과외까지 시켜가며 서울로 유학을 보냈는데, 연탄가스를 마시고 큰일이 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외가는,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충청도 전의의 집과 땅을 죄다 팔아 서울로 올라왔다.

 

어린 영희는 언제든 다시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마당의 수도 펌프를 자기만 아는 곳에 꼭꼭 숨겨두고 왔다고 한다. 영희는 시골에서 물뱀을 잡으며 놀고, 오빠가 놀러 가며 자기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울고불고 떼를 쓰던 그저 평범한 어린이였다. 호롱불을 켜놓고 구구단을 외우다 잠들고 잠꼬대마저 구구단으로 할 만큼 공부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한편으로는 ‘오빠보다 내가 더 공부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데, 왜 난 안 시켜주지?’ 하는 서운함도 남몰래 품었다고 한다.

 

서울 생활은 시골에서의 삶과 완전 달랐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촌뜨기라 놀렸고, 집에 오면 장사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에 갈 틈조차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4, 5학년이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도대체 그 어린 나이의 영희가 어떻게 더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밥을 먹이며 키웠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고사리손으로 집안 살림을 건사하다 보니 4, 5학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하니 6학년 때 다시 학교에 갔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수학도 다른 과목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가방만 책상에 덩그러니 놓고 대충 시간을 보내다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여전히 구구단은 기가 막히게 잘 외우지만, 곱셈의 원리는 잘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 뒤로 공장 취업은 일이 너무 고되니 미용을 배우면 좋겠다는 외할아버지의 권유로 미용 학원에 다녔다. 미용은 여자들만 드나드는 직업이니 나중에 결혼해서도 문제없을 거라는 이유였다. 청소년 영희는 미용을 배우는 일조차 무척 즐거웠다고 회고한다. 공장 다니는 언니들이 야간 수업에 올 때면 머리 모델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모델을 하겠다는 핑계로 낮 수업에 이어 야간 수업까지 하루 두 번씩 들었다. 그렇게 배운 기술로 영희 씨는 40년을 넘게 미용사로 살았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할 때 가장 먼저 본 것도 다름 아닌 ‘배움’이었다. 자신과 다르게 아빠 집안사람들은 다들 잘 배웠고, 무엇보다 그 잘 배운 집 사람인 아빠가 자기에게 자꾸 고맙다고 말해주니 마음이 간지러워서, 반듯하게 자라 잘 배운 사람의 자상함을 보고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우리 애들도 잘 배울 수 있겠구나’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 녹록하진 않았지만….)

 

최근 나도 계속 일을 하고 이전보다는 집안 경제가 안정되면서 엄마와 여기저기 함께 다닐 일이 많아졌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면 엄마는 안내문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 읽어보고, 사진을 찍고, 눈에 가득 담았다. 그제야 나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 우리 엄마가 이렇게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마디해 본 적 없지만, 내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했을 때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보여 주던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이토록 숨기지 못하는 배움에 대한 동경을 다시금 확인하고서야, 나는 본격적으로 방송통신중학교를 알아보고 엄마의 등을 마구 떠밀었다.

 

다시 학교에 다니는 영희 씨는 요즘 무척이나 바쁘고 즐거워 보인다. 반 친구들이랑 내기도 하고, 시험 끝나면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약속도 잡는다. 다가올 9월에 있을 체험 학습도 벌써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생 처음 겪어 보는 기말고사 기간을 보내느라 열심히 공부 중이다.

 

첫 시험이 끝나고 영희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가 음악은 1개만 틀렸는데, 수학은 4개만 맞았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난생처음 써보는 컴퓨터용 사인펜을 네임펜과 헷갈린 이야기도 하고, 과학 선생님이 기체, 액체, 고체를 설명하며 춤을 춘 이야기도 들려준다. 사회 시간에는 인도 인구가 가장 많다는 것을 배웠다며, 자꾸 자기가 중학교에서 배운 걸 내가 아는지 테스트한다. 날 지금까지 뭐로 본 건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밤잠을 줄여 가며 시험공부를 하고 무거운 교과서를 이고 지고 학교에 가는 일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나이가 들어 다시 시작하는 공부는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엄마도, 학교 친구들도 가끔은 몸이 힘들고 공부가 어렵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도 엄마는 새로운 자극을 만나는 일과 배운다는 사실 자체에 신나 한다.

 

한편으론 엄마가 가진 굳은 신념 중 몹시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외할머니가 “네가 떼쓰고 울었으면 학교에 보내 줬을 텐데, 너무 순해서 안 가르쳤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떼쓰지 않아서 못 배웠어. 그 시절엔 다 그랬어”라며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울고 떼쓰고 싶어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던 어린 영희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어린아이에게 버거운 가사와 돌봄 노동을 떠맡기고 배울 권리마저 빼앗은 것은 그저 아동 학대일 뿐이다. 외할머니의 말 역시 사과라기보다,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미안함과 책임을 가장 착한 아이에게 끝까지 떠넘긴 가스라이팅이다. 영희는 수십 년 동안 그 말을 곱씹으며 “학교가 별로 재미없었으니까 나도 가기 싫었던 모양이야”, “내가 멍청하게 떼를 쓰지 못해서 그랬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엄마는 배울 기회를 빼앗긴 일을 자꾸만 자기 탓으로 돌렸다. 나는 그것을 시대의 한계나 부모의 마지막 사랑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어린 영희가 짊어질 이유가 없었던 책임을 이제라도 벗어났으면 좋겠다. 가부장적 폭력과 여성 차별이 켜켜이 쌓인 영희 씨의 인생에 비로소 온전한 배움이 찾아와서 나는 참 좋다.

 

나는 늘 생각한다. 영희 씨가 나의 영원한 영감(inspiration)이라고. 엄마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적을 떠나서(물론 영희 씨는 내심 성적을 잘 받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엄마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 여행하며 늘 궁금해하던 것들, 왜 저 산과 이 산은 다르게 생겼는지, 식물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저 동물은 왜 저렇게 신기하게 생겼는지, 유럽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미국과 캐나다는 어떻게 다른지, 이 동굴은 어떻게 형성된 건지, 갯벌에는 왜 그렇게 신기한 생물들이 많이 사는지…. 이런 수많은 질문의 답을 공부하며 하나씩 만나고, 또 아는 만큼 더 궁금한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생겨나기를 바란다. 구구단을 외우며 잠들던 어린 영희가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교과서를 펼친 것처럼, 배움에는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엄마의 세상이 점점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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