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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빠른 이동, 편리한 소비는 우리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된다. 그래서 생태적 휴가라는 말은 단순히 여행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쉬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다. 나의 휴식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조금 더 책임 있게 쉬어 보자는 초대다.(본문 중)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잘 쉬고 오세요.” 여름이면 자연스럽게 건네는 인사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 하면 마음이 더 분주해진다. 어디로 갈지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찾아보고, 짐을 챙기다 보면 이미 한 차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지쳐 있다. 쉼을 위해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쉼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는 ‘쉼’을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가(vacation)라는 말은 ‘비우다’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레(vacare)에서 왔다고 한다. 원래는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그 자리에 쉼을 들이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휴가는 그 의미와 조금 멀어진 듯하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경험하려 애쓰다 보니, 비워야 할 자리를 오히려 더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쉼을 얻기 위해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더 많은 피로와 소비의 흔적을 안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은 기후 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폭염과 폭우, 산불 같은 일들이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여름이 너무 더워서 더 시원한 나라로 떠나는 ‘쿨케이션’이라는 말도 생겼다. 이런 변화들은 단순한 여행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내가 누리는 이 시원한 휴식이, 누군가에게 더 견디기 힘든 여름으로 이어져 있는 건 아닐까.

 

기후 정의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기후 위기를 더 많이 만들어낸 쪽과, 그 피해를 먼저 겪는 쪽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바닷물이 차올라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 폭염 속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 가뭄과 홍수로 생계가 흔들리는 농민들, 그리고 앞으로 더 뜨거운 지구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그 안에 있다. 이들의 삶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관광 개발로 숲이 사라지고, 해안이 훼손되며, 여행객이 남긴 쓰레기와 오수가 지역의 부담이 되기도 한다. 값싸고 빠른 이동, 편리한 소비는 우리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된다. 그래서 생태적 휴가라는 말은 단순히 여행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쉬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다. 나의 휴식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조금 더 책임 있게 쉬어 보자는 초대다.

 

그 시작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크고 짜임새 있는 계획보다, 몇 가지를 덜어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먼저, 속도를 조금 늦춰 보는 것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가까운 곳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고,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동의 속도를 늦추면,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풍경과 사람들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 익숙한 동네의 숲길이나 강변, 오래된 골목도 새로운 여행지가 된다. 서두르지 않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음으로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일이다.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기보다 동네 식당에 들러보고, 그 지역에서 난 음식을 먹고, 그곳 사람들이 만든 물건을 사는 것. 이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돈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고, 그곳의 삶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여행은 소비의 연속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만나는 경험이 된다.

 

마지막으로, 흔적을 줄여 보는 것이다. 텀블러를 챙기고, 필요하지 않은 일회용품은 쓰지 않고, 숙소에서도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것. 여행지에서 눈에 띄는 쓰레기 하나를 주워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런 작은 실천은 단순한 행동을 넘어,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꾼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대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분주했던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라고 말씀하셨다. 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다. 시편에서도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고 말한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주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나님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관계들을 회복하게 된다.

 

생태적 휴가는 꼭 특별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자연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주는 일에 가깝다.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고, 물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그렇게 천천히 머무를 때,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생명의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자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우리가 너무 바빠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 여름에는 어디로 갈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먼저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바쁜 마음을 조금 비우고, 더 가지려는 욕심을 덜어내고, 남길 흔적을 줄여 보는 것.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깊은 쉼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정돈하는 시간이 된다.

 

어쩌면 가장 좋은 휴가는 나만 쉬는 것이 아니라, 지구도 함께 쉬게 하는 휴가일지 모른다.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덜 힘든 여름이 되고, 아직 오지 않은 세대에게는 조금 더 나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휴식이 누군가의 삶을 지지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의로운 선택이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우리는, 단순히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아끼고 돌보게 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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